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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권 당정개편 초 읽기 "파워게임으로 번질라"

여권이 심상치 않다. "이대로는 안된다. 뭔가 달라져야 한다"는 위기의식이 팽배하다. 검찰총장 등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실력저지한데 대해 비판여론이 집중되자 곧바로 '당정쇄신론'이 튀어나온 것도 이같은 위기의식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당정쇄신론은 "지금처럼 당정이 느슨해서는 안된다. 정기국회가 끝나면 당정을 전반적으로 재점검해야 한다"는 한화갑 최고위원의 의원총회 발언이 도화선이 됐다.

당정쇄신론에 공감하는 민주당내의 기류가 당내동요로 이어질 조짐을 보이자 민주당 지도부는 부랴부랴 최고위원회의를 열어 "지금은 때가 아니다"며 진화에 나서기도 했다.

진화는 일단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당정쇄신론에 가장 적극적 목소리를 냈던 김근태 최고위원도 "위기가 진행중일 때 말을 바꿔타자는 것이 아니다"라면서 "정기국회를 끝내고 나서 하자는 얘기"라고 한발 물러섰다.

다만 정대철 최고위원은 "당정쇄신의 의지가 있다면 늦출 이유가 없다"며 조기 당정쇄신론에 가담하고 있다.

그러나 정기국회 도중에 당정개편이 이뤄지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운 측면이 있다. '국회가 마무리된 이후의 적당한 시점'이 당정쇄신의 시기가 될 것이라는 얘기가 대세처럼 들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필요하지만 때 아니다"

이상의 상황을 요약하면 "당정쇄신이 필요하긴 한데 지금은 때가 아니고 국회가 끝난 뒤 단행될 것"이라는 정도로 정리할 수 있다.

이러한 단순화는 명쾌하기는 하지만 민주당의 내부사정까지 그렇게 단순한 것은 아니다. 사실 여권의 당정쇄신론은 8ㆍ30 전당대회 훨씬 이전까지 거슬러 올라갈 정도로 뿌리가 깊다.

또 뿌리가 깊은 만큼 이를 둘러싼 여권내 명분다툼이나 이해득실도 상당히 복잡하게 얽혀있다. 당정쇄신론이 여권내 파워게임의 측면이 있는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당정쇄신론은 시기와 규모에 대해 주장하는 사람에 따라 다양한 스펙트럼을 보이고 있다. 주로 소장파를 중심으로 한 적극론자들은 "당력이 집중됐던 전당대회 이후 당정쇄신을 단행했어야 하며 따라서 당정쇄신은 이미 실기했다"는 주장마저 펴고있다.

그래서 지금이라도 대대적 당정쇄신이 이뤄지지 않으면 위기탈출이 어렵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한 소장파 의원은 "당정쇄신의 칼자루는 결국 김대중 대통령이 쥐고있다"면서 "김 대통령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며 불만 섞인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그런데 다소 역설적으로 들리겠지만 여권의 새로운 진용짜기가 미뤄져온 것은 바로 잇단 '위기' 때문이다. 전당대회 이후 한빛은행 사건, 선관위 선거비용 실사 개입 의혹, 국회법 '날치기' 파동 등 여권의 악재가 오히려 당정개편의 발목을 잡았다는 얘기다.

이때마다 동원된 논리는 "위기 때 당을 흔들어서는 안된다", "어려울수록 변화보다는 안정을 추구해야 한다", "공격받을 때 당정개편을 하면 당내 갈등을 초래, 적전분열이 되기 십상이다"라는 것들이다.

이는 "위기가 진행중일 때 말을 바꿔타지 않는다" 는 논리에 다름 아니다.

전당대회 이후 총재비서실장에 임명된 추미애 의원의 전언을 통해 접하는 김 대통령의 당정쇄신론에 대한 인식도 이 범주에 포함된다. 김 대통령은 10월초 신임 추 비서실장을 독대한 자리에서 "당내에 당정쇄신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상당하다"는 보고를 받고 "지금은 여야가 첨예하게 대치하고 있고 모두가 애를 많이 쓰고 있다.

