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풍향계] 면책특권 공방 어디까지

16대 국회의 첫 국정감사가 11월7일로 막을 내렸다. 이번 국감은 의원들의 국감 사상 최대 출석률을 기록한 가운데 정책대안 제시가 늘고 일문일답식 감사가 일부 도입되는 등 과거보다 개선된 점이 적지 않았다.

그러나 국감 도중에 대형 의혹사건이 불거지면서 정쟁과 파행으로 얼룩졌고, 일부 의원의 저질 폭언, 근거가 불명확한 치고빠지기식 한건주의 등은 여전했다.

특히 법사위의 대검찰청 감사에서 한나라당 이주영 의원이 `정현준ㆍ이경자 로비 의혹사건'과 관련해 이니셜로 거론되던 KㆍKㆍKㆍP씨의 실명을 거론한 것을 둘러싸고 여야의 가파른 대치가 국감이후 정국으로 이월됐다.

법사위의 남은 감사 일정이 여당의원의 불참으로 무산됐을 뿐만 아니라 민주당과 한나라당 간에 면책특권의 인정 범위와 이주영 의원의 제재를 놓고 공방이 격화하고 있다.


“실명 고의도 언급” “의혹해소차원 발언”

민주당은 이 의원을 허위사실 유포에 의한 명예훼손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고, 실명이 거론된 권노갑 최고위원, 김옥두ㆍ 김홍일 의원은 이 의원에 대해 민사소송를 제기할 태세다.

민주당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6일 최고위원회의를 열어 이 의원의 의원직 제명 결의안을 국회에 내기로 결정했다.

민주당은 “이 의원이 자신의 발언으로 타인의 명예가 훼손될 것임을 뻔히 알면서도 고의로 언급했고, 그 스스로도 근거와 증거가 없다고 인정한 만큼 명백히 면책특권을 일탈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민주당은 특히 한나라당 지도부가 이 의원이 실명을 언급하도록 사주했다며 이회창 총재에 대해서도 정치적 책임론을 거론하고 있다.

그러나 한나라당은 야당 탄압이라고 격렬하게 저항하고 있다. 우선 “이 의원의 발언이 공식회의장인 국정감사장에서 한 직무상 언급인 데다, 여권 인사 4인의 명예를 훼손하려는 것이 아니라 시중에 나도는 의혹을 해소하기 위해 국회의원으로서 당연히 할 수 있는 발언을 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야당은 정보를 가지고 있는 여당과는 달리 시중에 떠도는 소문을 확인할 방법이 없는 만큼 국회에서 소문에 대한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것은 불가피하다는 논리다. 국회의원의 면책특권 범위에 해당하는 것은 당연하며 따라서 이 의원에 대한 민주당의 대응은 뻔뻔한 정치공세이자 야당 탄압이라는 것이다.

한나라당은 민주당이 여권 실세의 연루 의혹이 일고 있는 이번 사건을 덮기 위해 이주영 의원에 대한 과잉대응을 하고 있다는 주장도 펴고 있다.

현재 국회 의석 분포상 민주당이 추진하고 있는 이주영의원 의원직 제명안이 가결될 가능성은 희박하고 검찰에 낸 고소나 당사자들이 제기한 민사소송도 사안의 정치적 성격 때문에 흐지부지될 개연성이 높다.

그러나 정치권과 법조계를 중심으로 의원의 면책특권의 범위에 대한 논란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검찰총장과 대검차장에 대한 탄핵소추안도 이번 주의 뜨거운 쟁점이다. 한나라당은 당초 국감이 끝난 다음날인 11월8일 탄핵소추안을 본회의에 보고토록 이만섭 국회의장에게 요구했다.

소추안이 본회의에 보고되면 국회법에 따라 72시간 이내에 처리해야 한다. 한나라당은 72시간의 시한인 11일이 토요일이어서 전날인 10일 표결처리를 희망해왔다. 그러나 이 의장이 본회의 보고에 대해 아직 명확한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어 처리 여부는 매우 유동적이다.


탄핵소추안 정치적처리 모색할 듯

여당은 이 사안을 표결처리할 경우 의석분포나 현재 의원들의 기류상 불리하다고 보고 가능한한 표결로 가지 않고 정치적으로 처리하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특히 자민련의 내부기류가 복잡해 예전처럼 일사불란한 공조체제를 기대할 수 없는 형편이어서 민주당은 한나라당과 물밑접촉 등을 통해 담판을 시도중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최근 민주당 의원총회에서 대검차장 출신인 이원성 의원이 한 `검찰에 의한 정치개혁 발언'도 여야를 가리지 않고 검찰에 대한 국회의원의 감정을 악화시키고 있는 것으로 분석돼 여당 지도부를 곤혹스럽게 만들고 있다.

국정감사 이후의 중요 정치일정으로 한빛은행 불법대출 외압 사건에 대한 국정조사도 있다. 여야는 당초 이 국정조사를 국감 중이나 국감 직후에 실시하기로 의견을 모았으나 `정ㆍ이 사건' 등 대형 의혹사건이 국감 기간에 터져나오면서 일정이 늦춰질 수 밖에 없게 됐다. 한빛은행 사건에 대한 정치권과 여론의 관심도 많이 희석된 분위기다.

국회의사 일정이 예정대로 진행된다면 9일과 10일 교섭단체 대표연설이 있을 예정이지만 여야는 아직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와 민주당 서영훈 대표의 연설순서를 정하지 못하고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11월13일부터는 대정부질문이 이어진다.

이계성 정치부차장

입력시간 2000/11/07 1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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