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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교류좌담회] 고대 한반도와 일본열도의 교류사_1


새로운 역사읽기의 시작

▦이어령=지금과 같은 국민국가라는 근대인의 사고방식으로 생각지 않고 옛날을 본다면 상당히 자유롭게 와서 나라를 세우고 어떤 세력을 만들고 했을 수도 있지 않을까요.

오늘 우리가 일본이나 한국을 이런 시각을 포함해 다양한 시점에서 보기 시작했습니다. 국민국가라는 근세 이후의, 메이지유신 이후의 지배당하고 지배하는 관계에서 벗어나 하나의 자극적이고 역사적인 드라마를, 아주 초연하게 오픈 마인드(OPEN MIND)의 시각으로 보는 새로운 역사읽기가 시작됐습니다.

▦우메하라=일본어의 성립에 관한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일본어는 '데니오하(てにをは)'를 표기하는 것부터 시작합니다. 나중에는 가타가나와 히라가나로 표기할 수 있게 됐지만 한시, 한문으로 표기되었습니다. 근데 점점 글 표기가 생깁니다. 제1기에는 데니오하 표기가 없는 약체가(略體歌)라고 1합니다.

제2기에는 약간 표기가 생기고, 제3기에는 벌써 데니오하 표기가 이뤄집니다. 이렇게 가나로 표기하는 것이 벌써 한국에서는 이뤄졌던 것이 아닐까, 이두(吏讀)라고 하는 것이지요. 그 표기가 언제 어떻게 없어졌는지가 큰 문제입니다.

▦이어령=중요한 문제입니다. 원래 한국과 일본은 무문자문화에서 한자가 들어오면서 문자를 쓰기 시작했다는 점을 살펴봐야 합니다. 중국문화가 아무리 강력해도 한일관계에 미치지 못하는 것은 언어문제 때문입니다. 중국어는 S+V+O형으로 동사가 먼저 오고 목적어가 뒤에 옵니다.

한국과 일본은 똑같이 S+O+V형으로 목적어 다음에 동사가 옵니다. 중국과는 문화 일체감에서 뒤진다는 것입니다. 중국문화가 한반도와 일본을 휩쓸었어도 한국과 일본이 또다른 문화를 형성한 것은 언어 때문입니다.

문학의 세계에서도 언어의 세계에서도 언제 오늘날의 일본어가 정착됐는가 큰 문제가 됩니다만, 적어도 여기서 얘기할 수 있는 것은 야마토, 그 이전까지는 한국과 일본사람들이 마치 함경도와 제주 사람 만큼의 같은 말을 사용했다는 것입니다.

만요슈나 향가를 보면 큰 차이가 없었고, 방언과 비슷한 말이었습니다. 물건이 오고 간 것에서 시작해, 사람이 백번 오고 가더라도 마음에 있는 생각이 교류돼야 되는데 그 생각은 바로 언어이고 문자였던 것입니다.

한일 고대사의 마지막 종적, 수수께끼를 푸는 것은 문자와 언어를 파악하는 데서 계기가 마련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에다=문헌에 통역이라는 기술이 나오기 시작하는 것은 일본서기를 보면 유랴쿠 천황 때인 것으로 보입니다. 통역을 통사(通詞)라고 썼습니다. 5세기 후반경이 되면 외교를 할 때 통역이 필요했습니다.

한국에서 사절이 올 때도 공적인 교섭에서는 통역이 따라 옵니다. 문헌으로는 5세기 중엽이 처음인 것같습니다. 고대국가가 형성되면 국경이라는 것이 생기고, 언어체계가 원래는 같았던 지역, 북부 규슈(九州) 한반도 남부처럼 같은 언어문화권도 국경이 생겨 자유롭게 통행할 수 없게 됩니다.

그러면 언어가 통하지 못하고, 통역의 필요성이 나온다는 얘기죠.

▦이어령=일본에서 많이 쓰는 화(和)를 한국에서는 많이 안 쓰고 대신 인(仁)을 많이 쓰죠.

신라시대때는 융(融)입니다. 화, 인, 융 뜻은 다 비슷합니다. 일본에서는 화를 많이 썼고, 한국은 유교적인 인을, 신라시대는 불교적인 융을 많이 썼습니다. 이런 것도 주목해서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질성 속의 동질성

▦김현구=문화의 이질성과 동질성, 그리고 그 융합을 생각할 때 한일 양국의 교류를 한 차원 높이기 위해서는 쇼토쿠 태자시대가 좋은 모델이 된다는 것을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쇼토쿠 태자는 다양한 문화를 흡수하기 위해 다면관계를 맺어나갔습니다. 이것은 양적, 질적으로 일본문화의 차원을 크게 높인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동아시아세계가 매우 밀접하게 연관을 맺으면서 움직여갔다는 것을 이해하게 될 때 21세기에 한 차원 높은 문화를 만드는 길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우메하라=일본의 경우 도성(都城)의 건축이 2,3세기 늦어진 것은 양국의 문화차이를 생각하는 데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은 중국대륙과 이어져 있지만 일본의 경우 바다가 사이에 있어 직접적 압력을 받을 가능성이 적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문화가 달라졌을 것이라고 봅니다. 일본에서는 사촌간 결혼을 인정하는데, 고대에는 어머니가 다른 형제 간의 결혼도 인정했습니다. 유교문화를 받아들인 한국에서 보면 짐승의 행위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여러 배경을 서로가 인식하면서 '융'이란 입장에 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메이지시대 이후에 일본은 융을 잊어버린 것 같아요. 융합의 정신이 없어진 것이 한국에 대해서도 융합을 인정하지 않는, 특수성을 인정하지 않고 빈약한 한일 동조론으로, 일본문화를 강조하는 잘못된 정책으로 이어진 것입니다.

