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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처 키드] 모래성 쌓은 위험한 황태자들

신종 금융기법 동원 무차별 기업사냥, 결국 줄줄이 몰락

30대 청년 재벌 신화를 일으켰던 벤처 실업가들이 잇달아 몰락하고 있다.

이들은 IMF위기 직후 빚어진 주식 대폭락과 기업 가치 하락, 그리고 곧바로 이어진 인터넷 벤처의 열기와 주식 단기 폭등이라는 호재를 등에 업고 불과 1~2년만에 수백억원대의 떼돈을 번 '21세기 신(新)재벌군'.

이들은 실물 경기가 잔뜩 움추러들었던 IMF위기 직후 내부정보를 통해 주식을 대량 매집하거나 M&A나 A&D 기법, 또는 편법 전환사채 발행 등 갖가지 선진 금융기법과 탈법적 수단을 통해 수십배, 수백배의 부당이익을 편취하며 일거에 큰손으로 부상한 금융계의 '미다스의 손'들이다.

이들은 청년 실업가(?)답게 연예사업이나 스포츠 사업에까지 진출하는 등 문어발식 확장에 몰두하다 초여름부터 몰아친 닷컴 벤처 회의론과 주식 폭락이 겹치면서 순식간에 기반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최근 하나둘씩 터지고 있는 벤처 실업가의 비도덕성은 가뜩이나 암울한 우리 경제를 더욱 깊은 수렁으로 몰아넣고 있다. 한때 '21세기형 청년 재벌'로 선망의 대상에 올랐단 몰락한 이들 '벤처 키드'(Venture Kid)의 치부 과정을 낱낱이 파헤쳐본다.

요즘 금융계와 벤처업계 사람들은 닷컴(.com) 벤처와 주식 투자 열풍이 몰아쳤던 지난 1년여를 '100년 안에 다시 찾아올까 말까 한 천재일우의 기회', 'IMF, 21세기 뉴밀레니엄, 정보통신(IT) 혁명이 만든 신기루에 쌓여있던 시기'라고 말한다.

너도나도 벤처기업이라면 투자를 못해 애를 태우고, 증권사 객장에는 아줌마 부대로 장사진을 이루고, '묻지만 투자'는 기승을 부리고.. 이들은 이 시기를 '눈먼 돈이 날아다니던 시절'이라고 표현한다. 불과 6개월전의 일이다.

뉴밀레니엄과 인터넷 비즈니스에 대한 가능성과 장밋빛 비전을 이용한 몇몇 청년 실업가들은 그야말로 단숨에 천문학적인 부를 거머쥘 수 있었다.


화려한 머니게임, 금융계의 거물로 부상

진승현(27) 정현준(32) 김진호(32) 고창곤(38) 김석기(43) 양재혁(46).. 이들은 IMF위기 이후 '신인류'로 떠오른 이 시대 금융계와 벤처업계의 간판 스타다. 숱한 부러움과 질시를 동시에 받으며 국내 경제계의 신성(新星)으로 등장했던 이들은 지금 대부분 몰락의 길에 들어서 있다.

진승현과 정현준. 금융과 벤처업계에서 M&A(인수합병)를 통한 '기업사냥의 마술사'로 알려졌던 두 사람은 출발은 달랐지만 종착역은 금융 감독기관과의 유착을 통한 불법과 사(私)금융 형태의 부정비리로 화려했던 머니게임을 마감했다.

K대 경영대 편입생 출신인 정현준씨는 대학 졸업 직후인 1995년초 아직 국내에서는 알려지지 않았던 M&A 중개업에 뛰어들었다. IMF위기로 국내 자본시장에도 M&A가 시작될 것이라는 나름대로의 판단이 섰던 것이다.

당시 단돈 3,000만원으로 중개회사를 차린 그는 1998년초 정보ㆍ통신분야에 특화된 M&A 사업을 추진하면서 사세를 확장하기 시작했다. 쓰러져가던 인터넷 벤처기업에 자금지원을 하며 기업인수를 중개해준 것이 정부의 벤처 지원 정책과 당시 국내기업의 해외 매각 바람과 맞물려 바람을 탄 것이다.

그러다 그해 8월 한국디지탈라인(KDL)의 M&A 중개를 맡게 됐는데 성사가 어렵게 되자 이듬해 1월 본인이 직접 그 회사의 지분 30.89%를 헐값에 인수하면서 그의 위치는 순식간에 달라졌다.

더구나 그때부터 코스닥이 활황을 타면서 액면가 500원인 KDL 주식이 무려 4만6,000원까지 폭등, 정씨는 순식간에 떼돈을 벌게 됐다. 정씨는 대주주의 권한을 이용, 전환사채(CB) 30억원을 발행해 KDL창업투자 등 각종 인터넷 정보통신 벤처기업을 인수하기 시작했다.

