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마당] 깊어가는 가을의 색을 보고 느낀다

만추로 접어드는 11월에는 어쩐지 클래식 음악에 마음이 끌린다. 그것도 장중한 오페라나 오케스트라보다는 잔잔하면서도 마음을 열어주는 듯한 독주나 실내악이 더 반갑다.

그래서인지 11월에는 국내 연주자의 공연도 많지만 한국을 찾는 해외 연주자의 무대도 많다. 그중에는 접하기 힘든 연주나 레퍼토리도 적지 않다. 11월에 내한하는 해외 연주자의 공연 중 가볼 만한 세 가지를 소개한다.

'천상의 소리' 플룻 이중주

11일 영산 아트홀에서는 이색적인 플룻 이중주가 열린다. 프랑스 플루티스트 막상스 라뤼와 앙드라스 아도리앙이 한 무대에 서는 것. 라뤼는 장 피에르 랑팡과 함께 국내에 많이 알려진 플룻 연주자이고 헝가리 태생의 아도리앙 역시 80여장이 넘는 음반을 발매한 정상급 솔리스트다.

라뤼는 완벽한 테크닉과 상상력이 돋보이는 해석이, 아도리앙은 다양한 운지법을 앞세운, 힘있는 연주와 속도가 특징이다. 오보에와 함께 목관 악기를 대표하는 플룻의 이중주는 쉽게 들을 수 없는 협주. 투명하면서도 화사하고, 부드러우면서도 경쾌한 어울림이 낭만을 자아낸다.

거기에 하프 반주(조민정)가 곁들여지면 `천상의 소리'라는 세평에 저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이번 공연에서는 플룻 연주자들이 즐겨하는 바흐의 플룻과 피아노를 위한 트리오 소나타 F장조와 G장조 비롯, 하이든의 플룻 이중주곡 G장조, 베를리오즈의 두대의 플룻과 하프를 위한 트리오, 페트라시의 `천사의 대화' 등을 연주한다. (02)720-6633

자유와 유머의 선율

같은 날 열리는 바이올리니스트 길 샤함과 세종 솔로이스츠의 협연도 늦가을에 잘 어울리는 공연이 될 듯하다. 이스라엘 태생의 샤함은 스물 아홉의 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벌써부터 거장 소리를 듣는 연주자.

`한계를 모르는 바이올리니스트'라는 거창한 수식어가 늘 따라다닌다. 1989년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협연 예정이던 대선배 이자크 펄만이 뜻하지 않게 공연을 못하게 되자 그를 대신해 무대에 서면서부터 대번에 이름을 날렸다.

샤함은 바이올리니스트의 기본 테크닉은 물론이고 힘있고 거침없이 타오르는 자유로운 연주, 유연함과 유머까지 담아내는 독특한 해석으로 관객을 사로잡는다.

또 사람 좋아보이는 인상과 나이답지 않게 구부정한 연주 모습은 예민하고 꼼꼼하기만 할 것 같은 바이올리니스트에 대한 선입견을 바꾸어 놓는다.

세종 솔로이스츠와는 1997년 아스펜 음악제에서 처음 만났다. 이번에는 베베른, 보케리니, 비발디를 함께 연주한다. 특히 마지막은 샤함의 데뷔곡이었던 비발디의 사계로 장식한다.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 오후 7시30분. (02)580-1300

서정성 짙은 음색

16일에는 대중성과 예술성을 겸비했다는 평을 받고 있는 소프라노 캐슬린 배틀이 5년만에 한국 무대에 선다.

배틀은 제시 노먼, 바바라 헨드릭스와 함께 백인이 장악하고 있는 성악계에서 이름난 흑인 소프라노. 힘은 다소 부족하지만 서정적 음색과 빼어난 테크닉이 일품인 가수다.

또 성격이 까다로워 음악계에서 가장 기피하는 인물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1980년대에서 1990년대 중반까지 미국 메트로폴리탄 오페라를 대표했던 그는 52세라는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여전히 흔들림 없는 음색과 황홀한 고음을 쏟아낸다는 평을 받고 있다.

