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메인 편법등록 부작용, 문제 장기화 조짐

본격적인 한글 도메인(인터넷주소) 시대가 개막됐다. 한글 도메인은 영어를 잘 모르는 사람들이 자국어로 쉽게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개발됐다.

그러나 말처럼 쉽지가 않다. 우선 방식이 너무 복잡하고 인터넷을 많이 쓰는 네티즌들이 영어 도메인 체계에 너무 익숙해 있기 때문이다.

한글 도메인은 크게 한글키워드 방식과 한글.com, 계층구조방식 등 3가지 방식이 함께 쓰이고 있다. 한글키워드방식은 특정단어를 입력하면 관련 홈페이지에 자동으로 연결되는 방식이다.

예를 들어 웹브라우저 주소 입력창에 '한국일보'라는 고유명사를 입력하면 해당 홈페이지에 접속된다. 한국일보 홈페이지 주소를 입력할 필요가 없다.

이 방식을 이용하면 주소를 몰라도 접속이 가능하며 야후, 라이코스 같은 인터넷 검색기를 이용하지 않아도 홈페이지를 찾을 수 있다. 따라서 인터넷 초보자에게 적합한 방식이다.


'키워드'관련 업체에 따로 등록해야

그러나 이 방식은 인터넷 주소체계와는 별도로 제공하는 서비스이므로 홈페이지 운영자들이 주소외에 사람들이 쉽게 찾을 수 있는 '키워드'를 관련 업체에 따로 등록해야 한다.

현재 국내에서 키워드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체는 크게 두 군데. 인터넷 도메인등록업체인 넷피아를 중심으로 한 넷피아컨소시엄과 12월11일부터 국내 서비스를 시작하는 리얼네임즈코리아 진영이다.

넷피아측은 두루넷과 드림라인을 제외한 데이콤, 한통하이텔, 하나로통신, 한국PSI넷 등 대부분의 인터넷접속서비스업체(ISP)와 제휴를 맺어 회원들을 이용자로 확보했다.

해당 ISP를 이용하는 네티즌들은 웹브라우저 주소입력창에 키워드를 입력하면 자동으로 넷피아 서버를 거쳐 해당 홈페이지에 접속된다.

리얼네임즈코리아는 마이크로소프트(MS)가 20%의 지분을 갖고 있는 미국계 전문업체. 다음, 심마니, MS 등과 제휴를 맺고 12월11일부터 서비스를 시작한다. 그러나 넷피아보다 후발주자라는 취약점과 등록비의 일정부분이 미국으로 빠져나가 국부유출 논란의 소지가 있다.

11월 10일부터 주소 등록을 받기 시작한 한글.com 방식은 .com을 사용하는 주소의 경우, 앞부분을 한글로 제공하는 서비스이다. 예를 들어 한국일보의 인터넷주소인 'hankooki.com'을 '한국일보.com'으로 바꿔주는 방식이다.

이 방식 역시 홈페이지 운영자가 영어주소와는 별개로 한글.com 서비스를 위한 주소를 별도로 등록해야 한다. 등록업무는 .com 방식의 도메인을 관리하는 베리사인과 18개의 국내 등록대행기관이 담당한다.

그러나 이 방식은 현재 등록관리업체인 베리사인측의 서비스 결함으로 난항을 겪고 있다. 한글, 한문, 일본어를 모르는 베리사인측에서 등록처리를 쉽게하기 위해 해당국가의 글자 대신 알파벳과 숫자로 이루어진 코드값을 입력하고 있다.

예를 들어 '한국.com' 의 경우 '한국'이라는 한글 대신 코드값인 'bq-3abcabcxx.com'으로 등록된다. 일본과 중국도 마찬가지.


분개한 네티즌들 집단소송 준비

이 방식을 악용해 일부 네티즌들이 등록개시일 이전에 코드값으로 상당수의 도메인을 미리 등록해 놓은 사태가 발생했다. 쉽게 말하면 도메인 편법 선점이 일어난 것.

