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 카페(35)] 생각만 하라, 그러면 이루리라

윌리엄 깁슨의 공상과학소설(Tapping the life within)을 보면 첨단장치를 환자의 몸 속에 이식해서 심한 마비상태에 빠져 있는 두 환자끼리의 대화를 유도한다. 이런 것이 더 이상 공상이 아닌 시대가 열린다.

신경보철술, 뇌-컴퓨터 인터페이스(brain-computer interface, BCI) 기술, 전기생리학, 그리고 미세전자학 등이 이런 일을 가능하게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에모리 대학의 로이 바케이와 필립 케네디 박사는 최근 볼펜 끝 크기만한 장치(오목한 모양의 유리콘, glass cone) 두개를 사람의 뇌 운동피질에 이식해서 뇌와 컴퓨터의 교신을 가능하게 했다.

자기공명기계를 이용하여 가장 활동적인 뇌 운동피질 부위에 이식한 이 유리콘에는 뇌 신경세포의 성장을 자극하는 물질이 포함돼 있다. 신경세포가 유리콘 속으로 성장하고 나면, 환자는 여러 신체부위를 움직이는 생각을 반복해서 각각의 생각이 만드는 뇌파를 모니터한다.

뇌에서 발생한 전기 신호는 유리콘에 연결된 전극을 통해 컴퓨터로 전달되며 컴퓨터는 최종적인 생각을 실행에 옮긴다. 현재 이 실험에 참여한 53세의 전신마비환자는 컴퓨터를 통해서 "얘기 재미있었어, 나중에 봐" "배가 고프다", "목이 마르다" 등의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다고 한다.

연구자들은 궁극적으로 환자들이 편지를 쓰고 전자메일을 보내고 불을 끄고 켜는 일을 컴퓨터를 통해서 할 수 있기를 희망하고 있다.

또한 듀크대학 의료센터의 신경생물학자 미구엘 니콜엘리스 박사는 두 마리 원숭이의 뇌에서 발생되는 전기신호(음식에 손을 내밀 때 발생하는 신호 등)를 전선을 통해서 컴퓨터에 전달하고 이 신호를 다시 로봇의 팔과 다리에 명령하여 실제로 원숭이가 원하는 행동을 로봇이 실행하도록 하는데 성공했다.

사람 머리카락의 절반 두께인 전선 96개를 한 원숭이의 뇌 6곳에 32개를 다른 원숭이의 뇌 2곳에 연결한 실험에서 원숭이의 생각에 따른 로봇 팔의 3차원 동작이 가능했던 것이다.

연구결과는 지난 11월 과학 전문지 네이쳐에 발표됐고, 연구팀은 현재 외부 컴퓨터를 대신할 수 있는 피하 이식용 칩을 연구하고 있다고 한다.

사실 1960년대에 이미 과학자들은 사람이 뇌에서 발생되는 전기신호를 조절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뇌파전위기록장치로 뇌파의 측정이 가능했고, 간단한 명령을 전자 장치에 보내기도 했으나 실험실 수준에 머물러 있었을 뿐이다.

그 후 공군에서 제트기 비행사를 위해 이 기술을 개발하기 시작했고, 최근에는 컴퓨터와의 커뮤니케이션을 통해서 심각한 마비환자를 위한 기술로 발전하고 있다.

초기의 보철기구는 기능적 전기 자극(functional electrical stimulation, FES) 장치로 어깨의 움직임을 통해서 인공 손을 움직일 수 있었지만, '뇌-컴퓨터 인터페이스' 기술이 개발되면서, 뇌파만으로도 인공 손을 움직일 수 있게 된 것이다(1997년, 미국 하이랜드 뷰 재활병원의 팩함 박사팀). 한 환자는 지금 컴퓨터로 그림을 그리는 사업을 하고 있다고 한다.

바케이 박사에 따르면 향후 10년은 있어야 환자가 텔레비전을 켜는 등의 단순한 일이 가능한 보철장치가 실용화 될 것이며, 그리고 다시 몇 10년이 지나야 환자가 자리에서 일어나서 독립적으로 여기저기로 이동할 수 있는 수준에 이를 것이라고 내다보았다.

인공 수족으로 야구공을 던지는 것과 같은 복잡한 움직임은 아직 요원하다는 말이다.

특히, 현재 사용하고 있는 테프론(Teflon)을 입힌 스테인레스강 전극을 대신할 몸 속에서 오래 견디고 안전한 물질이 개발돼야 하며, 환자가 자는 동안이나 특수한 상황에서는 작동하지 않도록 이중안전장치도 만들어야 한다.

휴대할 수 있도록 소형화하는 것도 필수다. "생각만 하라, 그러면 이루리라", 인간의 삶에 복을 더할 때, 첨단기술은 비로소 빛나는 것이 아닐까.

이원근 과학커뮤니케이션 연구소장

입력시간 2000/12/05 2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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