로스앤젤레스타임스는 그의 목소리를 가리켜 "달빛 조차도 들을 수 있고 만질 수 있게 만든다"고 표현했다. 헨델에서 대중음악과의 크로스오버에 이르는 폭넓은 레퍼토리도 강점.

이번 공연에서도 모차르트, 슈베르트, 도니제티 등의 낯익은 클래식 곡과 오페라 아리아는 물론 스페인 가곡과 가스펠 등 다양한 곡을 부른다. 오순영(피아노), 김현곤(클라리넷)이 협연한다. LG 아트센터. (02)2005-0114

[연극]



ㆍ전태일

우리나라 노동운동의 시초가 된 전태일의 30주기를 맞아 극단 한강이 그의 일생을 무대에 올린다. 평화시장의 봉제노동자였던 그의 삶과 그가 바라본 부조리한 현실, 근로기준법 준수를 외치며 자신의 몸을 불사르게 되기까지의 고뇌 등을 통해 현재의 노동자 문제를 되짚어본다.

대사 외에 춤과 마임을 결합한 배우의 몸 동작과 노래, 영상, 피아노 연주 등 다양한 형식으로 작품을 만들었다. 장소익 연출. 11월9, 10일 한국교회 100주년 기념관. (02)762-6036

ㆍ피지컬 시어터 페스티벌

지난해 일본에서 열렸던 1회 행사에 이어 이번에는 11월1일부터 5일까지 한일 양국의 극단들이 대학로 열린 극장에서 행사를 갖는다.

국내에서는 극단 코스테이지와 남긍호 마임 극단이, 일본에서는 스토아 하우스 컴퍼니와 극단 안도 엔도레스가 신체극을 뜻하는 피지컬 시어터의 다양한 형식을 선보인다. 재즈 색소폰 연주자 강태환이 다카다 미도리, 사토 마사히코 등과 함께 하는 무대도 마련된다. (02)762-0810

[콘서트]


ㆍ송정미 음악회

송정미는 우리나라에서 드물게 CCM(Contemporary Christian Music)을 하는 가수다. 교회음악의 전통에 대중음악을 접목시킨 CCM은 미국에서는 대중음악의 한 장르로 자리잡은지 이미 오래지만 국내에서는 아직 개척 분야.

숭실대 음악원 교수로 있으면서 CBS-FM 진행도 맡고 있는 송정미는 그래서 더 독보적이다. 대중적 인지도도 높고 나름대로의 음악성도 인정받고 있다.

이번 공연에서는 가스펠과 팝 외에 클래식과 국악 등 다양한 음악을 선보일 예정이다. 수익금의 5%는 북한동포 돕기에 쓰인다. 11월 9일부터 12일까지 LG 아트센터. (02)525-6929

ㆍ조용필 콘서트 2000-고독한 러너

지난해 대중가수로는 처음으로 예술의 전당 오페라 극장에 섰던 조용필이 다시 한번 같은 자리에서 콘서트를 연다.

올해로 쉰이 된 조용필의 공연은 레퍼토리나, 연주,음향, 무대장치 등에서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최고 수준. `돌아와요 부산항에', `창밖의 여자', `단발머리', `친구여', `고독한 러너' 등 그의 대표곡을 부를 예정이다.

반주는 위대한 탄생이 맡는다. 11월9일~14일 오후7시30분 예술의 전당 오페라 극장. (02)580-1300

ㆍ유진 박 콘서트 `현의 불꽃'

전자 바이올린을 들고 파격적 연주를 들려주는 유진 박이 10월18일 여수를 시작으로 전국투어 중이다. 11월 5일에는 파주 시민회관, 6일 안양 문예회관. 8일 대전 우송예술회관에서 공연을 갖는다. 크로스오버를 즐기는 그답게 이번에는 대금산조의 명인 이생강, 가야금연주가 임경주 등과 협연한다. 정명주의 명무, 스윙재즈 댄스 팀도 함께 한다. (02)501-5153

ㆍ틴틴 파이브

`머리 치워 머리'로 5년 만에 활동을 재개한 개그맨 출신 그룹 틴틴 파이브(홍록기, 표인봉, 김경식, 이동우, 이웅호)가 3집 홍보를 위한 콘서트를 갖는다.

