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오현의 길따라 멋따라] 크로아티아 기행

아름다운 땅, 지중해의 숨겨진 보석

지중해의 지해(枝海)인 아드리아해를 끼고 있는 나라 크로아티아(Croatia). 우리에게는 여행 불모지다. 1996년까지 치열한 내전을 겪었던 이 나라에 대해 우리는 '아직도 전쟁 중'이라는 인식을 갖고 있다.

그러나 그곳의 총성은 이미 5년전 멎었다. 지금은 지중해의 넉넉한 평화를 함께 누리고 있다. '길따라 멋따라'의 필자 권오현 생활과학부 차장이 크로아티아를 다녀왔다. 유럽을 여행하는 사람이라면 꼭 한번 들러야 할 '정말 아름다운 곳'으로 꼽았다.

역사상 가장 추악한 전쟁이라고 했다. 겉으로는 독립을 내세웠지만 진짜 이유는 종교와 인종.

자신이 믿는 신과 다른 신을 섬기거나 자신의 것과 피가 틀린 사람을 죽였다. '종자를 없애겠다'며 악착같이 죽였다. 그래서 30만 명에 가까운 사람이 죽었다. 남녀노소 구별이 없었다. 아직 찾지 못한 사람이 15만 여 명이다. 그들도 죽었을 것이다.

1996년에 총성이 멎었으니 이제 겨우 5년이 흘렀다. 크로아티아(Croatia) 여행은 그 더러운 전쟁의 기억으로 시작됐다. 폐허 속에 뒹구는 부랑자들, 몸을 파는 여인들, 술에 취해 소리를 지르며 생을 저주하는 병자들, 마을 옆의 지뢰밭.. 기자는 전쟁을 겪지는 않았지만 그 상처는 보아왔다. 알량한 경험치로 상상할 수 있는 크로아티아의 풍경화는 참혹한 것이었다.


깊이있는 문화, 훼손되지 않은 환경

수도 자그레브의 국제공항에 들어설 때까지만 해도 그랬다. 우리나라 속초공항만 할까. 규모는 물론 시설도 보잘 것 없었다. 크로아티아 항공은 달랑 여객기 10대만을 운행한단다.

유럽의 한 나라라고 이야기하기에도 부끄러울 정도였다. 영락없는 후진국 중의 후진국, 전쟁의 덫에 걸려 스스로 망조가 든 나라, 1인당 국민소득 5,000 달러는 부풀려진 것임에 틀림이 없다. 온갖 혹평이 머리를 스쳤다.

이렇듯 저주에 가까운 크로아티아에 대한 선입견은 그러나 불과 몇 시간 만에 완전히 폭파됐다.

그곳에는 아름다운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행복하고, 풍요롭게. 그리고 유럽의 어느 선진국 못지 않게 훌륭한 자연과 문화가 있었다. 자연은 훼손되지 않았고, 문화는 깊이가 있었다. 비웃음에서 부끄러움으로. 크로아티아 여행은 내내 부끄러움으로 이어졌다.

크로아티아는 유럽에서도 가장 복잡한 역사를 갖고 있다. 모든 열강이 한번쯤은 점령했던 곳이다. 기원전 그리스제국부터 20세기 무솔리니의 이탈리아까지. 아시아로 진출하는 교두보인데다 빼어난 자연의 아름다움이 힘있는 자를 유혹했다. 덕분에(?) 유럽문화의 모든 것이 존재한다.

제우스, 주피터, 예수 그리스도, 그리고 알라까지 크로아티아의 문화 속에 녹아있다. 슬라브족의 피가 강하지만 크로아티아인의 대부분은 유구한 역사를 가진 혼혈인이다.

피가 섞이면 아름다움은 우성인자가 된다고 했던가. 그래서인지 사람들이 잘 생겼다. 여자는 물론 남자도. 이 미남 미녀들의 마음 속에 총칼을 휘두르며 서로를 죽이는 야수성이 숨어있었다니. 안타까왔다.

크로아티아는 기후로 따질 때 두곳으로 나뉜다. 대륙성 기후와 지중해성 기후다. 수도 자그레브가 있는 내륙은 영락없는 대륙성 기후다. 4계절이 뚜렷하고 겨울에는 눈이 내린다.

