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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덩이 공적자금 보증(?)선 국민만 손실

64조원에서 160조원… 회수못하면 고스란히 국민부담

IMF체제 3년을 거치면서 생겨난 새로운 심리증상 중 하나가 바로 '고액불감증'이다. 1997년만 해도 부채 규모 6조원의 한보그룹 부도에 온 나라가 홍역을 치렀지만 이젠 100조원 부채의 대우그룹 도산까지 경험했으니 금액에 대한 심리적 인플레는 당연한 현상일 수도 있다.

그러나 국민이 이제 억(億)단위의 돈쯤은 별로 놀라지도 않게 된 데에는 공적자금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12월1일 국회에서 40조원의 제2차 공적자금안이 확정됨에 따라 1차 64조원을 포함, 공적자금 조성액은 총 104조원으로 늘어나게 됐다.

사실 말이 104조원이지 그 규모는 천문학적인 것이다. 빳빳한 1만원짜리 신권을 007가방에 가득 채우면 약 1억원이고 이런 007가방이 104만개나 있어야 104조원을 만들 수 있다.

시중에 풀린 현찰을 모두 모아도 총 공적자금의 8분의1인 16조원 밖에 되지 않는다. 우리나라 1년 예산도 100조원을 겨우 넘을 뿐이다.


썩은 금융기관 '수혈가'는 결국 국민

공적자금은 혈세를 거둬 마련하는 것이 아닌 만큼 그 자체가 직접 국민부담은 아니다. 예금보험공사와 자산관리공사가 채권을 발행해 자금을 조성하고 정부는 두 공사가 상환불능상태에 빠질 때에 대비해 지급보증을 섰다.

즉, 국민 모두가 보증인이 된 셈이다. 현행법상 정부의 지급보증행위는 국회동의를 받아야하기 때문에 공적자금 조성도 당연히 국회동의 절차를 밟았다.

1998년 5월 처음 64조원으로 조성된 공적자금은 피가 모자라 죽어가는 환자에 대한 일종의 수혈이었다.

당시 금융기관은 부실누적과 자본잠식 속에 더이상 자력생존이 불가능한 상황이었고 연명을 위해선 누군가가 부실을 털어내주거나 자본금을 대줘야했지만 곪고 썩은 금융기관을 도와줄 '자선가'는 없었다.

국민경제의 혈맥인 금융기관을 모두 도산시키는 것은 불가능했던 만큼 결국 정부가 '신선한 피'(자금)를 공급해야만 했던 것이다.

64조원은 예금보험공사에 43조5,000억원, 자산관리공사에 20조5,000억원이 각각 배정됐다.

예금보험공사가 채권(예금보험기금채권) 발행을 통해 조성한 43조5,000억원중 20조원은 한빛ㆍ조흥ㆍ제일ㆍ서울은행과 대한생명등 부실금융기관 자본금 확충(증자)에 투입됐고, 그 결과 예금보험공사는 이들 금융기관의 최대주주가 됐다.

또 문을 닫은 금융기관 고객에게 예금을 되돌려주거나(예금대지급), 퇴출은행을 인수했던 우량은행에 손실금 보전(출연)용도로 21조원이 사용됐고, 부실은행 자산매입 등에 2조원이 투여됐다. 자산관리공사의 20조5,000억원은 모두 금융권 부실채권을 사들이는데 활용됐다.


충분하다던 64조원 바닥, 40조원 추가 조성

1차 공적자금은 지난해 말 이미 바닥났다. 64조원은 1998년 초의 금융권 부실 규모를 근거로 산정된 액수이기 때문에 지난해 여름 대우사태가 터졌을 때부터 시장에선 추가 공적자금 조성요구가 강력히 개진되어왔다.

하지만 정부는 "추가 공적자금은 필요없다. 기존 투입분을 회수해 사용하면 64조원으로 충분하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물론 정부 내에서도 "64조원으론 불가능하다"는 결론은 이미 내려진 상태였다. 그럼에도 정부가 추가 공적자금 조성을 꺼렸던 이유는 크게 두가지였다.

첫째, '공적자금=국민부담'이란 인식이 팽배한 상황에서 4ㆍ13 총선을 앞두고 추가 공적자금 필요성을 시인한다는 것은 여권의 선거전략상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선택이었다.

둘째, 공적자금 조성을 정부가 순순히 수용할 경우 시장의 도덕적 해이(모럴 해저드)를 부추길 수 있다는 판단에서였다.

재임중, 심지어 선거가 끝난 뒤조차 끝내 추가 공적자금 조성에 부정적이었던 이헌재 전 재정경제부장관은 퇴임후 사석에서 이렇게 얘기한 적이 있다.

