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k뉴스포탈 한국일보
일간스포츠
서울경제
KoreaTimes
대한항공 대우통신
주간한국  
www.hankooki.com  


 
주간한국 홈
구독신청
독자 한마디
편집실에서


   벤처 스타열전
   인터넷 세상
   신동의보감
   땅이름과 역사

[The Beatles] 세대를 초월해 비틀즈 음악의 매력은?

어째서 그 많은 음악 중에 비틀즈의 음악이 유독 세대를 초월해 사랑을 받는가?

음악사적 위치로 따지자면 로큰롤의 황제인 엘비스 프레슬리도 있고 당대에 음악성에서는 더 높은 평가를 받았던 롤링 스톤즈나 밥 딜런도 있는데. 이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 재미있는 비교를 한번 해보자. 비틀즈와 '서태지와 아이들'을 비교해 보자는 것이다.

비틀즈와 서태지의 음악적 궤적에는 공통점이 많다. 먼저 데뷔 초기. 둘 모두 엄청난 반향, 특히 젊은 층의 열광을 불러있으켰다. 가장 큰 이유는 새롭다는 느낌 때문이었다.

한국어로 랩을 그토록 능숙하게 소화해 낸 서태지가 거의 경의에 가깝게 느껴졌듯이 비틀즈의 단순하면서도 재기발랄한 하모니, 힘있는 비트, 그리고 '예예예' 같은 후렴구는 당시 젊은이에게는 이제까지 들어보지 못한 새로움이었다.

하지만 좀더 귀 기울여보면 서태지의 '난 알아요'는 우리 귀에 익숙한 뽕짝 가락을 빠르게 해놓은 듯하다. 마찬가지로 비틀즈의 초기 곡은 하나같이 이들이 10대 시절 매료되었던 초기 로큰롤에 충실하다.

즉, 둘은 기존의 음악을 자기 나름대로의 독창적 방식으로 해석해낸 것이다. 그래서 둘 다 초기에는 공통적으로 영리하다는 평을 받았다.


기존음악 독창적으로 재해석

두번째, 비틀즈와 서태지의 음악은 변화무쌍하다. 멜로디가 강조된 랩에서 국악기를 삽입한 한국적 랩, 헤비 메탈이 가미된 록, 다시 갱스터 랩으로 앨범마다 색깔을 바꾼 서태지보다 비틀즈의 음악적 변신과 실험, 스펙트럼은 훨씬 더 다양하다.

초기의 순수한 로큰롤과 발라드는 중기에 들어 인도 악기 시타의 사용, 테이프의 역회전, 클래식 악기의 도입 등에 의해 색채를 달리했고 1967년 무렵에는 사이키델릭 록과 컨셉트 앨범의 시원을 선보였다.

그리고 1968년 'White Album'에서는 헤비 메탈에서 스탠더드 팝, 아방가르드, 컨트리, 블루스 등 그야말로 모든 음악을 섭렵했다. 더구나 그 변화는 단지 옆으로만 넓은 게 아니라 깊이로도 일관되게 진보적이었다.

만일 둘이 데뷔 초기에 머물렀다면 그들 역시 인기 있었던 그룹으로만 기억되었을 것이다. 또하나, 비틀즈와 서태지의 중후기 음악에는 당시 젊은이의 시대정신이 담겨있다.

또 아무도 노래에 담지 않았던 사회적인 문제, 때로는 금기도 노래했다. 서태지의 '교실 이데아'가 억눌린 한국의 10대에게 송가로 들렸다면 이상과 반항, 혼돈과 희망을 노래한 비틀즈의 음악은 국적을 막론하고 당시 청년의 '국가'(國歌)였던 셈이다.

서태지가 통일을 노래했듯이 비틀즈는 마약과, 평화, 인도 명상, 세대갈등, 위정자에 대한 노골적 비판까지 노래했다. 이중 상당수는 지금 들어도 공감이 가는 내용이다.


탄탄한 예술적 기본과 실험정신

어쩌면 감히 비틀즈를 서태지와 같은 급으로 취급했다고 불쾌해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혹은 감히 서태지를 비틀즈와 비교하느냐며 화를 내는 10대도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둘은 분명, 새로운 음악의 발전기에 한 획을 그은 이들이다.

만일 서태지와 아이들이 해체된지 4년이 지난 지금, 다시 듣는 그들의 노래가 여전히 신선하고 그동안 명멸한 수많은 댄스곡이나 요즘 음악보다도 더 매력적으로 느껴진다면, 또는 수많은 댄스 그룹이 서태지에게서 가장 많은 음악적 영향력을 받았다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면, 비틀즈 음악이 주는 신선함과 매력의 정체, 후세 음악인과 음악 자체에 대한 그들의 영향력을 이해하기란 어렵지 않을 것이다.

외국 가수들은 물론이고 국내에서도 들국화, 조용필, 조동진, 전영록, 김창완, 김종서, 일기예보, 원더버드 등 수많은 이들이 비틀즈를 자신의 음악적 스승으로 친다. 즉, 비틀즈는 자신들 이전의 음악을 뿌리로 해서 당대와 이후 모든 대중음악의 기준을 세운 셈이다.

비틀즈가 세운 그 기준을 뛰어넘은 음악인은 아직 없다. 더구나 비틀즈는 레논, 매카트니, 해리슨, 스타 네 사람이 마치 하나의 유기체의 부분을 이루듯 움직였다.

그들이 만들어낸 시너지 효과는 이후 어떤 누구도 맞먹을 수 없는 대단한 것이었다.

비틀즈에서 음악듣기를 시작한 사람 중에는 여러 음악, 혹은 한가지 음악을 듣다 결국 다시 비틀즈로 돌아오게 되었다고 말하는 이들이 많다.

그것은 비틀즈가 단지 당대를 풍미했던 최고 인기그룹이기 때문이 아니라 변화와 창조, 과거와 미래, 보편과 특수를 동시에 갖춘, 언제 어디에서나 인정받을 수 밖에 없는 예술의 기본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비틀즈의 음악은 지금도 여전히 사람을 미치게 만드는 것이다.

김지영 주간한국부 기자 koshaq@hk.co.kr

입력시간 2000/12/05 18:01



 

◀ 이전화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