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 게이트] 벤처가 뭐길래…꼬리무는 소문들

비정상적 투자열풍 편법·위법 난무

권력과 돈은 동전의 앞뒤면과 같다. 돈이 모이는 곳엔 항상 권력자가 꼬이고 무소불위의 권력 주변에는 항상 검은 돈의 악취가 풍긴다.

`6ㆍ25이후 최대의 국난'이라고 했던 IMF환란의 한파가 차츰 가시기 시작했던 지난해 말부터 불붙기 시작한 인터넷 벤처 열풍은 국내 경제 불황의 유일한 탈출구였다.

`모 개미투자가는 500만원으로 14억원을 벌었다', `프리코스닥 안하는 사람은 원시인', `100배를 노리는 사람들'이라는 등의 유행어가 항간에 떠돌았을 만큼 그야말로 벤처 열기는 대단했다.

미래의 성장 가능성이라는 막연한 기대감 하나만으로 코스닥 등록이 요원한 액면가 100원짜리 모 벤처회사 주식이 3달여만에 무려 250배가 되는 2만5,000원으로 단기급등하는 등 비정상적 투자열풍이 전국을 강타했었다.

당시 벤처 투자는 그야말로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여겨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직장인들은 회사일은 제쳐두고 증권조회에 열을 올렸고, 심지어는 농사 일 밖에 모르던 시골 아낙네까지 농가부채를 얻어 증권사 객장으로 뛰어들었을 정도였다.

`닷컴'자가 들어간 벤처회사들은 법인만 설립하면 몰려드는 투자자로 업무가 마비될 지경이었다. 모두가 투자할 곳이 없어 발을 동동 구르던, 그런 호시절이 한때 있었다.

이처럼 돈이 되는 곳에 권력이 꼬이지 않을 리 없었다. 여야 정치인들은 말할 것도 없고 고위 공무원, 재벌, 변호사와 의사 등 전문직 종사자, 언론인, 심지어는 학생, 교사, 교수들까지 너도나도 앞다퉈 벤처와 주식 투자에 뛰어들었다.

정치인이나 고위 공직자는 신분노출을 우려해 가ㆍ차명이나 가족 친지 친구 등의 명의로 벤처 기업이나 벤처 캐피탈의 지분을 사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그 진위가 명확히 확인된 경우는 드물다. 하지만 벤처기업의 CEO 사이에서 유력 고위 인사들이 지난해 말부터 테헤란 밸리에 뭉칫돈을 쏟아부었다는 사실은 이미 구문에 속한다.


"이번 사건은 벤처업계 비리중 극히 일부분"

초창기 벤처 세대의 한 CEO는 “2년전 회사설립 때 경영이 어려워 정치계에 있는 한 선배에게 투자를 요청하려고 찾아 갔는데 만나주지도 않았다.

그런데 지난해 이 선배가 갑자기 찾아와 `수억원을 투자하겠으니 받아달라'고 말해 정중히 거절했다. 그후 어떻게 알았는지 정계와 관계의 고위 인사들이 자꾸 투자를 요청해와 어쩔 수 없이 증자 때 참여시켜주었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솔직히 말해 코스닥 등록 심사를 받을 때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아 그렇게 했다”며 “우리 회사 말고도 상당수 벤처기업이 강화된 코스닥 등록 심사를 통과하거나 유망 기업이라는 인상을 투자자에게 보여주기 위해 유력 정치인이나 관료, 또는 경제학과 유명 교수들을 주주나 고문으로 영입한다”고 밝혔다.

정형근 한나라당 의원이 10월24일 금융감독원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M투신사 P펀드, 현정권의 실세인 K씨, 청와대의 높은 사람이 이번 정현준ㆍ이경자 비리에 연루된 것으로 보이는 의혹대상”이라며 정치인들의 영문 이니셜까지 거론하기도 했다.

벤처업계에서도 이번 사건을 `벤처회사-사채업자-신용금고-금감원-정치권'의 `5각 커넥션'으로 이어진 벤처업계의 비리 중 극히 일부가 드러난 것이라고 보고 있다.

이들 벤처기업과 벤처 캐피탈사들을 관리감독해야할 중소기업청이나 산업자원부 재정경제부 담당자의 개입정도는 더욱 심각하다.

