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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ㆍ미관계와 한반도] 역사의 물꼬 바꿀 의미있는 만남

[북ㆍ미관계와 한반도] 역사의 물꼬 바꿀 의미있는 만남

미 국무, 평양방문…북ㆍ미 정상화 타진

“김정일 위원장과 역사, 지역문제, 현안 및 경제협력 문제 등을 논의했다. 김 위원장은 대단히 대단히 정중하고 경청하는 자세였으며 굉장히 많은 것을 알고 있었다.”

평양에서 서해 직항로를 통해 서울에 온 매들린 올브라이트는 10월25일 오전 김대중 대통령을 만난 자리에서 김 위원장을 매우 높이 평가했다.

김 대통령이 6월 남북정상회담 후 내린 김 위원장에 대한 평가와 거의 비슷한 수준이다. 적어도 김정일에 대한 평가에 있어서는 한미공조가 확실하다고 봐도 무방할 것 같다.

10월23일 오전 7시께 올브라이트 장관은 보잉 757-200 전용기편으로 평양 순안공항을 통해 북한에 첫발을 디뎠다.

워싱턴에서 알래스카를 경유해 지구를 반바퀴 돌아온 여정이었다. 공항에서는 김계관 외무성 부상 등 간부들이 출영해 올브라이트 방북의 출발은 평범했다. 숙소는 온갖 꽃이 만발한다는 백화원 초대소. 김 대통령도 정상회담 당시 묵었던 곳이다.


김 위원장, 파격적인 숙소 방문

올브라이트의 수행원은 미국의 북한 전문가들이 망라됐다. 웬디 셔먼 대북정책조정관, 스탠리 로스 동아태차관보, 로버트 아인혼 비확산담당 차관보, 찰스 카트먼 한반도평화회담 담당특사, 마이클 시헌 테러정책조정관, 찰스 프리처드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아시아 담당 선임국장 등이 그 면면. 올브라이트의 이번 방북에 걸린 외교적 무게를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방북 첫날 올브라이트의 일정은 오전까지만 해도 특별할 것이 없었다. 우선 김정일의 특사 자격으로 10월9~12일 워싱턴을 방문했던 조명록 국방위 제1부위원장과 회동했다.

다만 조명록과의 회동장소가 김일성 주석의 시신이 안치된 금수산 기념궁전이었고, 이에 따라 모양새가 약간 이상했지만 미국측은 별 의미부여를 하지 않았다. 오전 11시경에는 세계식량계획(WFP)의 지원을 받고 있는 평양시 낙랑구역의 정백2 유치원을 방문했다.

파격은 오후부터 일어났다. 본래 하루 뒤(24일)로 예정됐던 김정일-올브라이트 회동이 앞당겨졌다. 김정일 위원장이 오후 3시께 백화원 초대소로 직접 찾아와 회담(북한의 표현으로는 `접견' 또는 `만남')이 시작됐다.

손님이 주인을 의전방문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지도자가 방문 대표단의 숙소를 직접 찾아가 만나는 것은 매우 드문 일이다. 3시간 여 계속된 이 회담에서 올브라이트는 빌 클린턴 미 대통령의 친서를 김 위원장에게 전달했다. 외교적 메시지를 담고 있는 것으로 유명한 올브라이트의 브로치는 이때 성조기 모양이었다.

김 위원장은 이날 오후에만 세 차례나 올브라이트와 자리를 함께 해 충분한 `데이트 시간'을 가졌다. 두번째 만남은 집단체조 관람. 김 위원장은 평양 5ㆍ1경기장에서 진행된 10만명 집단체조와 예술공연 `백전백승 조선로동당'을 올브라이트와 나란히 앉아 관람했다.

집단체조의 카드섹션에서 대포동 미사일이 발사되는 장면이 나오자 김 위원장은 올브라이트 장관으로 고개를 돌리며 의미있는 한마디를 건넸다. “이것이 첫번째 위성발사이자 마지막이 될 것이다.”

세번째 데이트는 백화원 초대소에서 김 위원장이 주최한 만찬. 김 위원장은 백남순 외무상이 주최해도 될 만찬을 굳이 직접 주최해 올브라이트에게 최대한의 성의를 표시했다.

