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전망대] 경제시스템 이대로 괜찬나?

뉴 밀레니엄의 첫 해를 마감하는 시기에 '라틴 코리아'우려가 연말 한국경제에 유령처럼 떠돈다.

구조개혁 실패와 부정부패의 만연으로 경제체질과 구조가 극도로 허약해져 국제투기 자본의 공격대상이 되고, 주기적으로 외환위기에 빠지는 남미 경제의 초기 증상들이 우리 경제에 움트고 있지 않느냐는 우려다.

물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제통화기금(IMF) 등 유력 기관들이 분석하듯 1,000억원 가까이 외환보유고를 쌓은 한국에 단기적으로 제2의 환란이 몰아칠 가능성은 극히 낮다.

하지만 환란보다 오히려 파괴력이 클 수 있는 시스템적 위기의 전조들은 도처에 널려 있다.


경기 하강국면, 신용불량자 속출

생산 소비 투자 수출 등 거시 지표를 보면 이미 경기는 하강 국면에 접어들었고, 기업 및 금융권 퇴출에 따른 대량 실업 등 정치ㆍ사회적 불안요인들은 갈길 바쁜 구조조정의 뒷덜미를 잡고 있다.

특히 빈부격차가 더욱 심화하는 가운데 일반 가계의 소비심리는 꽁꽁 얼어붙었고, 신용불량자도 240만명에 이르러 경제활동인구 10명당 1명이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할 수 없는 처지다.

기업이나 가계나 정부나 모두 내년이 오는 것을 두려워하는 눈치다. 한때의 자만과 환상이 돌연 절망과 초조로 바뀌었다.

이럴 때 일수록 정부는 '선택과 집중'의 일점(一點) 돌파의 의지와 자신감을 가져야 한다.

금주는 그 첫번째 시험대다.

이와 관련, 김대중 대통령은 "우리 경제상황이 나빠진 책임은 정부에 있다"고 현실인식을 토로하고 "공기업 개혁없이는 민간기업 개혁이 없는 만큼 한국전력은 내가 책임지고 개혁할 것"이라고 단호한 의지를 보였다.

이런 서슬에 놀란 듯, 혹은 야당과 여론까지 등을 돌리자 역부족을 느낀 듯, 한전노조가 파업을 철회해 우려됐던 노동계의 동투(冬鬪)도 맥이 빠졌다.

더불어 최대 숙제인 금융구조조정을 위한 40조원의 추가 공적자금 조성 동의안도 매듭되고 금융지주회사 시나리오도 윤곽을 잡았다. 남은 것은 원칙을 지키면서 노심(勞心)과 농심(農心)을 어떻게 설득하고 달래느냐는 것이다.

정책수단이 명백히 달라야 할 구조조정과 고용안정, 또는 농가 빚 경감을 한 테두리 내에서 해결하려 했던 종래의 정책은 시장경제도 민주주의도 훼손시키는 것일 뿐 아니라 '뿔을 고치려다 소를 죽이는' 우를 범하는 것이다.

11월 한달에만 23%나 하락한 나스닥 한파를 맞아 국내 증시도 연일 최저치를 경신하는 등 녹초가 됐지만 아예 희망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우선 투신권으로 흘러갈 공적자금이 2조원을 넘고, 근로자 주식저축 도입과 연기금 전용펀드 설립으로 3조여원의 매수여력이 생겼다.

여기에 진념 재경부장관과 이기호 경제수석 등 정책당국자들이 "어떤 일이 있어도 증시를 안정시키겠다"고 공언해 500이 굳건한 심리적 지지선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외국계 펀드 청산과 환율급등의 여파로 외국인들이 지난 주 대량 매도포지션으로 돌아서는 바람에 상승 모멘텀을 잡기는 쉽지않다. 대부분의 애널리스트들은 연말은 물론 이른바 '1월 효과'도 미미할 것으로 분석한다.


증시회복기대 아직도 난망

미국대선 향방이 주내 윤곽을 잡으면 올 3월 대비 절반으로 떨어진 나스닥 시장도 상대적으로 안정을 되찾겠지만 첨단기술주와 반도체, 통신, 인터넷주의 약세가 좀처럼 회복되지 못해 크게 기대할 바는 못될 것 같다.

4일부터 IMT2000 사업자를 사실상 결정하는 비계량부문 평가작업이 시작돼 14일까지 진행된다. 최근 끝난 계량부문 평가와 자격심사는 비중이 20%에 불과한 만큼 SK텔레콤 한국통신 LG텔레콤은 티켓이 2장뿐인 비동기 사업자에 선정되기 위해선 이번 심사에 사활을 건 처지다.

4일부터 조업이 재개된 대우자동차에 대한 GM의 관심이 일괄인수보다 국내외 법인중 사업성이 좋은 곳만 선별, 자산부채이전(P&A)방식으로 매입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져 또 한번의 국부유출 논란이 예상된다.

현대의 자구이행 노력도 주목된다. 현대건설의 경우 정몽헌 회장의 경영복귀와 경영진 교체여부도 주중에 가닥이 잡게 된다.

12월 한국 사회의 화두는 리더십의 위기, 특히 집권세력의 위기로 모아진다. 현 정부는 '잃어버린 3년'을 만회하기 위해 4대부문 개혁에 목을 매달고 있지만 집권층의 광범위한 쇄신과 자기반성이 없는 한 개혁의 전도가 불투명하다는 게 대부분 식자들의 얘기다.

현재 경제상황의 어려움도 특정분야의 도덕적 해이나 개혁저항세력의 발호때문이 아니라 위기관리능력을 상실한 권력과 총체적 국가운영 시스템의 왜곡에서 기인된 것이다.

이 겨울, 냉소로 가득찬 사람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데워줄 산타클로스는 어디에 있는가. 적어도 한가지, 노벨평화상이 아닌 것은 확실하다.

이유식 경제부차장

입력시간 2000/12/05 1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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