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 카페(34)] 찌릿한 겨울손님

나는 이 손님 때문에, 움찔하며 낮은 비명을 지를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자동차 문을 여닫을 때나 외출에서 돌아와 외투를 벗을 때, 느닷없이 우리를 놀라게 하는 겨울 손님, '정전기(靜電氣)'. 더러는 사람과 사람사이에도 끼어드는 썩 기분 좋지 않은 불청객이다.

정전기는 기원전 600년경 그리스의 탈레스라는 사람이 귀부인들의 장신구에 먼지가 붙는 원인을 분석하면서 부터 연구의 대상이 되었을 정도로 역사가 깊은 관심거리다. 정전기는 충돌과 마찰에 의해서 생기며, 양자와 전자가 균형을 이룬 중성의 원자상태로 모여있는 전기를 말한다.

이 상태가 다른 물체와 접촉하는 순간 균형이 깨지면서 '양전하'나 '음전하'를 띠게 되고, 순간적으로 방전이 일어난다. 인체가 충격(전격)을 느끼는 것은 바로 이 방전현상 때문이다.

사람의 몸에 누적되는 정전기의 전압은 대개 3,500V 정도이지만, 일시적으로 1만~5만V까지 올라갈 수도 있다.

남성보다 여성이 정전기에 더 민감해서, 남자의 경우 4,000V 이상에서 침으로 찌르는 듯한 통증을 느끼게 되고, 여자는 2,500V 정도에서 충격을 받는다. 겹겹이 입은 옷을 벗을 때 섬유사이에서 일어나는 정전기는 1만~2만V의 고전압이라 따가움을 느낄 정도가 된다.

정전기의 전압이 이처럼 높아도 인체에 치명적인 영향을 주지 않는 것은, 정전기의 전류가 약 100만 분의1 암페어(A)로 가정용 전기의 100만~1,000만 분의 1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다만 충격에 따른 통증 또는 근육수축 때문에 일시적으로 반사행동이나 미세한 동작에 장애를 초래할 수는 있다.

그런데 이 정전기의 실제적인 문제는 산업 재해와 연결될 수 있다는 위험성에 있다. 정전기 불꽃이 인화성 물질(신나, 휘발유, 가스 등)에 닿을 경우 대형화재나 폭발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우리 나라에서 발생한 전기로 인한 화재 중 0.4%가 정전기에 의한 것이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컴퓨터메모리의 손상이나 오작동, 집적회로(IC) 등 전자부품의 파괴를 불러올 수도 있다. 휴대전화 내부의 미세한 정전기 불꽃도 문제가 되어, 캐나다와 일본 등에서는 주유소에서 휴대폰 사용을 금지하고 있다.

하지만 이 정전기는 여러 가지 제품에 유용하게 응용되고 있다. 먼지제거를 위한 전기 집진기, 포장용 폴리에틸렌 랩, 복사기, 프린터, 정밀 도색, 사진 등의 정보전송기, 화상형성장치 등 다양하다. 랩이 그릇에 착착 달라붙고 도색염료가 종이에 잘 묻을 수 있는 것은 바로 정전기로 인한 인력 때문이다.

그러면 고압의 정전기를 지속적인 에너지원으로 활용할 수는 없을까? 그런데 정전기 방전전압이 수만 볼트까지 되기는 해도 1,000만분의 1초라는 너무나 짧은 시간에 방전되기 때문에 지속적인 에너지원으로는 적합하지 않다는 결론이다.

아무튼 불필요한 곳에서 불쾌한 모습으로 나타나는 정전기는 무찔러야할 대상이다. 정전기는 주로 건조한 조건에서 발생한다. 그래서 평균 습도가 30∼40% 밖에 되지 않는 겨울이 정전기의 전성기가 되는 것이다. 하지만 습도가 60%를 넘으면 정전기는 소멸된다.

따라서 실내 습도를 높여주는 것이 정전기 방지의 핵심이다. 습기가 도체(전기가 통하는 물질) 역할을 해서 정전기를 수시로 방전시켜 버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화학섬유보다는 수분과 친한 자연섬유로 만든 옷을 입거나 린스를 하면 된다. 손과 스타킹 등에는 로션을 발라주면 불청객을 예방할 수 있다.

요즘에는 폴리에스테르(55%)와 레이온(45%) 혼합물로 만든 정전기방지용 섬유를 안감으로 댄 의류도 시판되고 있다. 심지어 몸 안의 정전기는 밖으로 내보내고 외부의 정전기는 중화시켜 주는 정전기 방지용 구두도 있다.

그 외에도 잘 알려진 자동차용 '정전기 방지체인'과 열쇠고리를 비롯한 많은 정전기 방지용품이 개발되어 있다. 올해 노벨화학상에 빛나는 '전기가 통하는 플라스틱'도 정전기 차단물질로 실용화되어 한 몫을 하고 있으니, 올 겨울 정전기 방위태세는 충분한 셈이다.

이원근 과학커뮤니케이션 연구소장

입력시간 2000/11/28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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