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k뉴스포탈 한국일보
일간스포츠
서울경제
KoreaTimes
대한항공 대우통신
주간한국  
www.hankooki.com  


 
주간한국 홈
구독신청
독자 한마디
편집실에서


   벤처 스타열전
   인터넷 세상
   신동의보감
   땅이름과 역사

한국 블록버스터 영화의 허와 실

지난해 한국 영화 최고의 화제작은 단연 '쉬리'(강제규 감독)다. 역대 최고흥행 기록인 245만명(이하 서울 개봉관 기준)의 관객을 끌어들인 '쉬리'의 대성공을 두고 여러가지 얘기가 있었지만 "한국형 블록버스터 (Blockbuster) 영화의 전범을 보여주었다"는게 가장 일반적인 평이었다.

1998년 '퇴마록'(박광춘 감독)이 처음으로 표방한 한국형 블록버스터는 '쉬리' 이후 단숨에 한국 영화의 주류로 부상했다.

지난해만 해도 '건축무한육면각체의 비밀'(유상욱 감독), '자귀모'(이광훈 감독), '텔미 섬딩'(장윤현 감독), '인정사정 볼 것 없다'(이명세 감독), '유령'(민병천 감독) 등 여러편의 블록버스터 작품이 만들어졌고, 올 상반기에는 '비천무'(김영준 감독)와 '공동경비구역 JSA'(박찬욱 감독)가 블록버스터의 붐을 이어갔다.

현재도 두 블록버스터 '단적비연수'(박제현 감독)와 '리베라 메'(양윤호 감독) 사이에 관객잡기 경쟁이 한창이며 '무사'와 '광시곡' 등의 작품이 개봉을 앞두고 있다.


초호화 캐스팅, 막대한 제작비, 적극적 홍보

한국형 블록버스터 영화는 블록버스터가 만들어진 할리우드의 기본공식을 그대로 따른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기본 공식은 한마디로 돈이다. 어마어마한 액수의 돈을 쏟아붓고 그 이상의 돈을 거둬 들이는 것이다.

우리 돈으로 수백억에서 수천억원에 이르는 제작비는 세 가지에 집중된다. 스타와 테크놀로지, 그리고 홍보다. 얼마나 유명한 스타를 출연시키느냐, 얼마나 현란하고 사실적인 최첨단 기술을 사용하느냐, 그리고 얼마나 적극적으로 홍보를 하느냐에 따라 블록버스터의 흥행 여부가 결정된다.

한국 영화계에서 블록버스터의 기준은 제작비 20억원 이상. 최근 들어서는 제작비가 눈덩이처럼 불어나 웬만한 작품은 30억원을 넘고 비천무, 싸이렌(이주엽 감독), 단적비연수, 리베라 메 등 40억원을 넘는 작품도 적지 않다.

4,000억원의 제작비가 투입된 '타이타닉' 같은 할리우드 영화에 비하면 아직 턱없이 적은 액수지만 퇴마록 이전까지 한국 영화의 평균 제작비가 12억원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결코 만만치 않은 돈이다.

최근 개봉된 블록버스터는 거의 예외없이 지명도 높은 스타급 배우들이, 그것도 두명 이상 출연한다. '쉬리'에는 한석규 최민식 송강호가, '인정사정 볼 것 없다'에는 안성기와 박중훈 장동건 최지우가 나온다.

'공동경비구역 JSA'도 이병헌 이영애 송강호가 삼각체제를 이루었고 '단적비연수'는 최진실 이미숙 등 톱스타가 김석훈 설경구 김윤진 등 차세대 스타들과 함께 출연했다. '리베라 메' 역시 최민수와 유지태에 차승원 박상면 김규리 등이 가세했다.

톱 스타의 출연료가 제작비의 절반 가까이 이른다는 할리우드만은 못하지만 한국의 블록버스터 역시 초호화 캐스팅에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있기는 마찬가지다.

