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차이나타운] 차이나타운은 화교자본 유치 창구

21세기 대중화경제권 겨냥한 기반 다지기에 필요

전세계 화교(보다 광범위하게는 화인ㆍ華人)는 약 5,500만명. 이중 85%가 홍콩과 마카오를 포함한 동남아 지역에 몰려있다. 나머지는 미국과 호주, 유럽, 일본 등에 분산돼 있다.

이들 화교가 보유하고 있는 유동자산은 약 2조달러. 일시에 동원할 수 있는 현금은 3,000억 달러를 넘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재산 5억달러 이상 화교 기업인은 150여명으로 추산된다.

화교와 화인은 의미가 다르다. 화교(華僑)는 중국이나 대만 국적을 가진 해외거주 중국인을 가리킨다. 반면 화인(華人)은 거주국으로 귀화해 현지 국적을 취득한 중국인 혈통자를 말한다.

흔히 화교로 불리는 중국인들은 실제로 대부분 화인이다. 한국 화교는 대부분 대만국적(중국국적은 극소수)을 가진 진정한 의미의 화교다. 화인들은 국적에 관계없이 중국인이라는 문화, 혈통적 동질성으로 뭉치는 경향이 있다.

화인 경제인(화상ㆍ華商)들은 1979년 중국의 개혁ㆍ개방 후 중국정부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대중국 투자의 중핵 역할을 했다.(이하 편의상 화교로 통칭)


막강 자본, 투자 이끌 정책 절실

21세기를 중국과 중국인의 세기로 보는 견해가 많다. 중국과 세계를 연결하는 네트워크로서 화교의 중요성도 그만큼 커지고 있다.

한국에서 IMF를 전후해 차이나타운 건설 문제가 심심찮게 거론된 것은 이와 연장선상에 있다. 거대한 해외 화교자본을 유치하는 창구로서 차이나타운을 건설하겠다는 것이 그 기본적인 발상이다.

차이나타운 건설을 희망하고 있거나 실질적인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곳은 각급 지방자치단체와 화교 관련 단체들. 대표적인 지자체는 서울, 부산, 인천, 경기도, 전북, 제주도 등이다.

하지만 결론부터 말해 지금까지 가시적인 성과를 거둔 지역은 한 곳도 없다.

건설 당위성에도 불구하고 인적 네트워크와 기반설비 부족으로 해외 화교의 관심을 거의 끌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지자체의 한건주의 정책으로 인해 희망사항을 발표부터 해놓은 곳도 있다.

서울에서는 서울화교협회와 양필승 건국대 사학과 교수 등이 차이나타운 건설추진위를 만들어 시당국과 논의를 해왔다. 당초 차이나타운 예정지가 한강의 뚝섬으로 거론됐으나 시당국이 이를 공식 부인하는 바람에 없던 일이 됐다.

월드컵 경기장이 들어설 상암 신도시 첨단산업단지가 다시 거론돼 추진위와 시당국이 협의중이지만 뚜렷한 청사진은 내놓지 못하고 있다.

양 교수는 “아직 성사 여부를 밝히긴 어려운 단계지만, 서울시측이 차이나타운 예정지에 대한 조건을 제시하지 않고 있어 답보상태”라고 말했다. 각종 비즈니스 조건이 분명치 않은 상황에서 투자할 화교자본이 있을 리 없다는 이야기다.

차이나타운 계획이 비교적 구체적인 인천시의 경우에도 상황은 비슷하다. 인천시가 계획중인 차이나타운 예정지는 현재 매립공사가 진행중인 송도 신개발지. 갯벌을 매립해 조성할 6개 공구의 부지 535만평 중 1공구 10만평을 `중국업무지역'으로 만든다는 것이다.

인천시는 땅을 제공하고 건물을 비롯한 각종 업무시설은 해외 화교자본을 유치해 조성한다는 것이 기본적인 계획이다.


청사진 불투면, 인적 네트워크도 미미

인천시는 해외 화교자본 유치를 위해 국내 화교들로 구성된 `한국화교경제인협회'와 상호업무협력을 위한 양해각서를 체결해 놓고 있다. 국내 화교로 하여금 해외자본 유치활동을 벌이게 한다는 계산에서다.