반면 아드리아해와 맞닿아 길게 뻗어있는 해안선은 지중해성 기후다. 야자나무가 있고 겨울에도 포근하다. 제주도를 닮았다.


동서양의 가교, 수도 자그레브

자그레브는 동서양의 가교다. 러시아를 횡단해 런던까지 이어지는 오리엔탈 익스프레스가 자그레브역을 통과한다. 자그레브의 중심권은 17세기를 기준으로 구시가지와 신시가지로 구분된다. 걸어서 여행을 할 수 있다. 몽땅 돌아보는데 반나절이면 충분하다.

신시가지는 길이 넓고 건물이 크며, 구시가지는 골목마다 운치가 넘친다. 가장 높은 건물은 자그레브 성당. 시내 어느 곳에서도 두 개의 첨탑이 얼른 눈에 띈다.

자그레브의 중심이기도 한 이 성당은 벌써 수십년째 공사중이다. 옛 모습을 남기려 하지만 옛 것은 항상 썩고 무너진다. 미마라 박물관이 명물이다. 고야의 것을 포함해 우수한 그림을 많이 소장하고 있다.

자그레브와 아드리아해의 중간 위치에 아름다운 호수가 있다. 플리트비츠다. 한개의 호수가 아니라 16개의 호수가 모여있는 곳이다. 호수는 같은 고도에 있지 않고 계단 식으로 서로 다른 높이에 있다.

가장 위의 호수와 맨 아래 호수의 표고차는 161m. 호수와 호수를 연결하는 물줄기는 당연히 폭포다. 크고 작은 폭포 수천개가 떨어진다. 원래는 강이었다. 석회석을 많이 품은 강물은 강바닥 돌출부에 석회석을 조금씩 쌓았다.

이는 석회 제방이 됐고 서서히 높아져 스스로 강물을 막았다. 지금도 석회 제방은 1년에 1~3㎝씩 높아진다고 한다. 호수와 폭포 사이사이에 통나무로 길을 만들고 긴 물길에는 유람선을 띄웠다. 호수 전체를 구석구석 구경할 수 있다.

석회석이 깔린 호수의 물은 푸른 색을 띠었다. 그리고 맑았다. 너무 맑아서 물이 아닌 듯 했다. 파란 유령 같았다. 떠 마시면 나도 유령이 될 것 같았다. 송어가 많다. 오랫동안 낚시를 금지했기 때문에 송어가 겁이 없다. 통나무길을 걷는 사람의 발자국 소리를 따라온다. 플리트비츠는 국립공원이다. 그리고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 자연유산이기도 하다.

아드리아 해안은 아름답다. 화강암 바위산이 1,700여 km의 해안선을 따라 솟아있다. 바위가 너무 단단해 식물이 뿌리를 내릴 수 없어 모두 민둥산이다. 마을과 도시는 그 산에 기생하듯 붙어있다.

마을은 보석같이 반짝거리고 마을을 잇는 해안도로는 보석을 꿰는 비단실이다. 하얀 벽과 붉은 지붕. 쪽빛 바닷물.. 늘 꿈꾸어왔던 여행지가 있다면 바로 이곳이리라.


'진정한 낙원' 두브로브니크

비단실의 맨 끝에 부드로브니크가 있다. 크로아티아 여행의 하이라이트이다. 크로아티아의 최남단으로 지중해로 향하는 통로다.

아일랜드의 문호 버나드 쇼는 "진정한 낙원을 찾는 이가 있다면 두브로브니크로 가라, 그리고 보라"고 했다. 내전이 치열했을 때 이곳도 폭격의 대상이었다.

유럽의 유명한 인류ㆍ역사학자들이 해안에 배를 띄우고 "우리를 먼저 폭파하라"며 방어했다. 덕분에 무사했다. 전쟁이 이 도시를 파괴했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다.

두브로브니크의 역사는 1,3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1세기부터 17세기까지 둘레 2㎞의 견고한 성을 쌓았다. 영국의 사자왕 리처드도 이 성을 쌓는 데 거액을 희사했다고 한다.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성은 여전히 사람들의 삶터다. 중심거리는 상가이고 외곽의 골목은 거주지다. 거미줄처럼 이어진 골목에는 빨래가 널려있고 아이들이 소리를 지르며 뛰논다.