정씨는 이때 KDL이 발행한 전환사채 중 절반이 넘는 15억6,600만원 어치를 자기가 직접 인수, 올해초 10배가 넘는 시세차익을 남기고 처분하는 방식으로 대주주의 권한을 남용해 막대한 이득을 챙겼다.

이후 정씨는 워크아웃중인 새한그룹이 보유하고 있던 디지털임팩트 지분과 대신신용금고, 동방상호신용금고 등을 잇달아 인수, 졸지에 금융계의 거물로 부상했다.


교모한 방법으로 비리·탈법 일삼아

진승현씨는 국내에서 금융기법을 터득한 정씨와 달리 K대 경영학과를 중퇴하고 미국 유학을 가 선진 금융 기법을 익힌 해외파 출신이다. 진씨는 4년간 미국 영국 홍콩 러시아 등을 전전하며 어깨 너머로 M&A, A&D 등의 기법을 터득해 1998년 귀국했다.

진씨도 종자돈을 마련한 것은 신세기통신, LG정보통신, 한글과 컴퓨터 같은 코스닥이나 장외종목이었다.

미국 나스닥 지수 상승에 힌트를 얻어 정보통신주에 큰 베팅을 한 것이다. 진씨는 모친으로부터 받은 자금으로 고려산업개발의 신주인수권부 사채(BW)를 주당 100원에 매입해 1,200원에 팔아 80억원을 만드는 수완을 보였다.

이후 1998년말 현대창업투자를 인수하면 M&A에 뛰어든 진씨는 이듬해 모은 자금으로 금융 지주회사인 에이스캐피탈을 설립했고, 열린금고와 MCI개발을 인수했으며 외국 활동으로 알게 된 고창곤씨를 통해 영국 리젠트퍼시픽 그룹을 끌어들여 코리아온라인(KOL)이라는 지주회사를 설립했다.

선진 금융기법에 노하우를 활용, 부실 금융사를 인수한 뒤 무차별적 기업사냥에 나서는 방식을 취했다.

이처럼 정씨와 진씨는 처음 출발은 상이하지만 치부에 성공한 일련의 과정과 몰락 형태는 매우 흡사하다.

두 사람은 초기 시드머니를 만드는 단계에선 주로 유동성 위기에 처한 부실기업의 대주주 지분을 싼 값에 인수해 차액을 남기거나, 대주주 권리를 이용해 CB나 BW를 발행ㆍ인수해 차익을 남기는 방식을 택했다.

그러나 인수 회사의 규모가 커지면 이들을 통제할 홀딩 컴퍼니(지주회사)를 설립한다는 공통점을 보이고 있다.

정현준의 디지털홀딩스, 진승현의 코리아온라인이 바로 대표적인 홀딩 컴퍼니다. 또한 내부단합을 통해 단번에 큰 시세차익을 챙길 수 있는 M&A에 투입할 자금 마련을 위해 컨트롤이 용이한 신용금고를 인수하는 수법도 똑 같았다.

또한 처음에는 사채업자를 끼고 종자돈을 마련하다 규모가 커가면서 금감원이나 정계의 사람에 대한 로비를 시도한 점도 뗄 수 없는 공통점이다.

결국 이 두 기업사냥꾼의 비위가 드러난 것은 신용금고 불법대출을 통해서다. 이들은 법망을 피하기 위해 교묘한 방법으로 비리와 탈법을 이용해 실제 이같은 대형사건이 터지기 전까지 적발이 힘들었다.

금감원이 수개월전 정씨와 진씨가 대주주로 있는 신용금고들의 불법 사실을 수차례 발견하고도 가벼운 경고 수준에 머물었던 것이 바로 단적인 예다. 은행이나 보험 투신사 같은 메이저급 금융기관의 관리ㆍ감독과 구조조정에 신경을 쓰다보니 자연 신용금고 쪽에는 손을 댈 여력이 없었던 것이다.

그러다 올 여름부터 주식 시장이 추락하면서 이들의 탈법행위가 불거지기 시작한 것이다.


신용금고의 사금고화

가장 손쉬운 것이 금융감독의 사각지대에 있는 상호신용금고의 사금고화다. 본래 상호신용금고는 신용금고법에 따라 출자자에 대한 대출규모가 자기자본의 100%를 넘지 못하게 돼 있다.

특정기업에 대한 대출한도도 정해져 있다. 그런데 정씨와 진씨는 대주주라는 월권을 통해 상호신용금고의 돈을 마치 자기돈처럼 마구 가져다 썼다. 만일 주식시장이 지금 같이 폭락하지만 않았더라도 이들의 불법 행각은 아마 더욱 기승을 부렸을 것이다.

지난해 말 인터넷 벤처 신화의 성공 케이스로 가장 먼저 주목받은 골드뱅크의 김진호 사장 역시 '무늬만 벤처'의 원조라 할 수 있다.