▦이노쿠마=백제 무녕왕의 관은 일본에 있는 고야마(高野)키라는 나무로 만들었고 고류지(廣隆寺)는 한국의 적송으로 만들었습니다. 서로 다른 나라 문화를 이용하고 있는, 이것을 공조라고 할까요. 고대 아스카는 국제사회였습니다.

지금도 국제사회입니다. 서로가 서로의 문화를 자기 나라만의 것이 아니라 공통의 연구테마로 삼아 더욱더 공동연구를 해가면 좋은 것이 만들어지지 않을까. 여기에 한일 공조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어령=쇼토쿠 태자를 그냥 일본의 전형적 문화영웅이라고 하면 한국인들에겐 별로 관심없을 겁니다.

그러나 호류지의 문헌인 성혜초에 의하면, 아좌태자가 성왕을 추모해서 만든 구세관음을 가지고 일본에 올 때 구세관음의 얼굴, 즉 성왕의 얼굴과 쇼토쿠태자의 얼굴이 똑같아 충격을 받고, 성왕을 보는 것처럼 무릎 꿇고 경배하는 얘기가 나옵니다.

신화이고 전설인지 모르지만. 쇼토쿠 태자가 백제의 가장 상징적인 왕인 성왕과 너무 닮아 환생한 인물이라고 하면, 한국인이 더 친숙하게 여기지 않을까요. 한국에도 그런 것들이 얼마든지 있지 않겠습니까.

이런 분위기가 생기면 한국과 일본이 손을 잡을 때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 않겠습니까. 월드컵은 물론, 애니메이션, 포켓몬스터, LCD TFT, 휴대전화 등 이런 모든 것들을 같이 협력해서 만든다면 세계적 문화상품이 되지 않겠습니까.

일본만의 특이한 메시지를 세계에 보낸 것이 상당히 많지만, 한국과 일본이 제휴해 더욱 밀접한 관계를 맺는다면 더 풍성한 결실을 맺지 않을까요. 21세기의 새로운 글로벌 스탠더드가 될 수 있을 겁니다.

문화와 경제, 문화와 산업이 이어지면 겉모습의 교류만이 아니라 한국과 일본이 '발신자로서의 문화'를 세계에 내보낼 수 있을 것입니다. 그 구체적 프로그램도 많다고 확신합니다.

▦신경철=그 말씀의 핵심은 고고학에도 있습니다. 상사성과 상이성입니다. 고고학에서는 쇼토쿠 태자 개인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쇼토쿠 태자가 있었을 때의 너와 나의 관계를 확인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내가 있는 것은 네가 있기 때문이다, 저는 그렇게 이해합니다. 지금부터 한일관계에서 무엇을 실천할 것인가, 서로 상대방을 인정하는 게 우리가 공유하는 것이라는 말씀을 가슴에 새기겠습니다.

▦우메하라=일본대중문화 수입을 개방한 최근 한국정부의 정책을 보면 앞으로 한국과 일본이 공동발굴과 연구조사에 나설 날도 있을 것으로 봅니다.

이를 위해 이어령 선생님께서도 힘을 써주시면 좋겠고, 저도 일본에서 할 수 있는 한 노력하겠습니다. 오늘은 처음으로 고고학, 고대사 선생님들이 나와주셔서 유익한 이야기를 할 수 있었습니다. 다음에는 또 하나의 국제적 도시인 경주에서 오늘의 후속편을 이야기하면 좋겠습니다.


아스카시대와 나라시대

아스카시대 수도가 아스카에 있던 약 1세기동안을 아스카시대라고 한다. 구체적으로는 592년 스이코(推古)천황 즉위부터 710년 헤이조쿄(平城京) 천도까지를 일컫는다. 아스카는 현재의 나라현 아스카무라 일대를 가리키는 지명이다.

이 시기에는 중국과 한반도에서 불교를 비롯 유교 도교 참위설등 각종 사상이나 천문 역법 채색등 각종 선진 기술이 전해졌다. 상층계급에 의해 수용된 선진기술은 아스카를 중심으로 하는 호족들 사이에 확대돼 아스카문화를 꽃피웠다.

아스카문화는 6세기 무렵 유입된 여러 문화가 불교문화로 종합된 것이 특징이다. 아스카 전기의 문화를 아스카문화, 후기의 덴무ㆍ지토 천황기를 중심으로 한 문화를 하쿠호(白鳳)문화라고 한다.

나라시대 수도가 헤이조쿄에 있던 710년부터 784년까지를 말한다. 702년부터 8차례 견당사(遣唐使)를 파견, 최전성기 당의 문물을 받아들였고 중앙집권체제에 걸맞은 국가를 건설하기 위해 화폐 주조, 새 수도 조영, 국사 편찬등의 사업을 펼쳤다.

일본의 고유문학도 이 시대에 확립돼 일본 최고(最古)의 가요집인 만요슈와 역사서 고사기 일본서기, 지리서 풍토기가 편찬됐다. 나라시대의 문화는 최전성기였던 쇼무(聖武) 천황때의 연호를 따 덴표(天平)문화라고 부른다.

입력시간 2000/11/21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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