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주영과 현대] '왕회장'시대, 황혼속에 지다

50여년 경영인생 사실상 마감

11월 25일은 정주영 전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85번째 생일이었다. 매년 성북동 영빈관에서 떠들썩한 잔칫상을 차렸으나 올해는 서울 풍납동 서울 중앙병원 18층 VIP룸에서 가족들과 함께 조촐하게 보냈다.

가족들은 "정 전회장의 건강이 여전하다"고 전했으나 시중에는 그의 건강과 관련해 온갖 추측이 난무하고 있다. 산소호흡기에 의존하느니, 올해를 넘기기 힘들다느니 하는 설들이 나도는 걸 보면 화려했던 '왕회장'의 시대는 이제 저물어 가고 있다.

사실 지난 3월부터 현대사태가 한국 경제계에 회오리 바람을 일으키면서 '왕회장(정주영 전명예회장)의 시대는 갔다'는 말이 나돌기 시작했다.

현대그룹의 주도권을 놓고 형(정몽구)과 동생(정몽헌)이 치열하게 다투는데도 그는 어떤 역할도 하지 못했기 때문. 오히려 두 아들이 아버지를 자신들의 입장을 옹호하는데 이용(?)하기 까지 했다.

'현대 패밀리'를 진두 지휘하던 예전의 카리스마는 찾아볼 수 없었고 인생을 정리하는 평범한 85세의 노인에 불과한 것으로 국민에게 비쳐졌다. 그의 분신인 현대그룹도 이제 정몽구(MK), 정몽헌(MH), 정몽준(MJ) 세 아들에게로 넘어가고 있다.


이땅에 태어나서

정 전명예회장은 우리 나라 중공업 분야의 산 증인으로 불린다. 스스로 현대를 통해 기업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했다고 자부한다.

건설, 조선, 자동차, 철강, 기계 등 소위 '중후장대산업'으로 불리는 중공업 분야에 현대는 그 어느 기업보다 뿌리깊은 인연을 갖고 있다. 현대가 이들 분야에서 국내를 뛰어넘어 세계 선두권의 경쟁력을 갖도록 그는 몸과 마음을 다 바쳤다.

그러나 현대를 이끌어 온 왕 회장의 인생유전은 막노동꾼으로 시작됐다. 1915년 강원도 통천에서 가난한 농부의 장남으로 태어난 그는 네 번의 가출 끝에 무작정 서울로 올라와 막노동꾼으로 세상에 뛰어든 것.

그리고 스물넷에 '경일상회'라는 쌀가게로 독립했다. 이 회사는 왕 회장이 경영인으로 첫 걸음을 내디딘, 그야말로 정주영 경영유전의 모태업체라고 할 수 있다.

전쟁으로 피폐해 있던 한국 땅에 가장 필요했던 건 건설산업. 도로ㆍ항만 등 사회간접자본 건설은 현대, 경영인 정주영의 성장 발판이었다.


불가능은 없다

1968년 세계 최단시간에 완공한 경부고속도로와 76년의 사우디아라비아 주베일 산업항 공사. 이 두개의 건설공사는 정주영이란 인물을 세계에 알린 대역사였다.

또 정주영의 '밀어붙이기'식 경영 스타일을 세상에 각인시킨 계기로 작용했다. 당시 기술과 장비로는 무모하다는 외부의 우려와 회사 내부의 제동이 있었지만 그는 밀어붙였고 끝내 성공했다.

자동차 사업도 마찬가지 였다. 그는 1966년 미국 포드사와 자동차조립 생산계획을 맺고 합작회사 형태로 승용차 생산에 들어갔다. 그러나 서로의 사업 방향이 달라 포드와 결별한 뒤 독자적으로 국산 자동차를 만들겠다고 결심했다.

그로부터 6년. 마침내 최초의 국산 고유 자동차 모델인 포니를 선보였다. 사람들의 비웃음을 일거에 날려버린 쾌거였고 10년후인 86년에는 한국 자동차업계의 숙원이었던 미국 시장에까지 진출했다.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

왕 회장에게도 시련은 있었다. 정치로의 외도에 따른 좌절감이 첫 손가락에 꼽힌다.

92년 대권에 도전했으나 실패했다. 선거결과는 그에게 패배 이상이었다. 정치권의 압박이 거세게 다가왔고 그는 죄인마냥 몸을 움츠리고 있어야 했다.

그러나 시련은 있어도 좌절은 없었다. 그는 일반인들의 상상을 뛰어넘는 발상으로 상황을 극적으로 반전시키며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1,000마리의 소떼를 몰고 휴전선을 넘나드는 그를 보며 세상 사람들은 '역시 정주영'을 연발했다.

금강산개발 사업은 정주영 인생의 마지막 작품으로 기록될 가능성이 높다. 이 사업 또한 안될 일을 되게 만드는 정주영 특유의 저력을 실감케 하고 있다.


사실상 빈손으로 돌어온 정주영

한때 수조원대에 달했던 정 전명예회장의 재산은 가파른 현대사태를 겪으면서 100억원선으로 급감했다. 자신의 분신이라고 할 수 있는 현대건설을 살리기 위해 현대자동차 지분 2.69%까지 내놓아야 하는 처지에 놓여 쪼그라든 그의 뒷모습이 더욱 쓸쓸해 보일 정도.

자동차 지분을 처분하면 그가 가지고 있는 상장 주식은 현대건설 0.5%, 현대중공업 0.51%, 현대상선 0.28% 등에 불과하다.

현대 관계자는 "통일민주당 시절 왕 회장의 보유재산은 수조원에 달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며 "하지만 지금은 대부분 재산을 현대 재건을 위해 바쳐 실제 가지고 있는 게 별로 없다"고 말했다.

정 전명예회장은 지난 3월 두 아들의 경영권 다툼을 조정하기 위한 경영자협의회에 직접 참석, 이렇게 말했다. "몽헌 회장이 취임해도 중요한 일은 모두 저와 의논할 것이니 여러분은 아무 걱정할 것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의 건재를 과시하면서 정몽헌 회장을 앞세워 경영에 계속 관여하겠다는 뜻을 드러냈지만 실제로는 거의 개입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평생을 바쳐 국내 1위의 그룹을 일궈냈지만 이제 세월의 무상함을 느끼며 50여년간에 걸친 파란만장한 경영인생을 마감하려 하고 있다.

임석훈 서울경제신문 산업부 기자

입력시간 2000/11/28 2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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