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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찻그릇 역사기행(34ㆍ끝)] 대가야의 고도 고령

가야토기의 역사 앞에 마음은 에돌고…

춘삼월 남녁의 봄소식과 함께 시작한 머나먼 찻그릇 역사기행은 대가야의 고도 고령땅에 도착하였을 때는 산천은 어느덧 마지막 가는 황화지절(黃華之節)을 아쉬워하고 있다.

고령읍내 지산동 산기슭에 자리한 대가야의 거대한 왕족의 무덤가에는 낙엽만이 뒹굴고 있어 지나간 왕조의 세월을 무상하게 해주고 있다.

영남의 젖줄 낙동강이 쉬어가는 대가야의 고도 고령땅에는 많은 고대 유적과 함께 아름다운 가야토기를 굽던 가마터들이 여러군데 산재해 있다. 조선조 세종실록지리지와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자기소가 2곳이며 품질은 상품(上品)"이라 하였다.

점필재문집에 의하면 세종 때 육진의 개척자인 김종서 장군이 고령현을 방문하였을 때 고령백자의 우수성을 격찬한 바가 있다.

성산면 사부동과 기산동에 있는 조선전기 분청사기와 백자 가마터는 국가사적지71호, 72호로 지정되어있는 곳이다.

대구에서 국도를 따라 고령으로 들어오는 초입, 나즈막한 구릉 교회 뒷편 2곳의 가마터에서는 15∼16세기의 상품의 분청사기와 백자를 굽던 곳이다. 이곳에서 발견되는 도편은 인화문과 호접문이 상감된 것이며 색깔은 유백색이며 전체적인 분위기는 스토익한 터치를 지니고 있다.

일본의 중요 문화재로 지정된, '고령인수부'라는 명문이 상감된 분청사기 물항아리는 중세 일본 다회(茶會)에서 고려 찻그릇과 함께 최고의 스타였다. 이 물항아리가 제작된 곳도 바로 성산면 기산동의 가마터였다.

한편 운수면 팔산리의 가마터는 후쿠오카의 유명한 다카도리 가마의 주인 세이잔(八山) 여사가 임란때 납치되어간 자기 조상의 고향이라고 주장하기도 한 곳이다. 오늘날 쌍림면 송림리에는 수암 안수복 선생이 무심과 무욕의 마음으로 옛 고령의 분청사기 전통의 마지막을 이어가고 있으나 생계가 막막한 처지다.

그동안 '주간한국'의 지면을 빌려 고대로부터 우리나라 찻그릇의 역사상 중요한 가마터들을 답사해보았다. 전라도와 경상도 일대에 집중적으로 분포된 15∼16세기 조선시대 찻그릇 가마터들은 중세 일본의 다도사(茶陶史)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귀중한 문화재다.

그러나 이러한 문화유적지가 개발논리에 밀려 날이 갈수록 파괴되어버리고 기초적인 지표조사조차 제대로 되어있지 않아서 무척 안타까웠다.

찻그릇 역사기행 경남 사천편이 나간 후 지난 11월4일 일본 후쿠오카 아가노(上野) 가마의 저명한 도예가 와다리 큐베에, 도도키 가이지 두 사람이 400년만에 고향을 찾아 조상인 사기장인들에게 술을 한잔 올리는 아름다운 장면도 있었다.

후손들은 떨리는 목소리로 "사천 구량 가마터의 도편을 보고 선조의 고향이 분명하다"고 감개무량해 하였다.

이들 조상은 사천 십시향 출신 사기장인 김존계로서 임란 당시 20세에 일본으로 연행되어가 80세에 세상을 떤 후쿠오카 아가노(上野) 가마의 시조다.

이처럼 일본 남부지역에는 오늘날까지 조선 사기장인의 흔적이 많이 남아 일본 속의 조선문화로 당당히 자리하고 있다. 18세기 조선 사기장인의 후손이 만든 찻그릇과 도자기들은 네덜란드 동인도회사를 통해 멀리 유럽까지 전파되어 오늘날 유럽도자기 문화에 큰 영향을 끼쳤다.

일본을 거쳐 유럽에 이르는 우리 도자기 문화의 세라믹로드 대기행을 떠나는 일은 후일 지면과 형편이 허락하는 대로 기약을 하고 이만 아쉽게도 필을 놓는다.

현암 최정간 도예가

입력시간 2000/11/28 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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