하지만 지난해 싱가포르 투자회사에서 3억1,000만달러 투자 의향서를 전해 왔을 뿐 실제적인 투자유치는 전혀 없는 상태다. IMF 탓이기도 하겠지만 국내기업의 입주 신청도 전무하다.

투자유치가 안되는 이유는 간단하다. 차이나타운이 들어설 1공구 134만평은 2003년 초나 돼야 매립이 완료될 예정인데다, 시당국이 명확한 투자조건을 제시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에서 가장 계산이 빠르다'는 화상들이 땅도 없고, 조건도 분명치 않은 상황에서 투자하리라 기대하기는 어렵다. 또 하나는 해외자본을 유치할 국내 화교의 역량이다.

한국에는 현재 해외 화교자본가에 명함을 내밀만한 능력자가 없다. 당연히 국내외 화교간 인적 네트워크도 형성되지 못했다. 한국화교경제인협회가 최근부터 세계화상회의 참가 등을 통해 네트워크 형성에 나서고 있지만 역부족이다.

인위적인 대규모 차이나타운 조성은 해외 화교와 국내 화교가 함께 참여하는 방향이 바람직하다. 해외 화교는 자본과 주요 소프트웨어를 담당하고, 자금력이 없는 국내 화교는 지역내 상가의 중소상인으로서 주변을 채워가는 방식이다.

하지만 상당수 국내 화교들은 차이나타운 건설에 비관적이다. 전망도 불투명하고, 입주자에 대한 우대혜택도 분명치 않은 차이나타운에 누가 기존에 하던 사업을 그만두고 이주하겠느냐는 반응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해외의 차이나타운은 거의 대부분 자연발생적으로 이뤄졌다. 서서히 화교 집단촌이 형성되면서 중국인 거리의 특색을 띠게 되고, 이 가운데서 일부가 부를 축적해 자본가로 등장하는 형태였다.

한국의 인위적 차이나타운 건설 움직임에 대해 일부에서는 “시기를 놓쳤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이미 자생적 화교자본의 씨가 마르고, 떠날 사람은 떠난 상황에서 차이나타운 조성은 어렵다는 이야기다.


인천에 소규모 차이나타운 들어서

대규모 차이나타운 건설에 비해 인천시가 중구 선린동 인근에 추진중인 사업은 비교적 실효성이 높은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인천시는 인천역에서 자유공원에 이르는 북성로 지역을 차이나타운 시범지역으로 조성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초기 한국 화교의 집단촌이자, 아직 상당수 화교가 남아있는 이 지역을 소규모 차이나타운으로 만들어 중국권 관광객을 유치하겠다는 복안이다.

이를 위해 시는 우선적으로 이 지역에 연건평 3,500평 규모의 숙박, 식당, 쇼핑센터를 건설할 예정이다. 인천을 들르는 중국 관광객들에게 중저가의 편의시설을 제공함으로써 차이나타운 부흥의 씨를 뿌리겠다는 것이다.

인천역 맞은편 북성로 입구에는 중국 웨이하이(威海)시가 기증한 높이 10m, 폭 14m의 파이로우(牌樓)가 세워지고 있다. 파이로우는 차이나타운을 알리기 위해 거리 입구에 세워지는 대문형태의 전통 조형물이다.

인천시의 우호도시인 웨이하이시는 파이로우 건설에 필요한 모든 자재와 인력을 중국에서 조달했다. 시 관계자는 중국 기술자들이 기둥 시멘트 타설까지 일일이 수작업으로 했다며 `만만디'를 떠올렸다.

차이나타운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차이나타운은 화교가 아닌 한국인의 잔치가 돼서는 성공할 수 없다. 화인을 포함한 화교에 활동무대를 마련해 주는 것이 차이나타운 건설 작업이다.

대규모 차이나타운 건설과 화교자본 유치는 지자체 단독으로 수행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정부차원의 입지선정과 지원노력이 필수적이다. 차이나타운이 없는 한국은 역동적인 21세기 범중화경제권에서 불이익을 감수해야 한다.

배연해 주간한국부 기자

입력시간 2000/10/31 23:10


배연해 주간한국부 seapower@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