금감원의 몇몇 간부들은 이번 사건에 대한 수사와 비난의 화살이 금감원에만 쏠리자 “유력 벤처사인 L사는 재경부 관료들이 돌봐주고 O사는 코스닥 위원회 간부와 직원들이 투자해놓고 뒤를 밀어주고 있다”고 폭로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금융계에서는 “Y사, B사, 그리고 또다른 Y사는 중기청과 산자부 및 정치권의 보호우산 아래 놓여있고 코스닥 우량기업인 N사는 모 투신사 펀드 매니저와 연계돼 있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

실제로 한 중기청의 간부는 지난해 인터넷 솔루션을 만드는 모 벤처기업에 친구의 이름으로 1억4,000만원을 투자한 사실이 확인됐다. 이 간부는 당시 장외에서 2만원 가까이 호가했던 이 회사 주식을 절반도 안되는 7,500원에 사는 특혜를 누렸다. 현재 이 주식은 4,000~5,000원 수준을 호가하고 있다.


유력인사들 투자 속속 드러나

언론계나 법조계도 예외가 아니다. 현재 모 중앙 언론사 최고위층 간부의 2세가 지난해 말 유망 인터넷 벤처기업 D사의 사모증자 때 수억원대의 투자를 하기도 했다.

또 모 대기업의 법률 고문을 지낸 K변호사는 지난해 이 회사가 인터넷 사업 진출을 위해 새로 설립한 한 벤처회사에 액면가로 1억원대의 주식을 인수하는 혜택을 보기도 했다.

벤처기업 입장에서도 유력 인사들이 투자했다는 것을 암암리에 소문을 내 자기 회사의 가치를 끌어올리는데 이용하고 있다.

특히 감사나 대출, 벤처회사 인증 작업, 코스닥 등록 작업시에 유력인사들을 후견인으로 활용하기도 한다. 모 벤처회사의 대표이사는 “요즘 같이 투자받기 힘든 시기에 `누구누구 인사가 투자해 뒤를 돌봐주는 회사'라고 하면 투자받기가 한결 쉽다”며 “예전에는 오히려 짐이 됐던 고위 인사들이 지금은 오히려 좋은 호재로 변했다”고 설명했다.

공평하게 위험을 감수한 투자는 누구나 누릴 수 있는 정당한 재산증식의 방편이다. 하지만 정치인이나 고위 공직자, 그리고 이를 감독해야 할 주무관청 인사의 투자는 거의 예외없이 사회ㆍ경제적 부작용을 동반한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이들 유력 인사들은 회사를 살려 막대한 시세차익을 올리겠다는 생각에 코스닥 등록 심사나, 증자시에 이들 회사에 특혜 압력을 행사하는 식의 편법을 동원한다.

특히 최근 들어 증시가 폭락하고 벤처 열기가 급랭해 운영자금이 부족한 경우에는 회사에 자금을 끌어다주기 위해 금융기관에 부당대출 압력을 가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대출 압력은 시중은행보다는 외압에 취약한 신용금고나 벤처캐피탈사 등이 대상이다. 또 일부에서는 이번에 문제가 된 금감원 장래준 국장처럼 노골적으로 투자 손실분에 대해 직접적 현금 보전을 요구하기도 한다.


도덕적 해이가 부른 파국

이런 벤처회사와 정ㆍ관계 인사들의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는 부실한 벤처기업의 생명을 연장시키고 금융기관의 부실을 유발, 결과적으로 국내 주식시장과 금융 시장의 왜곡을 초래한다.

증권업계의 한 관계자는 “올해 들어 코스닥에 등록한 많은 벤처기업이 증권사 담당 간부나 관계 기관 담당 직원에게 무상으로 자사 주식 일부를 건네주는 조건으로 실제 기업가치보다 높은 공모가를 산정해 떼돈을 번 경우가 많았다”며 “현재의 코스닥과 거래소 시장의 폭락도 이런 원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이라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요즘 코스닥 시장과 제3시장, 그리고 장외시장에서는 대박을 꿈꾸다 낭패를 본 개미 투자가의 한숨 소리가 그 어느 때보다 깊다. 하루 빨리 정ㆍ관계 인사나 금융기관 직원, 또는 특정 관계 인사들과 벤처회사와의 검은 유착 관계를 차단하는 대책을 마련해 현재와 같은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할 것이다.

송영웅 주간한국부 기자

입력시간 2000/10/31 21:38


송영웅 주간한국부 herosong@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