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무사 50년] 업무영역 별개지만 정치풍파따라 곡절

국방부 산하의 정보기관은 기무사와 정보사, 통신정보부대 등 크게 3개로 구성돼 있다. 정보사와 통신정보부대는 북한 정보수집과 통신정보수집에 특화해있어 업무영역이 기무사보다는 좁다.

일부에서는 이들 3개 기관의 기능이 중복돼 예산, 인력낭비를 초래한다며 통합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밖에 군내부 사법기관인 헌병대는 군내 각종 범죄사건의 예방, 검거를 담당하고 있어 대공업무와는 무관하다.

따라서 대공업무는 군기관으로는 기무사, 민간기관으로는 국가정보원으로 대별된다. 양 기관은 업무영역이 뚜렷이 구분돼 있어 원칙적으로는 부딪칠 일이 별로 없다. 기무사는 군내 방첩과 대공업무를 전담하고 국정원은 종합정보기관으로서 군외부의 전반적인 대공업무를 관장한다.


상하관계 아닌 협력관계

형식적으로 국정원장은 장관급인 반면, 기무사령관은 3성장군으로 국방장관의 명령을 받는다는 점에서 국정원장보다는 하위직급으로 봐야 한다. 아울러 기무사는 종합정보기관인 국정원의 조정을 받아야 한다.

국정원의 예산으로 집행하는 기무사의 사업은 국정원의 감사를 받아야 한다. 하지만 역사적으로나 실질적으로 두 기관은 상하관계라기 보다는 협력관계에 있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다.

국정원과 기무사가 독립적으로 협력하는 사이로 관계가 정상화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는다. 이승만 정권시대에는 국정원이 존재하지 않아 기무사(당시 특무부대)가 거의 유일한 정보기관이었다.

김창룡 특무부대장이 군과 민간의 대공업무를 한손에 틀어쥐고 초법적 권력을 행사한 것은 이 탓도 컸다. 국정원의 출발인 중앙정보부는 5ㆍ16 직후인 1961년 6월 박정희 대통령에 의해 창설됐다.

초대 중정부장은 박정희의 혁명동지이자 조카사위인 김종필 자민련 명예총재. 박정희는 중정을 우선하면서도 각종 정보기관의 직보체제를 확고히 함으로써 각 기관의 충성경쟁과 상호견제를 이끌어내는 방법을 썼다.

YS정권 때는 문민정권이란 구호에 걸맞게 기무사령관을 잠시 소장으로 격하시켜 상대적으로 국정원(당시 안기부)의 파워를 키웠다. DJ집권기에 들어서서는 국정원이 기무사의 상위에 올라서는 모양세가 한층 명확해졌다. 1998년 4월 국정원 조직개편에서 본청에 군담당 1개과를 신설한 것이 대표적이다.

이후 국정원 요원들은 국방부와 함참, 육해공 3군본부, 군사령부, 군단 등 예하부대를 출입하며 정보수집을 해왔다. 하지만 국정원의 이같은 활동은 어디까지나 기무사의 고유업무 영역을 침해하지 않는 선에서 이뤄졌다.

국정원과 기무사의 업무영역이 현재처럼 조정되고 관계가 정상화한 것은 대체로 5공 시절인 1984년으로 본다.

그 이전까지는 최고 권력자의 신임을 누가 더 얻는가에 따라 힘의 균형이 달라지는 비정상적인 행태가 적지않게 연출됐다. 국정원과 기무사 관계가 극적인 변화를 겪는 것은 역시 1979년 12ㆍ26사태와 뒤이은 일련의 정치풍파 속에서다.

김재규 당시 중정부장이 박정희 대통령의 시해범으로 체포된 직후 중정의 국장급 이상 간부들은 돌연 육군본부 벙커로 집합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육본벙커에 모인 중정 간부들은 현장에서 개별연행돼 보안사(기무사) 안가에서 심문을 받았다.

당연히 김재규 부장과의 공모를 비롯한 중정의 조직적 음모 여부를 밝혀내는 게 조사목적이었다. 중정본부와 각 지부도 보안사에 의해 접수됐다. 이때부터 중정은 단기간이긴 하지만 보안사에 의해 철저히 통제받는 신세로 전락했다.

박정희 대통령의 사망 다음날인 10월27일 김재규의 범행현장인 궁정동 안가로 현장검증을 나선 합수부 수사관들은 혹 있을지도 모르는 중정요원들의 저항에 대비해 만반의 준비를 갖췄다. 중무장한 청와대 경호실 헌병대와 보안사 수사관들이 안가를 포위해 내부를 완전히 접수한 후 현장검증에 들어갔다.


10·26 사태로 중정 시련, 5공 이후 정상화

당시 보안사 요원의 증언. “계엄 하에서 중정의 저항은 한계가 있었다. 무기도 보안사에 훨씬 열세였다.

계엄령이 선포되고 합수본부장(전두환 보안사령관)이 중정을 접수하면서 상황은 보안사의 절대우위로 돌아섰다. 중정의 구조개편은 보안사의 감독 하에서 이뤄졌다. 1980년 4월 전두환 중장이 보안사령관과 중정부장을 겸직하면서 중정에서 올라오는 보고는 합수부, 실제로는 보안사를 통해서 정리됐다.”

양측의 무장 수준은 현재도 역시 군기관인 기무사가 우위에 있는 것은 당연하다. 내곡동의 국정원은 검은색 제복에 자동소총으로 무장한 특전사 요원이 외곽경비를, 국정원 자체 요원이 내부경비를 하고 있다.

국정원의 외곽경비는 국방부에서 지원받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기무사는 모든 내외곽 경비를 자체적으로 해결하고 있다.

5공 정권이 본격출범하면서 기무사와 국정원 관계는 정상화의 발걸음을 내딛게 된다. 전두환 대통령이 비록 무력으로 정권을 만들긴 했지만 무력일변도로 국정을 수행할 수는 없는 데 따른 당연한 귀결이다.

적지않은 `외도'가 있었지만 기무사는 군내부 위주의 대공활동, 국정원은 군외부의 종합적 대공활동으로 업무영역이 뚜렷이 구분돼왔다.

이와 관련, 국정원과 기무사의 병존과 견제를 합리적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국가의 정보기관이 국정원 하나만 존재한다면 정보의 의도적 조작이 가능하지만 여타 정보기관과 병존할 경우에는 그럴 수 없다는 이야기다.

배연해 주간한국부 기자

입력시간 2000/10/24 21:19


배연해 주간한국부 seapower@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