또 대부분의 블록버스터 영화는 테크놀로지에 제작비의 상당부분을 할애한다. '유령'은 9개월이라는 장시간 촬영기간에 8대의 잠수함 미니어처 제작을 비롯, 잠수함에 물이 차는 장면 등을 만들어내는데 7억원을 썼다.

'건축무한육면각체의 비밀' 역시 24억원의 제작비 중 절반인 12억원을 컴퓨터 그래픽을 비롯한 특수효과에 투입했다.

80회 촬영에 20여분의 컴퓨터 그래픽을 삽입한 '자귀모'도 마찬가지. '쥬라기 공원'의 컴퓨터 그래픽이 6분30초, '터미네이터'가 10분 정도였던 것에 비하면 대단한 양이다.

여기에 보다 많은 사람들의 눈길을 끌기 위해 영화 개봉 초기에 적지않은 돈이 홍보에 쓰인다. 영화 개봉 이전에 사람들의 기대를 얼마나 부풀려놓느냐 하는 것은 블록버스터를 규정짓는 가장 중요한 특징이다. 대개 신문 및 잡지에 대대적 광고를 하고 관객 동원을 위한 각종 이벤트를 마련한다.

'쉬리'의 경우 총제작비 35억원 중 순제작비는 23억원, 나머지 12억원이 마케팅에 쓰였다. '단적비연수'는 순제작비 45억원에 홍보비가 7억원이고 '리베라 메' 역시 총 제작비 45억원 중 10억원이 홍보비다.


제작수준 한단계 끌어올려

한국형 블록버스터는 일단 관객동원면에서는 성공적인 출발을 했다. '쉬리'의 뒤를 이어 지난해 '인정사정 볼 것 없다', '텔미 섬딩' 등이 모두 70만명에 육박하는 관객을 끌어들였다.

올해는 '비천무'가 70만명을 넘은데 이어 '공동경비구역 JSA'가 개봉 9주만인 지난달 말 208만명을 돌파했다.

제작사인 명필름 측에서는 다음달 초 '쉬리'가 세운 역대 흥행기록을 경신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블록버스터의 선전은 한국 영화의 시장점유율 제고로 이어져 지난해 한국 영화는 38.4%라는 높은 기록을 세웠다.

이는 한국 영화의 전성기로 불리는 1960년대의 시장점유율 40~50%에 육박하는 것이다. 영화계에서는 이를 두고 "한국 영화의 르네상스가 도래했다"며 떠들썩하기도 했다.

한국형 블록버스터 영화가 많은 사람을 끌어모을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 외국 영화에 뒤지지 않는 볼거리 때문이다. 1990년대 들어 한국 영화가 살아났다고는 하지만 '퇴마록' 이전의 영화는 로맨틱 코미디나 멜로, 또는 깡패 영화처럼 스케일이 작은, 아기자기한 작품이 대부분이었다.

스펙터클과 테크놀로지에서는 여전히 외국 영화에 뒤져있었다.

하지만 블록버스터는 할리우드 영화에서나 가능한 줄 알았던 대규모 폭파 씬이나 신기하기 짝이 없는 컴퓨터 그래픽, 또 홍콩 영화에서나 보았던 현란한 무술 장면을 등장시킴으로써 관객에게 '한국 영화도 볼만 하다'는 새로운 인식을 심어주었다.

또 안성기 이병헌 신현준 최민수 등 낯익은 얼굴은 브루스 윌리스나 장 클로드 반담, 주윤발 보다 관객에게 가깝게 느껴질 수 있었다. 블록버스터의 유행은 한국 영화의 전반적 제작 수준, 특히 그동안 낙후되어 있던 기술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리고 한국 영화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었다.

하지만 한국형 블록버스터 영화의 유행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도 있다. 가장 먼저 거론되는 것은 역시 이야기의 부실화다. 볼거리와 테크놀로지에만 치중하다 보니 한국 영화의 고질적 약점으로 오래 전부터 지적되어온 엉성한 구성과 내러티브가 더욱 심화되고 있다는 것.

