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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는 일본(36)] 돔부리

"우물 '정'(井)자 한가운데 점을 찍으면 무슨 글자게?" 아이들이 한자를 배우기 시작해 조금 재미를 붙이면 한번쯤 친구에게 내보는 수수께끼다. 친구가 머리를 긁적이며 도저히 모르겠다는 표정이면 "우물에 돌이 빠졌으니 퐁당 '퐁'자지 뭐야"라며 깔깔거린다. 이 퐁당 '퐁'자가 옥편에는 우물 '정'과 같은 글자라고 나와있지만 아이들이 알 리가 없다.

이런 장난이 일본에서는 절대로 통하지 않는다. 길거리의 간판이나 음식점의 메뉴에 퐁당 '퐁'자가 즐비하기 때문이다. 일본식 덮밥인 돔부리를 한자로 그렇게 쓴다. 특별한 뜻이 있어서가 아니라 고유어를 한자로 나타내기 위해 적당히 갖다붙인 결과다.

그렇지만 돔부리도 일본 고유어는 아니다. 국사발을 뜻하는 한자어 '탕발'(湯鉢)의 한국식 독음이 부드럽게 변한 결과다.

사발이 들어올 때 말까지 함께 따라온 것이다. 이런 그릇이 처음 '돔부리바치'(口鉢)라고 불린 것도 재미있다. 우리의 '처가집'이라는 말처럼 외래어에 같은 뜻의 고유어를 덧붙여 만든 겹말이다. 이 돔부리바치의 준말이 돔부리다.

일본에 돔부리라는 말이 등장한 것은 17세기 말이었다. 백토를 구워 만든 한반도의 사발은 임진왜란ㆍ정유재란 이후에 일본에 본격적으로 보급됐으니 거의 100년만에 일본어로 굳어졌다고 볼 수 있다.

한편 사발을 가리키기보다는 주로 이런 그릇에 담아 내는 덮밥인 '돔부리메시'(口飯)나 '돔부리모노'(口物)의 준말로 쓰인 것은 18세기 말에 이르러서였다.

가장 먼저 등장한 것은 우나기(鰻ㆍ장어)를 밥 위에 얹고 양념장을 듬뿍 뿌린 '우나기동'(鰻口)이었다. '우나기돔부리'가 다시 한번 줄어 나온 말이다.

이후 간편하고도 그런대로 맛있는 서민의 외식으로 인기를 끌면서 잇달아 새로운 돔부리가 나타났다. 우나기동에 이어 등장한 가장 흔한 돔부리는 새우나 오징어를 튀긴 뎀푸라(天婦羅)를 밥 위에 얹고 양념장을 끼얹은 '덴동'(天口)이다.

마른 튀김을 간장에 찍어먹기를 즐기는 우리로서는 왜 애써 튀겨서 양념장에 다시 축축하게 적시는지 의아하지만 돔부리의 기본인 우나기동을 흉내낸 것이기 때문이다.

또 돈카쓰(豚カツ)를 다시 조린 후 계란을 풀어 얹어주는 '가쓰동'(カツ口)은 아이들에게 특히 인기가 있다. '포크카틀릿'(Pork Cutlet)의 일본식 표기인 '돈카쓰'가 한국에서 '돈까스'로 정착한 것이 언짢을 수도 있다.

적합한 우리 말을 찾아 쓸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문물과 함께 물처럼 흐르는 언어의 속성상 지나친 논란은 에너지 낭비다.

'오야코동'(親子口)은 참 재미있는 말이다. 오야코란 부자ㆍ부녀ㆍ모자ㆍ모녀 사이를 뜻한다.

닭고기와 양파 등을 버무려 익힌 후 계란을 풀어 얹어주는 덮밥인데 닭과 계란이 함께 들어있다고 해서 나온 이름이다.

가장 유명한 돔부리는 우리의 불고기 비슷하게 쇠고기를 양념해 볶아서 얹어주는 '규동' (牛口)이다. 요시노야(吉野家)라는 규동전문 체인점은 일본 전국에 5,500여개 점포와 해외 4개국에 15점포를 열고 있으며 주식이 도쿄(東京)증시 1부 종목에 상장돼 있다.

일본에서는 가장 값싸고 푸짐한 음식이지만 불고기 덮밥의 발치에도 미치지 못하는 요시노야의 규동이 서울에서도 상당한 인기를 끈다는 소식에 쓴웃음을 짓게 된다. 최근 등장해 규동을 위협하고 있는 것이 '가루비동'(カルビ口)이다.

뼈를 뺀 갈비를 한국식으로 구워 양념장과 함께 얹어 주는 것으로 한국붐을 타고 급속히 인기가 번지고 있다.

한편 생선초밥집은 초밥 위에 참치회를 얹고 양념장을 끼얹은 '뎃카동'(鐵火口)을 개발했고 간이중국집인 라멘야에서는 팔보채 비슷한 중국요리를 밥 위에 얹어주는 '주카동'(中華口)을 팔고 있다.

무엇이든 밥 위에 얹기만 하면 새로운 음식이 만들어지는 돔부리의 속성은 새로운 문물의 수입과 혼용을 즐기는 일본 문화와 잘 맞아 떨어진다.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각국의 음식 문화는 물론 아프리카 음식까지 쏟아져 들어오고 있어 앞으로 새로운 돔부리가 수 없이 나오게 돼 있다.

황영식 도쿄특파원

입력시간 2000/12/05 2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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