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미인 vs 인공미인] 내얼굴 내맘대로…성형수술 신드롬

인공미인시대, 자연미인은 어디로?

주부 황모씨(29)는 성형수술 반대론자였다. 누구나 인정할 만한 미인도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못생긴 얼굴도 아니었고 무엇보다 얼굴에 칼을 댄다는 생각이 싫었다.

또 돈도 많이 들고 아플까봐 걱정도 되었다. 그래서 그는 남들보다 작은 눈이 불만이기는 했지만 웃을 때면 더욱 가늘어져 초생달을 그리는 눈을 나름대로의 매력 포인트로 여겨왔다.

남편도 "자연스러운게 좋다"며 작품이 바뀔 때마다 다른 얼굴이 되어 나타나는 TV속의 연예인을 흉보는게 마음 든든했다.

하지만 황씨는 최근 쌍꺼풀 수술을 심각하게 고려중이다. 얼마 전 만난 친구가 쌍꺼풀 수술을 한데 이어 최근에는 눈꺼풀이 수북했던 시누이까지 쌍거풀 수술을 받고 몰라 보게 예뻐졌기 때문이다. 두 사람 모두 "고생했던 만큼 보람이 있다"고 은근히 자랑하는게 그의 마음을 흔들어놓았다.

또 수술 사실을 숨기기는 커녕 아무렇지 않게 성형 사실을 밝히는 그들의 모습이 당당해보이기까지 했다.


20대 여성 4명중 1명은 성형

황씨의 사례는 성형수술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어떻게 달라지고 있는 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이제 성형수술은 더이상 예뻐지려고 기를 쓰는 일부 연예인만의 얘기도, 감추어야 할 부끄러운 일도 아니다. 마치 수년 전부터 젊은 여성은 물론이고 중년과 10대, 그리고 남성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사람을 사로잡고 있는 '다이어트 열풍'처럼 누구나 관심을 가지고 있고, 원한다면 누구나 할 수 있는 미용관리의 일부가 되어버렸다.

특히 젊은 층에서는 "머리를 염색하는 것과 쌍꺼풀을 만드는 것이 뭐가 다르냐. 누구나 자기 몸은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갖는 이가 적지 않다.

1998년 전국 6,000명을 대상으로 실시된 대홍기획의 설문조사를 보자. 20대 여성 중 절반 이상(51.1%), 30대 이상 주부는 3분의1 이상(36.6%)이 "아름다워질 수 있다면 성형수술을 할 수 있다"고 대답했다. 20대 남성 중 22.6%, 30대 이상 기혼 남성의16.5%도 같은 대답을 했다.

또 얼마 전 결혼정보 회사 듀오에서 조사한 바에 따르면 "미팅이나 맞선에서 만나 마음에 드는 여자가 성형수술을 했다면 계속 만나겠느냐"는 질문에 20대 남성의 79.8%가 "계속 만나겠다"고 했다.

이유는 '아름다움은 여성의 당연한 욕구이므로'(37%)와 '그녀의 의사를 무조건 존중하기 때문'(19.8%) 등이었다. "아무리 예뻐도 얼굴에 칼 댄 여자는 절대 싫다"는 생각은 마치 구세대의 전유물처럼 돼버렸다.

실제 주변에서 성형수술을 한 사람을 찾아보기란 그리 어렵지 않다. 동방 커뮤니케이션스가 최근 20대 여성 2,400명을 조사한 바에 따르면 이들 중 18.3%가 성형수술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20대 여성 5명중 1명이 성형수술을 받은 셈이다. 가장 많이 하는 수술은 역시 쌍꺼풀과 코 높이기. 인상에 미치는 영향이 가장 직접적이기 때문이다.

또 다른 부위에 비해 수술도 비교적 간단한데다 비용도 큰 부담이 되지 않는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큰 쌍꺼풀과 높고 뾰족한 코, 큰 가슴 등 서구적 미인형을 선호했지만 점점 동양인에게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가는 쌍꺼풀과 아담하면서도 오똑한 코, 적당한 크기의 탄력있는 가슴을 선호하는 추세다.

또 가능한 한 티가 나지 않는 수술을 제일로 친다. 한듯 안한듯 하면서 어딘지 예뻐졌다는 인상을 주고 싶은 것이다.


TV는 성형미인 세상

일반인도 그렇지만 특히 TV는 그야말로 성형 미인의 세상이다. 최근 한 드라마의 주인공을 맡은 Y양처럼 한동안 안보였다 다시 나타나는 여자 연예인 중 상당수는 얼굴이 바뀌어 나타난다.

얼마전 막을 내린 한 드라마에 출연했던 K양처럼 얼굴을 못 알아 볼 정도인 사람도 있다. 데뷔 때와 똑같은 얼굴을 하고 있는 사람은 한명도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스스로 성형수술을 받았다고 인정하는 연예인은 김남주와 엄정화, 채림 정도다.

나머지는 모두 자기 얼굴이라고 뻔히 보이는 거짓말을 한다. TV속의 성형미인은 일반인의 성형수술 욕구를 자극한다. 예전보다 많이 줄기는 했지만 여전히 연예인 사진을 들고 와 수술을 원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무조건 누구누구를 닮게 해 달라기 보다는 누구의 특정 부위와 비슷하게 만들어달라는 사람이 많다. 최근 선호되는 모델은 심은하의 가늘고 자연스러운 쌍꺼풀, 채림의 오똑하면서도 끝이 동글동글한 코, 그리고 김현주의 도톰한 입술 등이다.

