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3 부실기업 퇴출] 건설한국 신화 접은 55살 동아건설

채권단 신규자금지원 거부, 워크아웃 중단 결정

1945년 8월 대전시 대흥동 487번지에 자본금 5만원으로 설립된 충남토건사(창업주 최준문ㆍ1985년 작고). `건설한국'을 이끌게 될 동아건설의 시작이었다.

그로부터 55년 뒤인 2000년 10월30일, 기업개선작업(워크아웃) 상태로 중환자실에서 회복을 기다리던 동아건설은 주치의(채권은행단)로부터 `더이상 희망이 없다'는 통보를 받았다.

3,409억원의 추가자금 지원만 있으면 일어날 수 있다며 채권단에 매달려 왔던 동아건설에게 채권단은 신규자금 지원을 거부하고 워크아웃 중단 결정을 내린 것이다. 회복이 불가능하니 중환자실에서 퇴원, 집에서 조용히 여생을 정리하라는 말이었다.

다음날 동아건설은 모든 것을 체념한 듯 스스로 법정관리를 선택했다. 도대체 그동안 동아건설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10월의 마지막 날, 예고된 퇴출

10월30일 저녁, 채권단이 동아건설에 대한 신규자금 지원을 거부하고 워크아웃 중단 결정을 내렸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동아건설 직원들은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정말이냐”며 힘없이 되물었다.

워크아웃 중단이 사실상 퇴출을 의미한다는 것을 직원들이 모를 리 없었다. 한 임원은 “지난 주까지만 해도 살리는 쪽으로 가는 분위기였는데…”라며 말끝을 잇지 못했다. 그는 “지난 주 노사가 합의해 직원수의 40%에 이르는 1,500명을 감원하기로 한 것도 모두 물거품이 되버렸다”고 아쉬워했다.

다음날 최동섭 회장을 비롯한 동아건설 임원은 긴급 이사회를 열어 법정관리를 신청하기로 결정했다. 회사가 없어질 지도 모르는 급박한 상황에서 마지막으로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의 결정이었다.

최동섭 회장은 “법정관리를 통해서라도 동아건설의 이름을 이어가야 한다”며 “동요하지 말고 남은 힘을 모아 각자 제 자리를 지킬 때 법정관리라는 마지막 기회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직원들은 이날 사내 게시판을 통해 그동안 가슴 속에 묻어뒀던 회한을 쏟아내기도 했다.

“이대로 그냥 주저앉기에는 동아에 대한 제 사랑이 너무 큽니다. 내일 당장 제가 동아를 떠날지라도 오늘 하루만큼은 제 일에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내일 당장 나가라고 해도 모레까지 남아서 제 일을 마무리하고 떠날 생각입니다.”

“동이 트는 새벽녁에/ 아침 일찍/ 건설현장에서 살아온 우리 /설익은 아침밥을 마누라에게 투정하는 날이 아쉽기만 하다(동아건설 사행시).”

동아건설이 희생양이 됐다는 울분에 찬 목소리도 터져나왔다. 동아건설 관계자는 “대마불사니, 개혁후퇴니 하는 여론의 압박에 견디지 못한 정부와 채권단이 희생양을 고른 것 아니냐”며 “우리 책임이 없다는 것은 아니지만 아쉬운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고 털어놓았다.

11월1일 동아건설은 전날 돌아온 316억원의 기업어음(CP) 및 회사채를 결제하지 못하고 1차 부도를 낸 데 이어 1일 은행 영업 마감시간까지도 이를 막지 못해 결국 최종 부도를 맞았다.


재계랭킹 10위까지 올랐던 건설 재벌

동아건설은 1945년 설립 후 1968년 공기업이었던 한국미창(현 대한통운)을 인수하는 등 한때 21개의 계열사를 거느리며 재계랭킹 10위까지 올랐던 전형적인 건설재벌이다.

1960년대 이후 토목, 플랜트 건설사업에 주력, 리비아 대수로 1단계(1983년)와 2단계(1990년) 공사를 수주하면서 사세가 절정에 이르렀다.

`세계 8대 불가사의', `인간이 만든 사막의 강'이라는 찬사를 받았던 리비아 대수로 공사는 1984년부터 1999년까지 무려 16년간 경부고속도로의 8배인 3,544㎞의 수로를 묻어 사막의 옥토화를 실현했다.

리비아 대수로 공사 수주를 계기로 해외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건설업체의 하나로 성가를 높이던 동아건설이 몰락의 길을 걷게 된 직접적 원인은 무리한 사업확장에 따른 과다차입 탓으로 볼 수 있다.

리비아 대수로 공사 등 해외 플랜트 공사에 주력해 온 동아건설은 대수로 공사대금을 기반으로 1990년대부터 민간 건축공사와 아파트 건설분야로 사업을 확대하다 1997년 말 예기치 않던 IMF체제를 맞으면서 유동성 위기에 직면했다.

이후 국내 건설경기 침체와 그에 따른 자금난을 이기지 못하고 1998년 9월 워크아웃 1호기업으로 지정되면서 몰락의 길로 접어들었다. 워크아웃에 들어가자마자 오너였던 최원석 회장이 퇴진하고 고병우 회장이 사령탑을 맡아 기업회생에 주력했으나 끝내 워크아웃 중단 사태를 맞았다.

워크아웃 중단의 이유는 42개에 이르는 채권단의 입장 차이가 조율되지 못해 과감한 지원이 이루어지지 않았던 탓이라는 분석도 있지만 그보다는 채권단의 불신을 초래한 동아건설 내부의 문제라는 지적이 많다.

특히 올 상반기 고병우 전회장의 정치자금 제공 의혹 사건이 확산, 경영권을 둘러싼 갈등과 오버랩되면서 내분은 절정에 달했다. 채권단은 결국 7월 최동섭 회장을 선임, 사태를 수습하려 했지만 동아건설의 악화된 경영상태는 더 이상 손을 대기 힘들 지경이 되고 말았다.


법정관리 신청, 파산은 면할 듯

동아건설은 현재 대리인 법무법인 광장에 법정관리 신청을 의뢰해놓은 상태다.

이후 동아건설 앞에 놓여진 길은 법정관리로 가거나 청산(파산)절차를 밟는 것. 아직 장담할 수는 없지만 법정관리가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크다.

청산으로 갈 경우 연쇄부도, 대량 실업사태 등 경제에 미칠 파장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동아건설의 협력업체는 500여개, 자재 납품업체까지 합하면 1,100여사며 국내 공공 발주공사 110건, 주택건설 사업 23건 등을 진행하고 있다.

법정관리를 신청하면 우선 재산보전처분이 내려지고 법정관리 인가가 나 본격적인 법정관리가 개시될 때까지 모든 채권ㆍ채무가 동결되고 진행중인 사업이 지연되는 등 차질이 예상된다. 신청후 개시까지는 보통 3~6개월 정도 걸리지만 사안의 중요성을 감안, 법원에서 신속히 처리할 가능성이 높다.

진성훈 경제부 기자

입력시간 2000/11/07 16:09


진성훈 경제부 blueji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