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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마라톤] "다리를 건너 멘해튼을 뛰다"

지난해 11월 어느날, 나의 책상 위에는 미국 뉴욕의 베라자노 다리를 가득 메운 채 대서양을 가로질러 질주하는 마라톤 주자들의 모습이 담긴 외신 사진 한 장이 놓여있었다.

정지된 바다와 요지 부동의 다리, 그 배경 위에서 요동치는 건각들의 근육질 다리. 그 한 컷의 사진은 '언젠가는 나도 저 다리를 달려 건너 보겠다'는 다짐을 불러 일으켰다.

그리고 1년후인 11월 5일, 나는 바로 그 베라자노 다리 위에 서서 출발 신호를 기다리고 있었다. 영상 5~ 6도의 싸늘한 날씨였지만 베라자노 다리는 뜀꾼들의 열기로 후끈 달아올라 있었다. 세계 4대 마라톤 대회의 현장에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나의 가슴은 쿵쾅쿵쾅 요동치고 있었다.

옛말에 뜻이 있으면 길이 있다고 했던가. 올 3월에 동아 마라톤대회를 처참하게(?) 완주(4시간10분49초)했다.

그후 보다 철저한 자기통제의 필요성을 절감해 새벽 운동에 나설 즈음이었는데 우연찮게 기회가 찾아왔다. SPORTS01. COM에서 풀뿌리 마라톤의 중흥을 위해서 수필 공모전을 열었는데 동아 마라톤에서 느낀 처절함을 쓴 글이 장원으로 뽑힌 것이다. 그렇게 뉴욕 마라톤 출전권을 얻었다.


미국인들도 대회참가는 '큰 영광'

미국인들도 뉴욕 마라톤에 참가하기란 '하늘의 별 따기'라고 한다. 미국에는 1,000만명이 넘는 달리기 인구가 있고, 뉴욕만 해도 100만명이 넘는다.

그러나 뉴욕대회는 미국인 2만명, 외국인 1만명으로 출전자를 제한하기 때문에 뉴요커(뉴욕시민) 마라토너조차 2만명 커트라인을 통과하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대회에 출전하는 것만으로도 큰 영광으로 여긴다.

올해로 31회째를 맞은 뉴욕 마라톤도 초창기에는 지금과 같은 축제 분위기가 아니었다.

당시만 해도 뉴요커들은 '일반인 마라톤'을 해괴망칙한 일로 여겨 빌딩에서 돌과 병을 던지며 마라토너들을 괴롭혔다. 어떤 해에는 선수들이 우산을 쓰고 달리기도 했다.

그러나 요즈음 뉴욕 마라톤은 그 자체가 하나의 세계적인 축제다. 시민들의 참여도 열광적이다. 펀 런(Fun Run)으로 불리는 대회 전날의 축제에는 모든 참가자가 맨해튼에서 가장 행렬을 벌인다. 무엇보다도 세계 제1의 도시 한 복판을 런닝 셔츠와 팬티 차림으로 달리는 것 자체가 '무한한 자유'또는 '해방'으로 받아들여질 만하다.

오전 10시. 출발을 알리는 대포소리. 숨을 막던 긴장감에서 비로소 해방 됐다. 1년여간 고대한 끝에 베라자노 다리 위에 첫 발자국을 내딛는 순간, 하늘에서는 수많은 헬기와 비행선이 현란한 축하 비행을 했다.

첫 3km는 길었다. 대서양을 향해 부는 거센 바람이 호흡을 흐트려 놓았다.모자가 날아갈 것 같은 풍력에 몸을 뒤뚱거리면서 다리를 겨우 건넜을 때 저 멀리 보이는 맨해튼이 까마득하기만 하다.

브룩클린에 접어들자 빈민가의 대명사격으로 알고 있던 그 거리가 격려의 함성으로 정겹게 다가왔다. 서너살짜리 꼬마부터 할머니, 할아버지까지 모두들 손을 내밀며 하이파이브를 청했고, 30여명의 성가대가 불러주는 찬송가는 발걸음을 한결 가볍게 해주었다.

지난 3월 동아 마라톤대회 때 모 교회 앞을 지나던 순간이 떠올랐다. 주일 예배에 참석하는 신도들의 이동에 불편하다며 주관사에 코스 변경을 요구한 교회였다. 그리고 거세게 항의하던 모습도 머리를 스쳤다. 문화의 차이일까.

누군가는 힘들게 달려가는 남을 위해 기도하고 찬송하는데, 또 누군가는 자신을 위한 기도에 방해가 된다고 항의한다.