3집 수록곡 외에 로보캅 개그 등 각자의 주특기와 새롭게 연습한 춤, 마임, 마술 등을 선보인다. 이들과 동년배인 클론의 강원래가 안무를 맡았다. 11월4일 울산 KBS홀, 11일 소공동 롯데 호텔. (02)574-6882

[영화]



ㆍ첨언밀어 (甛言密語)

`가을날의 동화', `첨밀밀', `유리의 성' 등과 흡사한 분위기의 홍콩 멜로물. 홍콩의 젊은 인기 배우인 몽가혜와 고천락이 주연을 맡아 실연후 외딴 섬으로 여행을 온 여자와 그 섬에 살고 있는 순박한 청년을 연기한다.

극적인 줄거리를 삼가는 대신 잔잔한 에피소드와 그림 같은 화면으로 영화를 만들었다. 주제곡인 올드팝 `Sealed with a kiss'의 분위기를 떠올리면 된다. 11월4일 개봉.

[음반]



ㆍGigs 2집

시류에 영합하지 않고 자신의 음악색을 유지해온 여섯명의 젊은 음악인이 모여 만든 긱스의 두번째 작품. 패닉의 이적과 버클리 음대 출신의 정원영(피아노)과 한상원(기타)이 주축이 된 이번 음반은 록과 펑크의 결합이라는 긱스의 대전제에 보다 충실해졌다.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움과 비슷하면서도 똑같지는 않은 여섯 가지 음악, 댄스와는 다른 흥취를 전해주는 펑크 리듬, 웃음과 동감을 자아내는 노랫말이 매력적이다.

[국악]



ㆍ장대장 타령

예인 국악예술원은 11월8일 국립극장 해오름 극장에서 장대장 타령을 공연한다. 장대장 타령은 남도 판소리와는 달리 극형식을 갖춘 경기 창극으로 1910년대에 명창 박춘재 등이 자주 불렀던 재담 창극.

귀한 집 아들로 자라 세상물정에 어두운 장대장이 무당을 부인으로 얻으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익살맞게 그렸다. 김관규 연출, 유창, 최영숙, 백영춘 등 출연. (02)533-6834


『여성영화인 축제』


여성영화인 모임이 11월10일부터 12일까지 문화일보홀과 문화일보 갤러리에서 여성영화인 축제를 연다. 이번 행사의 주제는 `여성 영화인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 60대 최고의 여배우 중 한사람으로 꼽혔던 최은희가 감독을 맡았던 화제작 `민며느리'(64)를 36년만에 다시 볼 수 있다.

또 김미희, 심재명, 오정완, 유희숙 등 현재 활발하게 활동하는 여성 제작자의 작품 `주유소 습격사건', `공동경비구역 JSA', `눈물', `파란대문' 등이 상영되고 미래 한국영화의 일익을 담당한 여성 감독의 단편작품도 공모한다.

이밖에 여성 스태프들이 만들었던 영화 의상과 소품 전시회, 여성영화인의 역사 토론회 등도 열린다. 문의전화 (02)3673-2168

■ 한국 영상자료원은 11월6일부터 11일까지 원내 시사실에서 김혜정 회고전을 갖는다. 김혜정은 1950년대 말부터 10년 동안 활동했던 글래머 스타.

`아내는 고백한다', `죽은 자와 산 자', `아카시아 꽃잎 필 때' 등에 출연, 당시로서는 드문 육감적 몸매로 인기를 모았다. 이번 회고전에는 `단발머리', `꿈', `나도 인간이 되련다', `천년호' 등 5편이 상영된다. (02)521-3147

김지영 주간한국부 기자

입력시간 2000/10/31 21:48


김지영 주간한국부 koshaq@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