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와 오늘] 황장엽씨

그가 평양을 떠나 서울로 왔을 때 누구도 오늘의 사태를 예견치 못했다. 그의 망명을 위해 장쩌민 중국 국가주석에게 편지를 보내고 필리핀에 특사를 보내기까지 한 김영삼 전 대통령은 "당시 나는 그에게 신변안전과 자유로운 활동을 보장했으며 김대중 대통령은 당연히 그 약속을 지켜야 한다"고 11월24일 도쿄에서 강조했다.

이에 앞서 국가정보원은 전 북한 노동당비서 황장엽씨을 국정원 산하 통일정책연구소 이사장직에서 해임했음을 22일 밝혔다.

그와 함께 온 김덕홍씨와 함께 "일반 관리체제가 됐으니 국정원내 신변보호 시설에 더이상 거주할 수 없다"고 통보했다. 민주당은 21일 황씨의 '북한 수령독재체제의 평화적 붕괴론'에 대해서 "시대착오적"이라고 대응했다.

또한 "북한의 폭력노선과 적화노선이 변하지 않았다"는 그의 주장을 "편협한 수구논리"라고 반박했다.

건국 이후 '자유 대한'에 망명해온 북한의 최고위급 인사이며 주체사상을 세운 황씨는 이제 77세. 국정원의 특수관리자인 망명인사에서 일반관리자인 귀순자로, 테러 대상자에서 테러 해방자로 입장이 변했다. 그가 1997년 4월 서울에 왔을 때 74세였다.

그때의 기억을 더듬어본다. 그는 망명의사를 밝힌지 67일만에 서울에 와 "망명이다 귀순이다는 나하고 관계가 없다. 어쨌튼 나는 갈라진 땅을 조국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고 자신의 주체를 확실히 하지 않았다.

다만 "인민이 굶어죽는 상태에서도 전쟁준비에 몰두하고 있는 북이 수십년 동안 전력을 다하여 키운 막강한 무력을 사용할 수 밖에 없다"는 남침 불가피론을 폈다.

그때 그를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에 대해 여러 의견이 있었다. 서강대에서 통일학을 가르치는 이상우 박사는 그를 "일흔넷의 지친 동포노인"이라 불렀다.

"황 비서의 탈출 자체가 북에 큰 타격을 주었다. 큰 정보를 얻으려 생각말라. 한 해외동포의 귀향 이상으로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자기 발로 찾아온 북한 노인을 따뜻한 마음으로 맞이해주는 동포애를 보여주는게 좋다. 마음이 통하면 참회록이라도 쓰게 배려해주는게 좋겠다"고 했다.

하와이대 명예교수 굴렌 페이지 박사('한국 전쟁 참전 결정과정'의 저자)는 한국일보에 보낸 독자편지(1997년 4월26일자)를 통해 그와 1987~92년 사이 평양에서 여러차례 만났던 인연을 소개했다. 그는 그곳에서 조선과학자협회 회장으로 있었으며 호칭은 '황비서'가 아닌 '황교수'였다.

대화의 초점은 '인간이 서로를 죽이지 않는 사회를 만들 수 있는 능력이 있느냐'는, 철학의 문제였다. 페이지 박사는 그에 대해 이렇게 분석했다.

"그의 정치사상 가운데 가장 중요한 점은 인간의 창조적 사랑, 그리고 평등성에 관한 것이다. 그는 '정치란 사랑과 평등에 기초해 모든 사회구성원의 이해를 조화시키는 것'이라고 규정했다." 페이지 박사는 "그는 남북 양쪽으로부터 초월적인 평화일꾼으로 존경받아야한다. 그는 '평화의 애국자'로 한국민과 한국을 사랑한다. 한민족이 더이상의 동족상잔을 겪지 않도록 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용기있게 추구하는 학계의 지도급 인사임을 알아야."라고 제안과 충고를 했다.

또한 그의 망명 전인 1995년 10월 중국에서 그를 만났던 크리스찬 아카데미 이사장 강원용 목사는 "그를 한번 밖에 만나지 못했지만 한눈에 명망있는 민족주의자로 보였다"고 월간 신동아(1997년 5월호)에서 밝혔다. "그는 북한의 온건주의자에 속하는 사람이었다. '종교에 있어 인도주의적 요소는 절대로 반대하지 않는다'고 했다.

의외로 '저는 영생을 믿습니다'고도 말했다. 그가 말하는 영생은 '인간은 민족의 일원으로 태어나 살아있는 동안 그 민족의 역사 속에서 산다.

그리고 죽을 때는 그 민족의 역사 속에서 일하다 죽는다. 민족의 역사는 천만년 가니까 그 속에서 영생하는 것'이라고 말했다"고 강목사는 회고했다.

이제 한국의 주민등록증은 받은 황장엽씨는 '갈라진 조국'의 어느 편에 서서 '하나의 조국', '한민족이 영생하는 통일'을 위해 그의 주장과 신념을 다시 펼칠 기회를 가졌다. 망명신분이건 귀순신분이건 그건 그의 이상과 주장, 신념과 철학을 제약하지 못한다.

또한 햇볕정책을 펴는 국가정보원이 그의 논리와 행동을 '화해와 협력', 그리고 '안보'라는 두 개의 잣대로 평가할 때 그에 관한 오늘날의 사태는 언제고 다시 일어날 것이다. 황씨도 포용의 대상임을 명심해야 한다.

박용배 세종대 겸임교수

입력시간 2000/11/28 1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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