당연히 극적 재미는 반감된다. 지난해 개봉했던 블록버스터 영화 중 볼거리 외에 평론가들로부터 공통적으로 후한 평가를 받은 작품은 '인정사정 볼 것 없다' 뿐이다. 특히 '비천무', '단적비연수', '리베라 메' 등은 산만하고 엉성한 구성, 일부 배우의 어설픈 연기가 많은 지적을 받았다.

반면 2년 동안 일곱 차례나 수정을 가했을 정도로 시나리오 다듬기에 공을 들인 '공동경비구역 JSA'는 많은 블록버스터 영화 중에서도 독보적으로 많은 관객을 끌어들이는데 성공했다.


빈약한 소재, 장르편식 심각

장르의 편식도 심각한 문제로 지적된다. 웅장한 스펙터클, 첨단 컴퓨터 그래픽 등 테크놀로지를 살리려다 보니 자연 액션이나 환타지, 혹은 미스터리물을 만들게 된다.

'퇴마록' 이후 제작된 블록버스터 영화들은 예외없이 액션 아니면 환타지물이다.

'쉬리', '인정사정 볼 것 없다', '유령'은 정통 액션이고 무협이 가미된 '비천무'나 '단적비연수', 불을 소재로 한 재난 영화 '싸이렌'과 '리베라 메'도 넓게 보아 액션에 속한다.

'퇴마록', '건축무한육면각체의 비밀', '자귀모'는 귀신을 등장시킨 환타지물이고 '텔미 섬딩'과 '공동경비 구역 JSA'는 미스터리물이다. 한두가지 장르가 지나치게 유행하면 소재가 고갈되고 엇비슷한 영화들이 만들어지기 마련.

수없이 봐온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는 이제 톰 크루즈가 나오는 '미션 임파서블 2'도 식상스럽다. '매트릭스'나 '페이스 오프'처럼 뭔가 기발하고 그럴싸한 요소가 있어야 한다.

벌써 블록버스터 영화에서도 흥행 실패작이 나오고 있다. 10월 말 개봉했던 '싸이렌'은 40억원 이상을 투입했음에도 개봉 3주만에 남아 있는 극장이 별로 없다. 관객은 불과 5만여명. 이 정도면 영화계에서 '재앙'으로 불린다.

'쉬리'에 버금갈 것으로 예견됐던 '비천무'가 73만명에 그친 것도 눈여겨 볼 일이다. 일부에서는 지난 주 개봉한 '단적비연수'와 '리베라 메'도 기대했던 만큼의 관객을 끌어들이기 힘들 것이라는 조심스런 예상도 나오고 있다.

영화진흥위원회 김혜준 정책실장은 "영화는 기본기에 충실한 감독과 제작자, 그리고 투자자의 3박자가 맞아야 성공할 수 있다.

블록버스터 영화도 예외는 아니다"라고 말한다.

지난해 '주유소 습격사건'(김상진 감독)은 12억원이라는 적은 제작비에 톱 스타 없이도 96만명의 관객을 동원, 역대 한국 영화 흥행 10걸에 들었다. 올 상반기 80만명을 동원한 송강호의 일인극 '반칙왕'(김지운 감독)도 마찬가지.

기발한 아이디어와 치밀한 시나리오와 연기의 승리였다. 또 이보다는 못하지만 짜임새 있는 이야기의 '미술관 옆 동물원', '박하사탕', '동감' 등도 30만~40만명의 관객을 동원, 실속을 차렸다. 반드시 수십억원의 돈을 들이지 않아도 현란한 테크놀로지와 떼거리 스타을 동원하지 않아도 재미있는 영화에는 항상 관객이 몰리기 마련이다.

김지영 주간한국부 기자 koshaq@hk.co.kr

입력시간 2000/11/21 22:52



 

◀ 이전화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