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 칼럼] 클린턴과 골프

이제 퇴임을 불과 두달여 남겨두고 있는 빌 클린턴은 아마도 미국 역사상 가장 열광적으로 골프를 즐긴 대통령으로 기록될 것 같다.

이전에는 백악관 내에 연습그린을 조성하고 골프화를 신은 채 집무실과 그린을 오간 아이젠하워나, 핸디 10으로 가장 낮은 기록을 보유한 케네디, 그리고 프레지던트 컵의 창시자이자 엄청 빠른 라운드 속도를 자랑했던 부시 등이 마니아로 거론되기도 했지만 골프에 대한 열정과 관심, 특히 코스에서 보낸 시간의 측면에서는 그 누구도 클린턴을 앞지를 수 없다.

많은 일화 가운데 그가 플로리다의 그렉 노먼 집을 방문해서 계단에서 발을 헛딛는 바람에 무릎의 인대가 끊어지는 중상을 당한 것은 골프에 대한 무한한 열정을 증명한다 할 수 있다.

클린턴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결코 긍정적이지 못하다. 이혼을 밥 먹듯 하던 어머니, 주정뱅이에 폭력을 휘두르던 계부, 역경을 딛고 정치인으로 성공가도를 달리며 계속되었던 숱한 성추문 등으로 이제는 '피로'(fatigue)라는 단어가 그의 이미지를 대신한다.

그래서 그런지 그가 코스에서 멀리건(Mulligan, 벌타 없이 다시 치는것)을 남발한다는 외신이 전해졌을 때 '그러고도 남을 인간'이라고 생각한 사람이 많았을 것이다.

하지만 모 잡지와의 최근 인터뷰에서 밝힌 바로는 자신이 결코 그런 골퍼가 아니라는 것을 강조한다. 다만 아칸소 시절 그의 친구가 티와 페어웨이 그리고 그린에서 누구나 각각 한번씩 멀리건을 갖기로 제안하여 그렇게 플레이하던 데서 소문이 침소봉대되었다고 항변한다.

만약 친한 친구끼리의 라운드라면 하수를 접어준다는 의미에서 그런 종류의 '자기들만의 룰'(실제로는 실력자에게 훨씬 유리하지만)을 정하고 플레이해도 그리 책잡을 일은 아닌 것 같다.

또 한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그가 재임중 핸디를 낮춘 유일한 대통령이란 사실이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사실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정기적으로 교습을 받지 못한 그가 미국, 아니 세계의 대통령이란 막중한 위치에서 핸디캡을 줄일 수 있었던 비결이 과연 무얼까 하는 점이다. 그리고 그런 결과를 얻기 위해 필드에서 보낸 많은 시간을 어떻게 만들어냈을까 하는 것도 관심사다.

첫번째 의문에 대한 대답은 두 가지로 설명될 수 있을 것 같다.

하나는 그가 매우 배우는 것을 좋아한다는 것이다. "대통령이 되고자 했던 큰 이유중 하나가 그런 위치에 있으면 많은 사람과 접촉을 하고 그들에게서 많은 것을 배울 기회가 있으리라는 왕성한 호기심 때문이었다"는 설명을 하는 것을 보면 니컬러스, 파머, 노먼 등 당대의 프로들과의 라운드를 그는 레슨의 기회로 잘 활용했음을 알 수 있다.

다른 하나는 개인적으로 짧은 시간에 배운 이론을 스윙으로 코디네이션하는 능력 또한 특출함을 짐작할 수 있다(그의 핸디캡은 14정도다).

클린턴은 한달 평균 3회(여름엔 5회) 정도 라운드 기회를 갖는데 백악관에서 가까운 컹그레셔널이나 네이비 코스를 잘 찾는다.

미국의 대통령이다 보니 그를 따르는 카트만 해도 일곱 대. 경호원과 저격수 보좌관과 핵암호가 들어있는 가방을 든 남자까지, 행렬의 웅장함이 짐작할 만 하다. 어떤 때는 라운드 도중 외국의 원수와 통화하기도 하고 외국순방 중에는 거의 골프 스케줄을 잡아놓는다.

영국의 토니 블레어는 골프채를 잡아본 적이 없으나 클린턴의 방문 때 어쩔수 없이 6홀을 돌았고 이때 클린턴은 "내가 교습에도 큰 재능이 있음을 발견했다"고 한다(블레어가 무려 네 개의 파를 잡았다나).

물론 라운드 도중 국사로 인해 코스를 떠나야 할 때도 있었지만 어쨌튼 클린턴은 우리가 우려할 정도로 골프에 많은 시간을 보낸다.

하지만 미국인 대부분이 그런 것을 문제삼지 않는다. 맡은 바 임무를 충실히 수행하면 여가는 보장한다는 뜻일 것이다. 공직자 사정이 시작되면 예약펑크가 쏟아지고 접대의 기본이 골프가 되어버린 우리와는 시각이 너무 다르다.

박호규 골프칼럼니스트

입력시간 2000/12/05 2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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