(당정쇄신론은) 국회가 마무리되면 그때 가서 참고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참고하겠다'는 김 대통령의 언급을 소극적으로 해석하면 당정쇄신의 필요성을 낮게 보고 있는 것으로 이해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국회가 마무리되면'이라는 말로 시기를 구체적으로 명시했다는 점에 있어서는 '구상을 하고 있으며 그 시기는 국회가 끝난 뒤가 될 것'이라는 적극적 해석도 가능하다.

어느 경우든 지금은 때가 아니라고 보는 데 있어서는 크게 다름이 없다. 이를 두고 당내 일각에서는 "김 대통령이 상황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지 않나"는 회의적 시각도 있다.


박지원 전장관 사무총장 기용설

김 대통령의 상황인식까지 회의적으로 보는 사람은 물론 당정쇄신을 주장하는 최전방에 서있다. 큰 틀을 새로 짜지 않고는 여권이 현재 처한 위기를 극복할 수 없고 2002년 대선에서의 정권재창출도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이 이들의 논리다.

따라서 이들에게는 대대적 당정쇄신은 일회적 위기탈출용을 넘어서 정권재창출의 포석으로 연결된다. 여전히 여권내 실세인 동교동계의 2선 후퇴가 거론될 정도로 이들의 생각은 절박하기도 하고 파격적이기도 하다.

적극론자의 입에서는 개각은 물론, 청와대 비서진을 포함한 대대적 인사조치가 이뤄져야 한다는 얘기도 나온다. 민주당 실세 대표론, 당3역 교체론, 당 인사의 내각 진출론 등도 이런저런 맥락에서 이들의 주장과 닿아있는 측면이 있다.

심지어는 한빛은행 사건의 여파로 퇴진한 박지원 전 문화관광부 장관의 민주당 총장 기용설까지 나올 정도다.

대부분의 초ㆍ재선 의원을 포함한 소장파 인사 뿐만 아니라 당직에서 소외된 중진까지도 당정쇄신론에 가담하고 있는 사실도 흥미롭다. 이들중 입각에 관심이 있는 중진들은 "당 인사가 내각에 진출, 정치력을 발휘해야 집권 후반기 개혁작업을 마무리할 수 있다"는 주장을 숨기지 않는다.

그러나 당 지도부는 당정쇄신론에 대해 소극적이거나 아니면 다른 이유로 말을 아끼는 편이다. 서영훈 대표는 26일 "바뀌기는 바뀔 것"이라며 당정쇄신을 기정사실화하면서도 "김 대통령이 당을 가장 잘 알고 있는 만큼 그 시기나 폭 등은 대통령이 결정할 것"이라며 신중한 모습을 보였다.

그러면서도 자신이 교체설의 대상이 되기도 하는 서 대표가 당정쇄신의 필요성을 공개적으로 인정한 것은 그가 당정쇄신에 대해 '적극론'쪽에 서 있다는 뜻으로도 읽혀진다.

동교동계 좌장으로 통하는 권노갑 최고위원의 얘기는 뉘앙스가 사뭇 다르다. 권 최고위원은 당정쇄신의 시기에 대해 "내년에나 가서 보자"고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는 당정쇄신에 대한 소극론으로 해석할 수 밖에 없다.

즉, 여기에는 동교동계가 책임지고 당을 장악하는 현재의 체제가 어려운 때일수록 유지돼야 한다는 생각이 깔려있다.

당정쇄신론이 대세로 굳어졌다는 인상을 주기도 하지만 신중론도 만만치 않기 때문에 막후에서든, 실제 상황에서든 이들간에 파워게임이 벌어질 공산도 적지 않다.

고태성 정치부 기자 tsgo@hk.co.kr

입력시간 2000/11/28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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