얼마나 달렸을까. 관중들과의 일체감 때문인지 내가 구경꾼인지 주자인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길가에 나와 응원하는 '록밴드 가족'을 보자 "저 사람들은 무엇 때문에 추운 길거리에서 연주를 하고 있는 것일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그러나 곧 해답을 찾았다. 수많은 인간터널을 헤치고 달리다 보면 발끝에서 혈관을 따라 치밀어 오르는 피로감을 쉽게 잊을 수 있으니까.


관중들과 일체감, 레이스 도중 결혼식도

20km 지점. 갑자기 앞서 뛰던 두 남녀가 레이스를 멈추더니 여성 주자가 웨딩드레스로 갈아입었다. 깜짝 결혼식. 신랑과 신부는 스쳐 지나가는 동료 뜀꾼들과 관중을 하객으로 삼아 성대한(?) 결혼식을 올린다.

마라톤 레이스중에 만난 두 사람은 이번 대회 출전을 기념하기 위해 즉석 결혼식을 마련했다고 한다.

시계를 보니 1시간 40분을 지나고 있었다. 20Km를 그 시간대에 뛰었다면 나쁘지 않은 기록이다. 이대로 골인점까지 뛸 수 있다면..

15마일(24Km)지점에 위치한 퀸스보로 다리를 지나면 드디어 맨해튼. 맨해튼이란 말은 인디언들이 쓰던 말로 맨하타(언덕이 많은 지역)에서 유래했다. 달리고 또 달려도 끝없는 언덕이다. 시원하게 뚫린 8차선 도로덕에 4km 앞까지 보폭을 따라 출렁이는 마라토너들의 물결로 가득하다. 지켜보자면 장관이지만 달리는 사람에겐 고통이 스멀거리는 지점의 시작이기도 하다.

30km을 지나니 기록은 2시간 30분, 지난 대회 때 보다 10분이나 단축했다. 지나간 추억들이 주마등같이 스쳐 지나갔다.

비오는 여름날 일산 호수공원에서 30km를 뛰었던 일, 점심을 거르며 남산에서 10km씩 달렸던 일, 새벽마다 삼청공원 언덕을 넘으며 가쁜 숨을 참아야 했던 일, 야밤에 한껏 뛰뒤 찬 밤 공기에 땀을 식히던 기억들이 새롭다.

그렇게 달린 870km가 새삼 뿌듯하게 다가온다.

38km 지점을 지나면서 마침내 한계 상황을 맞았다. 더 이상 뛸 수가 없을 것 같다. '포기'를 부추기는 달콤한 속삭임에 갈등하며 센트럴 파크에 들어서는 순간, 'You can do it!'이란 함성이 들려왔다. 그 함성이 없었다면 어땠을까. 그 함성은 바닥난 줄 알았던 인내와 투지를 최후의 한방울까지 짜내 주었다.


이방인들과의 사랑과 우정 쌓은 대회

3시간38분30초. 마침내 결승점을 통과했다. 얼굴도 틀리고, 말도 다른 이방인들간의 사랑과 우정이 전혀 거부감 없이 내 머리로, 가슴으로 밀려들었다. 그것은 '해냈다'는 긍지와 함께 주체할 수 없는 '감격'때문이었다.

함께 뛴 동료들도 좋은 성과를 거두었다. 유일한 프로인 김완기 선수는 무려 18kg의 초인적인 체중 감량을 단행한 끝에 2시간34분대의 기록을 냈고 포항 한동대학병원팀 5명도 모두 완주했다.

뉴욕 마라톤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경기운영. 수만 명의 자원 봉사자. 200만 명의 관중, 1억달러의 경제 효과를 창출하는 대회 운영 주체는 뉴욕 로드 러너스 클럽이란 순수 민간 단체다.

뉴욕 마라톤을 하나의 단순 마라톤 대회로 볼 게 아니라, 풀뿌리 마라톤의 발전을 위한 벤치마킹의 대상으로 삼았으면 한다

①대회기간중 마라톤 EXPO행사장에서 각국 선수들이 행사장을 둘러보고 있다.
②뉴욕마라톤 관련상품을 파는 기념품 상점. 이 대회는 1억달러의 경제적 효과를 창출하고 있다.
③뉴욕마라톤 대회이기에 앞서 뉴욕시민과 참가자들이 함께 만드는 축제였다. 영국국기 무늬의 모자와 옷을 만들어 입은 참가선수와 함께 포즈를 취한 김건수 부장.

김건수 일간스포츠 사진부장 khans@hk.co.kr

입력시간 2000/11/21 2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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