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와 오늘] 비상내각과 거국내각

지난 11월9일. 부도처리된 대우자동차 공장이 가동중지되었다. 미국은 백악관의 새 주인을 정하지 못하고 두 후보의 표차는 1,000표 안으로 좁혀졌다.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는 "지금 나라가 무너져내리고 있다"며 '비상내각' 구성을 위한 현 내각의 총사퇴를 요구하는 국회 대표연설을 했다.

미 뉴욕타임스의 국제문제 전문 칼럼니스트 토마스 프리드먼('렉서스와 오리브 나무-세계화 이해'의 저자)은 미 대통령 선거 역사중 가장 희귀한 이번 사건을 "이제 누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죄를 짓고 태어난다. 이제 처녀분만의 희망은 사라졌다"며 미국 최초의 '거국내각' 구성을 주장했다.

대법관, 감사원장, 국무총리를 지낸 한국의 다수당인 한나다당 총수의 시국인식이 올바른 것일까. 두번이나 퓰리쳐상을 받고 중동지역에서 레바논과 이스라엘의 특파원을 한, 클린턴이 대통령이 될 때 백악관 출입기자였던 프리드먼의 시대인식이 더 심각한 것일까.

이 총재는 우리의 헌법 아래에서 조각권(組閣權)이 대통령에게 있기에 대통령의 당직사퇴와 극심한 지역편중인사를 지양, 총체적 위기를 벗어날 비상내각의 구성을 주장했다.

평자들은 이를 "내각의 구성을 어떻게 할 것이냐의 문제 보다 김대중 대통령이 다음 대통령 선거에서 중립을 지키라고 요구하는 정치적 발언"이라고 평가했다. 그의 연설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셈이다.

무엇보다 조각권이 없는 야당 총재가 '거국내각'을 주장하지 않고 대통령에게 '비상내각'을 구성하라는 것은 현난국 해결에는 야당의 적극적 참여가 없는, '붕어 없는 붕어 빵'의 격이기 때문일 것이다. '상생의 정치', '비상시국의 정치'는 '비상내각'으로 풀어질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프리드맨은 다음 미국 대통령 선거를 노리지 않는 언론인이기에 과감하게 민주ㆍ공화당이 함께 비상 시국, 즉 민주주의의 요체인 대통령 선거제도에 위기가 닥친 시대에는 거국내각이 필요함을 주장했다. 우선 프리드먼은 미국의 거국내각에 들어설 인물을 과감히 거명했다.

이스라엘에서 1980년대 중반 특파원을 지낸 그는 이스라엘의 두 영웅 이지크 샤미르와 샤론 페레즈가 여야동수로 갈려 상쟁(相爭)하던 정국이 거국내각으로 상생(相生)하는것은 보았기 때문이다. 프리드먼은 "미국의 현시국은 부시 지사와 고어 부통령 중 누가 대통령이 되라도 '원죄(original sin)'속에 갇힌다"고 보고 있다.

부시가 대통령이 되면 국민의 투표에서 당선된 대통령이 아니며 선거인단에 의한 대통령으로써 플로리다 팜비치카운티의 '적절한 절차'를 거치지 못한, 개운치 않은 대통령이 된다는 것이다. 1960년대 후반 베트남전 반대데모 같은 사태가 진보 및 급진자유주의자 주도로 재현될 수 있다.

또한 고어가 법정투쟁을 통해 대통령이 되었을 때 근소한 차로 다수당인 공화당이 있는 의회는 그의 발목을 잡아 상쟁의 정치가 이루어 질 것이다. 거의 고어에게 간발의 차이로 대권을 넘긴 공화당의 지지자인 전체 인구의 49%는 미국의 법이 정치의 힘으로 운용되는것에 큰 반항심을 나타낼 것이다.

프리드먼은 "미국은 두 가지 면에서 정체에 빠져있고 양분되어 있다"고 보고 있다. 공화당은 시장경제를 위해 세금감면을, 민주당은 정부의 대량투자를 주장하고 있다.

또한 두 정당은 정부가 기선을 잡고 할 수 있는 어떤 국내외적 조치에도 서로 제동을 걸고 있다. 결론은 거국내각으로 이를 풀어야 한다는게 그의 결론이다.

프리드먼이 거명하는 거국내각의 각료명단은 파격적이다.

이마를 치게 한다. 부시가 대통령이 된다면 클린턴 전 대통령을 국무장관, 민주당 출신 전 상원의원 샘 넌(전 국방장관)을 국방장관, 죠 리버만 상원의원(고어 부통령의 러닝메이트)를 유엔대사, 고어 부통령을 내무장관에 임명하고 나머지 자리를 공화당이 차지하라는 것이다.

만일 고어가 대통령이 되면 국무장관에는 콜린 파월 전 합참의장, 국방장관에는 딕 체니 부통령 후보, 콘디 라이스(부시 후보의 안보보좌관)는 유엔대사, 그리고 반드시 전 대통령 조지 부시를 교육장관에 임명하고 나머지 각료는 민주당이 차지하라는 것이다.

프리드먼은 또 녹색당 후보인 랠프 레이더를 북한과의 수교후 북한대사로 보낼 것을 제의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주체 경제, 자유 경제, 자생 경제가 레이더의 '반세계주의'와 맥을 같이 하기에 사실 여부를 확인시키기 위해서라고 덧붙이고 있다.

이회창 총재는 농담 같은 진담인 프리드먼의 거국내각 구성 아이디어를 숙고해볼 필요가 있다.

박용배 세종대 겸임교수

입력시간 2000/11/14 2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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