성형수술의 종류도 많이 늘었다. 몇년 전만 해도 성형수술 하면 쌍꺼풀이나 코 높이기, 유방확대 등을 떠올렸지만 이제는 주름 제거, 지방 제거, 사각형 턱과 주걱턱 교정, 종아리 성형, 광대뼈 깎기 등 한층 크고 복잡한 수술은 물론이고 섹시한 이미지를 풍기게끔 입술을 두텁게 하거나 인상을 좋게 하기 위해 좁은 이마를 넓게 하거나 혹은 눈매가 또렷해 보이도록 눈머리를 '찢는' 수술 등 그 종류가 100여 개에 달한다.

또 각종 첨단 장비의 발달로 인해 수술은 점점 간단하고 쉬워지고 있다. 돈 있고 마음만 있으면 머리 끝부터 발 끝까지 '뜯어고치는 것'이 가능한 세상이다.

이같은 성형수술 신드롬을 반영하듯 최근에는 성형수술과 관련된 상품이나 모임이 등장했다.

지난 5월 고객관리 대행업체인 ㈜원카드 시스템즈에서는 홈페이지 방문 고객을 대상으로 100명에 한해 무료 성형수술을 해주는 '원카드 성형수술 이벤트'를 열어 대한 성형외과개원의협의회로부터 "의료행위인 성형수술을 상품화한다"며 심한 반발을 산 바 있다.

하지만 반응은 엄청났다. 원카드 시스템즈의 한 관계자는 "정확한 숫자는 밝힐 수 없지만 예상보다 훨씬 많은 수천명의 고객이 응모, 이중 100명이 올 12월까지 원하는 병원에서 수술을 받고 있다"고 밝혔다.

언제든 기회만 되면 성형수술을 받을 의사를 표한 응모객 중 상당수는 자식에게 성형수술을 시키려는 부모들이었다.

실제로 요즘 성형외과에게는 겨울 방학철이 최고 성수기다. 10대의 여학생들이, 특히 졸업을 앞둔 여학생들이 방학기간을 이용해 성형수술을 하려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또 강남의 일부 아파트에서는 중년 부인끼리 한달에 5만원씩 모았다가 일인당 50만원 정도 쌓이면 함께 주름제거 효과가 있는 보톡스 주사를 맞으러 가기도 한다.

하지만 이같은 '성형수술 신드롬'으로 고통받는 사람도 적지 않다. 다이어트 열풍이 뚱뚱한 사람을 마치 죄인이나 무능력한 사람이나 되는 것처럼 만들었듯 성형수술 신드롬도 마찬가지다.

"요즘 병원을 찾는 환자 중 상당수가 '남이 하니까'라고 말하는 사람이 많다"는 한 지방제거 성형외과 전문의의 말처럼 "남들도 다 하는데 나도 해야 되나" 하는 생각은 사람을 초라하게 만든다. 또 성형수술 신드롬은 예쁘다는 것의 기준을 획일화한다.


미의 획일화 현상, 외모에 자신감 가져야

때문에 요즘 미인의 기준에서 벗어나는 쌍꺼풀 없는 눈, 낮고 넓은 코, 각지거나 큰 얼굴을 가진 사람은 공연히 주눅이 든다. 게다가 방송 등 매스컴에서는 성형미인을 절대적인 미인인양 대접하는 반면 그렇지 않은 이들을 '밥통'이니, '대갈공주'니 '폭탄'이니 하는 식으로 끊임없이 희화화한다.

낮은 코가 항상 불만인 이모(17)양은 "텔레비전에서 못생긴 여자들을 조롱거리로 삼을 때마다 정말 확 바꿔 버리고 싶은 생각이 든다"고 털어놓았다. 매스컴의 이 같은 극단적 반응은 특히 어린이에게 큰 영향을 미친다.

요즘 엄마들은 쌍꺼풀을 해달라, 얼굴을 작게 해달라는 초등학교 딸아이의 공세에 시달리기 일쑤다.

성형수술 신드롬에 대해서는 일부 성형외과 의사도 비판적 입장을 보인다. 대한 성형외과개업의협의회 김태연 기획이사는 "성형수술은 자신의 외모에서 모자라는 부분을 보완해주는 것이지, 이전의 자신과 전혀 다른 모습을 만들어주는 것이 아니다"라고 지적한다.

김 이사는 또 "성형수술은 외과수술의 일종이지 옷이나 화장품을 고르는 치장술이 아니므로 자신의 건강상태를 고려하지 않으면 합병증과 부작용에 시달릴 수 있다"고 경고한다.

미의 기준은 물론 주관적이다. 하지만 동시에 시대에 따라 달라진다. 그러므로 자기만족을 위한 성형수술을 무조건 나무랄 수도 없지만 패션만큼 유행을 타는 성형수술의 경향상 지금 예쁜 얼굴이 언제까지 예쁜 얼굴로 여겨지지는 않는다.

"생긴 대로 살아라"라거나 "자연스러운 것이 가장 아름답다"는 말이 진부하게만 느껴질 지 모르지만 너도 나도 비슷한 얼굴, 외모만을 중시하는 듯한 세태에서는 개성있는 얼굴, 자신 있는 태도가 오히려 더 돋보일 수 있다.

김지영 주간한국부 기자

입력시간 2000/11/28 19:47


김지영 주간한국부 koshaq@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