"금융구조조정은 우선 뼈를 깎는 자구노력으로 부실을 털어내고, 그래도 안될 경우에 한해 공적자금을 투입하는 것이 원칙이다. 만약 정부가 일찌감치 공적자금을 더 마련하겠다고 했다면 금융기관들은 아마도 자구노력은 뒤로 미룬 채 너도 나도 손만 벌렸을 것이다."

결국 진념 경제팀의 출범후 한달여만인 9월 정부는 40조원의 제2차 공적자금 조성 필요성을 시인했다. 대우부실 처리를 포함, 금융구조조정 완결을 위해 더 들어가야할 돈은 50조원이지만 10조원은 기존 투입자금을 회수해 사용하고, 40조원만 국회동의하에 신규조성하겠다는 방침을 발표했다.


금융부실 치유에 총 160조원 투입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지금까지 금융구조조정에 들어간 돈은 64조원이 전부가 아니었다. 자산관리공사는 금융기관들로부터 사들인 부실채권을 투자자에게 되팔았고, 이 매각대금으로 금융기관 부실채권을 9조5,000억원을 더 매입했다.

예금보험공사도 부실 금융기관들로부터 인수한 자산을 되팔거나 부실책임이 있는 금융기관 임직원 및 대주주로부터 압류한 재산을 처분해 조성한 자금으로 부실 금융기관 출자 및 예금대지급 등에 9조1,000억원을 더 투입했다.

즉, 투입자금을 회수한 후 재투입한 금액만 18조6,000억원에 달했고 결국 64조원을 포함, 1차에서 실제로 들어간 돈은 총 82조6,000억원이었다.

정부의 회계장부안에는 국회동의 하에 예금보험공사와 자산관리공사가 채권발행으로 조성한 공적자금과는 다른, '공공자금'이란 또다른 주머니가 있다.

일부는 국민혈세(정부예산)를 금융기관에 바로 투입됐고 일부는 국유재산(국유재산관리특별회계) 형태로 지원됐으며 또 일부는 각종 기금에서 갹출된 돈(공공자금관리기금)이 사용되기도 했다. 이처럼 국회동의 없이 공공자금 형태로 금융구조조정에 들어간 돈은 무려 27조원이나 된다.

결국 1차 공적자금 64조원, 회수후 재사용분 18조6,000억원, 공공자금 27조원등 109조6,000억원의 돈이 금융구조조정에 투입됐고 앞으로 2차로 투입될 50조원(신규조성 40조원+재사용분 10조원)을 포함하면 금융의 부실을 털어내는 작업에 들어가는 자금은 160조원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경제의 혈관을 깨끗이하기 위한 불가피한 비용이라고는 하나 너무도 큰 액수다.

관건은 160조원중 과연 얼마나 회수될 것인가에 있다. 회수되지 못하는 돈은 고스란히 '보증인'인 국민의 혈세로 메워질 수 밖에 없다.

공적자금 이자는 정부예산에서 지원되기 때문에 2006년까지 64조원에 대한 이자 28조원은 이미 국민부담으로 확정된 상태이고, 추가 공적자금 40조원에 대한 이자까지 포함하면 적어도 45조원은 국민세금으로 충당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공적자금은 눈 먼 돈' 인식 버려야

현재로선 회수율을 예상하기 어렵다.

그러나 총 17조원의 공적자금이 투입되는 제일은행을 단돈 5,000억원에 매각한 점, 돌려받지 못할 예금대지급등으로 나간 자금이 25조원에 달하는 점 등을 감안하면 최소 50조원은 떼일 것이란 분석이 나오고 있다. 이자까지 합치면 국민손실은 100조원에 달한다는 추산이다.

하지만 국민이 분개하는 점은 손실액의 절대규모가 아니다. 공적자금을 투입받은 은행이 직원 봉급 인상이나 퇴직금 지급에 돈을 펑펑 쓰고 금융기관에 막대한 부실을 입힌 부실기업 오너가 제재는 커녕 빼돌린 재산으로 여전히 황제처럼 살아가고, 그런데도 감독당국은 이를 수수방관하는, 도덕적 해이를 넘어선 도덕적 타락에 공적자금은 그 당위성이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정부는 "40조원이 마지막 공적자금이 될 것"이라고 국민 앞에 선언했다. 투명한 집행과 엄정한 사후관리로 '공적자금=공짜자금'이란 인식을 정부 스스로 불식시키지 못하는 한 국민적 분노는 결코 잠재울 수 없다.

이성철 경제부 기자 sclee@hk.co.kr

입력시간 2000/12/05 1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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