밤풍경이 압권이다. 천년의 세월을 꿋꿋하게 버틴 건물들이 은은한 조명을 받는 가운데 사람들이 산책을 한다. 세월의 흐름을 이야기하듯 유리처럼 닳아버린 대리석 보도가 불빛을 반사한다.

천년이 넘는 건물 곳곳에 재즈바가 있다. 분위기는 고풍(古風)이 아니다. 고(古) 그 자체다. 음악에 재주가 있는 단골 손님이 즉흥연주를 한다. 실력이 만만치 않다. 그 소리에 넋을 잃다보면 천년의 시간을 거슬러 타임머신을 타고 있는 기분이 든다.


크로아티아는 어떤 나라?

크로아티아는 아직 우리에게 낯선 나라다. 그러나 유명한 발명품이 있다. 넥타이와 볼펜이다. 워낙 외세의 침략이 많아 아군임을 표시하기 위해 만들었던 것이 넥타이인데 전세계의 신사들이 애용하게 됐다.

크로아티아는 1991년까지 유고연방이었다. 종교와 인종갈등으로 1991년 독립을 선언하고 전쟁을 시작했다. 전쟁통에 30만여명이 목숨을 잃었고 서방의 중재로 전쟁을 종식하고 독립공화국으로 거듭났다.

자국 내에서 국호는 헤르바츠카,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국호는 'Croatia'다. 우리가 발음하는 '크로아티아'는 일본식이다.

인구는 480만여명으로 크로아티아인이 80% 이상을 차지하고 있으며 세르비아계, 헝가리계, 체코계 등이 소수민족으로 살고 있다. 수도인 자그레브에 전체 국민의 25%인 120만명이 거주한다. 국민의 90%가 가톨릭을 믿는다.

화폐 단위는 쿠나(kuna, kn)로 요즘 환율은 미화 1달러에 8.9 쿠나다. 물가는 우리보다 조금 싼 편으로 레스토랑에서 맥주 1병에 10~12kn을 받는다. 전기는 220볼트, 50㎐이며 수돗물을 마신다. 시간은 우리나라보다 8시간 늦다. 여행을 목적으로 할 경우 3개월간 비자 없이 입국할 수 있다.

음식은 담백하다. 프랑스나 이탈리아처럼 향기가 강한 소스가 없다. 그래서 한국인이라도 음식에 질리지 않고 장시간 여행을 할 수 있다.

크로아티아인은 친절하다. 특히 동양인이 귀하기 때문에 친절에 호기심까지 섞는다. 관광자원은 유럽 선진국에 못지 않지만 콧대가 세지 않다. 크로아티아 관광의 장점이기도 하다.

아직 한국 여행객을 유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나 이를 담당하는 국내 여행사가 없다. 가장 손쉬운 여행방법은 배낭여행. 특히 아드리아 해안을 따라 북과 남을 잇는 여행을 시도해봄 직하다.

모든 해안 마을에 팬션과 여관이 있고 마을과 마을을 잇는 버스가 있다. 6~9월 성수기를 피한다면 숙박시설이 텅텅 빈다. 항공편이 많지 않은 것이 흠이다. 성수기에는 유럽의 거의 모든 도시에서 자그레브나 두브로브니크로 직항이 뜨지만 비수기에는 거의 없다. 한국에서 여행을 하려면 프랑크푸르트를 거쳐야 한다.

이탈리아 베니스와 두브로브니크까지의 해안선 렌터카 여행도 고려해볼만 하다. 1,200㎞의 해안도로는 5박6일 혹은 7박8일 일정으로 주파가 가능하다. 두브로브니크에 본부를 둔 크로아티아의 대표적 여행사 아틀라스(ATLASㆍ385-20-442-222)에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영어로 의사소통을 해야 하는데 크로아티아인은 초등학교 때부터 영어를 배우기 때문에 꽤 능숙하다. 국내 여행사 중에는 콘돌코리아 여행사(02-735-3335)가 내년 초를 목표로 크로아티아 여행 상품을 준비하고 있다.

권오현 생활과학부 차장

입력시간 2000/11/15 2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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