김 위원장은 조명록이 대독한 환영사에서 “올브라이트 장관의 방문으로 새로운 조ㆍ미관계가 형성되고 있다”고 말했다.

북ㆍ미 선린우호관계가 한반도와 동북아에 미치는 영향력이 주로 언급됐다. 올브라이트는 북ㆍ미 공동 코뮤니케를 높이 평가하고 “내일 회담에서 더 많은 결실이 있기를 기대한다”며 답사했다. 만찬석상에서 올브라이트의 브로치는 성조기에서 하트 모양으로 바뀌어있었다.


네차례 만남으로 상당수준의 신뢰 쌓아

이틀째 올브라이트 장관의 일정은 만수대 의사당에서 열린 김영남 최고인민위원회 상임위원장, 백남순 외무상과의 면담으로 시작됐다. 오후 1시께는 국방위원회 봉화리 초대소에서 조명록과 오찬이 있었다.

오후 3시40분경에는 김 위원장이 백화원 초대소로 찾아오면서 4번째 `데이트'가 이어졌다. 이날 2차 회담에서 김 위원장은 “어제 우리가 나눈 3시간의 대화가 50년간의 침묵을 깨기에는 충분하다고 믿지 않는다”며 말을 꺼냈다.

회담 내용은 11월 중순으로 예상되는 클린턴 대통령의 방북 문제 및 클린턴-김정일 정상회담 성사에 앞선 미해결 현안 타결에 집중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저녁 올브라이트는 기자회견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실용적, 현실적이고 남의 말을 경청하며 결단력이 있다”고 말했다.

올브라이트의 이번 방북은 조명록의 방미에 대한 답방형식으로 이뤄졌다. 하지만 그의 방문은 명시적인 외교적 임무를 띠고 이뤄졌다는 점에서 특히 주목된다. 그의 미션은 클린턴의 방북 및 이와 관련된 양국의 현안을 논의하는 것이었다.

클린턴의 방북은 북ㆍ미 관계정상화, 또는 수교와 동일선상에 있는 사안이다. 북ㆍ미간 현안이 타결되거나 타결 가능성이 없다면 클린턴의 방북은 당연히 불발로 끝나게 된다. 양국간 현안은 미사일, 핵, 테러문제다.

이 세가지 사안 중 어느 것에도 중요한 진전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클린턴의 방북은 어렵다고 봐야 한다.

10월12일 조명록의 방미로 채택된 북ㆍ미 공동 코뮤니케는 `쌍무관계를 근본적으로 개선하는 조치를 취하기로 결정했다'고 명시했다.

아울러 북한은 “미국의 우리의 영토와 체제에 대한 안전을 담보할 경우 중대한 결심을 할 수도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이같은 정황을 감안할 때 이번 방북에서 김 위원장과 올브라이트가 가진 4차례의 데이트는 매우 희망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다고 봐야 한다.


한·미관계에 중요한 변화 예상

올브라이트는 김 대통령을 만나 방북결과를 설명하는 자리에서 미사일 문제에서 중요한 진전을 이뤘다고 밝혔다.

김 위원장이 장거리 탄도미사일 시험발사 중단 의사를 밝혔다는 것이다. 아울러 클린턴의 방북 문제도 긍정적인 방향으로 진행됐다고 설명했다.

올브라이트에 따르면 북한 미사일 문제와 관련해 조만간 북ㆍ미 전문가 회담이 열릴 예정이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 영구유예에 따른 후속조치와 보상문제가 주요 논의대상일 가능성이 크다.

북ㆍ미간 관계 급진전은 한국에 어떤 영향을 끼칠까. 김 대통령은 북ㆍ미 관계개선이 긍극적으로 한반도의 긴장완화와 평화정착에 기여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한국 외교에서는 이것이 새로운 도전으로 작용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미국에게 남북한이 동등한 비중의 상대역으로 재조정될 공산이 없지 않기 때문이다.

배연해 주간한국부 기자 seapower@hk.co.kr

입력시간 2000/10/31 2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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