관련업계에 따르면 선 등록된 도메인은 삼성, 현대 같은 기업명부터 사랑, 주식, 뉴스, 정보 등의 일반명사와 서울, 한국 등의 고유명사에 이르기까지 약 4,000여개에 이른다. 일본어의 경우 '환삼증권.com'과 '국제증권.com'을 선점한 네티즌이 야후경매사이트에 해당 도메인을 1억엔에 내놓기도 했다.

정작 정당한 절차를 밟아 도메인을 등록하려던 사람들은 편법 등록으로, 필요한 도메인을 빼앗긴 것을 알고 발을 굴렀고 급기야 분개한 네티즌들을 위주로 허술한 등록절차를 마련한 베리사인측을 상대로 집단소송까지 준비하고 있다.

다음카페에는 이들이 개설한 '한글도메인 사기 사태에 대한 집단소송 준비홈페이지'(cafe.daum.net/handom)가 운영되고 있다. 도메인동호회(www.dodong.com)도 베리사인측에 공개성명서를 보내 공식사과와 선등록 도메인의 삭제를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베리사인측은 아직까지 사과 한마디 없이 묵묵부답이다. 가장 큰 문제는 베리사인측이 선등록 도메인의 해결책을 찾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11월 16일 열린 국제도메인관리기구(ICANN) 국제회의에 참석한 국내 인터넷도메인기업인 넷피아의 이창훈 팀장에 따르면 베리사인측의 CEO인 척 고메스는 회의에 참석해 이번 사태에 대해 아무런 조치를 취할 수 없다고 밝혔다.

베리사인측은 문제해결을 위해 사전 등록한 도메인을 삭제하거나 코드값을 바꿔야 하나 ICANN으로부터 권한 승인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할 수 없다며 ICANN에 책임을 전가하고 발뺌하는 무책임한 모습을 보였다.

따라서 이번 사태를 해결하려면 ICANN에서 장기간 대책을 논의해야 할 전망이어서 문제가 장기화 될 조짐이다.

계층구조방식은 정부에서 추진하는 방식으로 진정한 한글 도메인이다. 이 방식은 인터넷 주소체계를 완전히 한글로 바꾼다. 예를 들어 예전 한국일보 홈페이지인 'www.hk.co.kr'의 경우 '웹.한국일보.기업.한국'식으로 바꾸는 방법이다.

현재 체계를 어떻게 정할 지 한국전산원(KRNIC)에서 표준안을 논의하고 있으며 내년께 확정될 예정이다. 이 방식은 정부에서 주도하기 때문에 민간기업은 참여할 수 없다.


실용화 단계까진 멀고 먼 길

그러나 이 방식도 문제점을 안고 있기는 마찬가지다. 일단 인터넷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영어식 주소체계에 너무 익숙해져 있기 때문에 한글로 바꿀 경우 새로운 주소체계를 익혀야 한다는 부담이 따른다.

특히 외국에서 국내 홈페이지에 접속하는 경우에 한글도메인은 무용지물. 따라서 홈페이지 운영자 입장에서도 영문 주소체계를 따로 갖춰야 한다.

3가지 방식 모두 사정이 이렇다 보니 한글 도메인이 실용화되려면 갈 길이 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련업계가 앞다퉈 뛰어드는 이유는 관련 시장이 국내에서만 연간 2조원에 이를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주된 수입은 등록대행 수수료와 등록비, 관리운영비이지만 부대적인 광고효과까지 포함하면 액수는 더 커질 것이라는 게 업계의 관측이다.

그러나 산적한 문제를 놓고 볼 때 실용화가 되지 못하면 2조원이라는 액수는 거품이 될 수도 있다. 특히 이용자 입장이 아닌 관련업체의 입장만 강조할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따라서 한글 도메인 정착을 위해서는 이용자와 관련업체가 모두 만족할 수 있는 방안을 찾는 것이 급선무이다.

최연진 인터넷부기자

입력시간 2000/11/21 21:20


최연진 인터넷부 wolfpac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