서울 K구청장의 비서를 했다 지방의회에도 출마했던 김씨는 지난해 '광고를 보면 돈을 준다'는 특이한 마케팅으로 회원을 모은 뒤 주가를 끌어올려 거금을 벌었다.

그는 인터넷 주식공모와 유ㆍ무상 증자, 전환사채(CB)와 신주인수권부 사채(BW) 발행 등을 통해 약 800억원의 거금을 모아 프로농구단을 창설하고 15개 기업을 인수하거나 지분을 매각했다. 김씨가 세운 골드뱅크는 처음에는 인터넷 벤처기업을 표방했으나 나중에는 벤처사에 투자해 수익을 챙기는 벤처 캐피탈로 변했다.

벤처라기 보다는 벤처로 번 돈으로 유망 프리코스닥이나 상장 주식에 투자해 차익을 챙기는, 명동 사채업자들과 같은 머니게임에만 열을 올린 것이다. 이런 행위는 결국 김씨를 파멸의 길로 몰아 넣었다.

주변으로부터 많은 비난을 받던 김씨는 올해 3월 한 미국계 릴츠펀드의 적대적 M&A에 휘말려 경영권을 잃고 말았다. 최근 김씨는 일본과 한국을 오가면 재기를 모색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금융계의 연금술사'로 통해온 김석기씨도 한때 500억원이 넘는 자산가로 금융계의 큰손 노릇을 하던 화제의 인물이다.

하버드대 경영학 박사 출신인 김씨는 외국인의 국내 주식투자가 제한돼 있을 때 창업투자조합을 설립, 외국인의 우회투자를 해주는 대가로 거액의 커미션을 받거나 해외 전환사채를 이용해 큰 돈을 번 신금융기법의 선구자였다.

1997년 적자투성이인 한누리증권 대표직을 맡아 6개월만에 흑자를 냈고, 1999년 중앙종금 대표에 취임해 벤처 투자와 신종 금융상품을 개발해 1,000억원에 달하는 흑자를 내는 수완을 보였다.

하지만 그는 주가를 끌어올리기 위해 제주은행과의 합병, 오스트레일리아 펀드회사인 암코의 증가 참여 등을 공시했다가 무산되는 바람에 일반 주주에게 큰 손해를 입혔다. 현재 김씨는 홍콩에서 체류하며 도피중에 있다.


"몰락 줄이을 것" 소문 무성

부산 삼부파이낸스의 양재혁씨는 무고한 개미 투자자의 혈전을 개인치부와 방탕한 생활로 탕진한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의 대표적 케이스다.

S대 행정학과를 나와 S그룹 비서실에서 근무했다는 양씨는 1987년 건설업체를 정리하고 뉴욕체류중 M&A와 뮤추얼펀드 전문가인 친구 사무실을 드나들며 파이낸스 기법을 어깨 넘어 익혔다.

1990년 귀국해 부산에서 사채업을 하며 돈을 번 양씨는 1997년 부산에서 최초로 파이낸스사를 설립, 고객에게 "고율의 이자를 주겠다"고 현혹해 모은 자금으로 4개 계열사를 만들어 금융그룹의 회장 행세를 했다. 매달 20억원의 고객 돈을 마치 자기 돈인 양 마음대로 뿌리고 다녔다. 결국 양씨는 고객 돈 1,116억원을 횡령한 혐의로 구속기소 됐다.

이외에도 1998년 30여개 기업의 회사채를 헐값에 인수했다 제2 금융권에 팔아 530억원의 부당 이득을 챙긴 세종증권 전회장 김형진씨 등 벤처 키드의 예는 즐비하다.

이들은 모두 과도한 몸짓 불리기를 하다 주가폭락으로 불행한 최후를 맡았다. 하지만 이들 외에도 벤처 바람을 타고 수십, 수백억원의 뭉칫돈을 번 벤처 재벌은 상당하다.

일각에서는 "제2, 제3의 정현준, 진승현이 나올 수 있다"는 소문이 무성하다. 그래서 지금 벤처와 금융업계에서는 "누구누구가 수건 폭탄 돌리기의 다음 희생자가 될 것이다"라는 이야기가 나돌고 있다.

이같은 젊은 벤처 실업가의 도덕적 해이로 인한 피해는 결국 무고한 일반 시민이 고스란히 떠안게 됐다.

이들의 말을 믿고 상투를 잡은 일반 투자자들은 주가폭락으로 빚더미에 쌓이게 됐고, 신용금고에 돈을 맡긴 서민은 자칫 돈을 떼일 상황에 처했다. 또한 이들로 인해 발생한 부실채권과 부실 금융기관에 투여될 공적자금도 결국은 국민의 세금으로 충당하기 때문이다.

송영웅 주간한국부기자 herosong@hk.co.kr

입력시간 2000/12/05 1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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