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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전망대] 탄력 잃어가는 구조조정

시장의 불확실성이 다시 확대되고 있다. 중동사태가 이스라엘과 아랍권의 충돌로 확산,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못하자 유가가 다시 들먹거리고, 반도체 시장의 수급 불균형에 따른 가격급락도 멈출 기미가 없다.

한국과 태국 등 아시아 시장의 유동성 위기에 대한 서방 언론의 우려가 끊이지않는 가운데 일본 치요다 생명에 이어 최근 교에이 생명이 전후 최대 규모의 부채(4조5,297억원)를 안고 파산을 신청했다. 일본에서는 올 들어 4번째의 생보사 도산이다.


깊어가는 시장불신

국내에서는 부실기업 퇴출 논란의 핵인 현대건설, 쌍용양회, 동아건설 등 이른바 `빅3'에 대해 정부가 구출쪽으로 방향을 잡자 시장의 불신이 깊어지고 있다.

정부 관계자들은 줄곧 “10월중 우량은행 합병이 가시화할 것”이라며 은행 구조조정 분위기를 잡았으나 이제는 입을 닫았다. 금융 및 기업 구조조정 일정과 내용이 당초 의도와 크게 벗어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대우차, 한보철강의 매각협상이 어디까지 가있는지 모르는 사이에 현대투신의 10억 달러 외자유치 일정도 불투명해졌다. “현대투신의 부실에 대해 정부가 일정부분 책임지라”는 AIG컨소시엄의 요구는 거의 강짜 수준이다. 이 와중에 `M&A 귀재'라는 30대 벤처경영인의 섣부른 기업 확장욕이 주식투자자와 코스닥시장의 혼란을 부추기고 있다.

사정이 이렇자 시장 애널리스트의 분석과 진단도 천차만별이다. 비관론 속에서 낙관론을 읊고, 낙관론을 펴다가 비관론으로 돌아서는 등 종잡을 수 없다.

우리 경제의 주춧돌인 삼성전자 주식이 애물단지로 전락하고, `한강 기적의 견인차'였던 현대건설이 가진 것을 모두 내다 팔아도 여전히 부실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상황인 만큼 추세적 반전을 자신있게 말하는 사람은 어디에도 없다.

“기술적 반등 시점을 이용해 현금비중을 높이고 지수보다는 호재를 가진 개별 종목에 주목하라”는 6개월 전 얘기가 아직도 충고의 주류다.

삼성전자의 3ㆍ4분기 실적발표와 대규모 기업설명회에도 불구하고 주초 주가지수가 탄력을 받지못한 것도 이같은 대내외 상황의 불안을 대변한 것이다. 주가 상승이 주초까지 이어져 570선 정도는 넘을 것이라던 대부분의 애널리스트들은 머쓱해질 수 밖에 없다.

금주부터 재경부, 금융감독원에 대한 국회 국정감사가 본격화한다. 기업구조조정, 금융구조조정, 150조원에 달하는 공적자금 사용의 허실, 삼성-현대 등 재벌가의 변칙 상속, 대북 경제협력의 속도조절, 대우차 등 해외매각 무산 책임 등 제반 현안이 도마에 오르면서 관리와 부실기업주들이 한바탕 홍역을 치를 전망이다.

각 은행은 25일께부터 주거래관계에 있는 퇴출기업을 개별적으로 발표키로 했으나 해당기업의 반발과 은행권의 눈치보기로 작업이 늦어지고 있다. 급기야 금감원이 각 은행에 공문을 보내 엄정한 평가를 촉구했으나 평가의 객관성이나 공정성이 확보되지 않아 11월초에나 명단이 확정될 것 같다.

특히 기업 구조조정에 대한 정부 의지의 `리트머스 시험지'격인 현대건설을 살리기로 한 정부가 어떻게 명분을 내세우고 시장을 설득할 지 관심이다.

이와 관련, 정운찬 서울대교수는 언론 기고문에서 “구조조정이 미래지향적이 아니라 과거지향적으로 흘러 또다시 밑빠진 독에 물붓기식이 되고 있다”며 `한국의 구조개혁은 물건너갔다. 앞으로 한국 경제가 가야할 길은 무엇인가'를 자조하며 술잔을 기울이는 경제학자가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고 개탄했다.


체감실물경기는 엄동설한

가계빚이 113조원에 이르고 기업의 자금조달 창구가 꽁꽁 얼어붙자 체감 실물경기는 완전히 한겨울이다. 개인은 소비를 줄이고 기업은 너나 할 것없이 유동성확보에 정신이 없다.

문득 팔에 깁스를 한 사람만 사는 사회를 풍자한 코미디가 생각난다. 서로가 서로에게 음식을 먹여주면 큰 불편없이 생활을 즐길 수 있으나 자기 혼자만 많이 먹으려고 고집을 피우다 아무 것도 못한다는 내용이었다.

요즘 가계 은행 기업 노조 정부 등 시장 참여자들의 행태도 자기 것만 틀어쥐다 모두를 죽이는 것과 같다는 생각을 떨치기 힘들다. 동방상호신용금고의 대주주 정현준 사장이 수백억원을 불법대출받은 사실을 눈치챈 직원 40여명이 불법을 눈감아주는 대가로 39억원을 명예퇴직금으로 따로 챙겼다는 소식을 접하면 우리 사회의 도덕적 해이가 갈 데까지 갔다는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

`10월의 마지막 밤'을 생각하면 괜히 눈이 시러워지지만, 주변에는 누구 하나 마음 편안한 사람이 없다. 노벨평화상을 받은 김대중 대통령과 어릿광대의 치기에 푹빠진 김영삼 전대통령을 제외하면.

이유식 경제부 차장 yslee@hk.co.kr

입력시간 2000/10/24 1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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