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와 오늘] 노벨평화상의 멍에

노벨평화상은 상을 받은 개인이나 그 국가에 명예를 안겨주는게 분명하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노벨평화상은 그에게도 멍에요, 그 국가에게도 마찬가지이기도 한다.

자민련과 일부 언론이 김대중 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수상식 참석에 대해 '다시 생각할 것'을 요구했다. 이에 대해 청와대는 "짧고 검소하게 다녀오겠다"고 결론내렸다.

이런 논쟁의 와중에 비교적 친북적 인터넷 사이트 'Korea Web Weekly' 11월10일자에 좀 색다른 기사가 떴다. "평화상 수상자가 잘 팔리고 있는 김정일의 책을 판금하고 출판자를 검거했다"는 것이었다.

주간 신동아도 11월23일자에 '국정원에 체포된 김정일의 통일전략'이란 제목으로 기사를 냈다. 지난 5월20일 북한 원전을 주로 출판하는 살림터(대표 송영현ㆍ41)는 도쿄에서 '비공식 북한 대변인'으로 통하는 재일동포 김명철의 책을 '김정일의 통일전략'이란 제목으로 출판했다.

이 책의 일본어 제목은 '한국붕괴-김정일의 통일전략'이었다. 일본 정보기관에 의하면 북한은 이 책을 800부나 사 주요 간부가 개인적으로 사서 읽게 했다. 또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1996년에 김씨가 쓴 '김정일의 군사사상과 전쟁계획' 등의 논문과 이 책을 읽고 주요 간부에게 독해를 권고했다.

'Korea Web Weekly'에 의하면 이 책은 평양 혁명박물관에 한국에서 출판된 주요저서로 전시되어 있다.

김씨가 도쿄에서 사무국장으로 있는 조미협회는 이 책이 서울에서 베스트셀러 인문사회 분야에서 5~8위를 차지했다고 자랑했다. 이 책은 치바대학과 도쿄대학원에서 국제정치학을 배운 56세의 김씨가 낭만끼 짙은 톤으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통일 대통령이 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그는 김정일이 을지문덕, 강감찬, 이순신, 김일성에 이은 명장이며 미국과 맞서 무력, 외교면에서 승리해 통일을 이룬다고 보고 있다. 그에 의하면 김정일은 '식견'을 넘어 '학견'을 가진 군사 지도자다.

2003년 경수로가 완공되고 미국과 국교가 트이면 한반도를 남북 연방제도 통일되고 그 수장은 김정일이 된다는 것이다. 그는 남과 북 모두에서 지지를 받으며 미국과의 싸움에서 이긴 김일성의 아들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김대중 대통령이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만나 그의 인품과 지도력이 세계에 알려지기 전까지 김씨의 책은 8,000여부 가량 서울에서 팔렸다. 지난 1997년 11월18~25일 부인과 함께 북한을 방문한 바 있는 김씨는 좀 순진하고 낭만적인 모습을 보였다.

그는 겨울비를 맞고도 우산없이 왕릉을 안내하는 안내원, 우비없이 전방을 지키는 병사를 보고 의연함을 느꼈다는 천진성을 보였다. 자칭 군사ㆍ외교 전문가라는 그는 희미한 평양의 밤거리를 에너지가 잘 절약되고 있는 도시라고 표현하는 엉뚱함이 있는 사람이다.

문제는 왜 'Korea Web Weekly'가 국정원이 국가보안법 제7조(이적표현물 제작, 소지, 반포)및 제8조(회합, 통신)등 혐의로 김씨의 책을 압수하고 출판자 송영현씨를 구속한 것을 '평화상 수상자'가 명령한 것으로 표현하고 있는 점에 있다.

'한국붕괴'의 저자 는 송씨의 구속과 그의 책의 압수에 대해 이렇게 코멘트를 했다.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이가 대통령인 한국 정부가 어찌 발간된지 6개월이 지난 책을 압수하는 바보짓을 하는가. 베스트 셀러가 된 책을 압수하는 것은 가혹한 짓이며 그 결과는 반생산적이다. 김대중 평화수상자에게 험집을 내고 있다. 박정희, 김영삼 정권보다 반민주적인 면에서 얼마나 달라졌는가. 내 책의 명성만 높였다."

김씨와 'Korea Web Weekly'는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김대중 정부가 베스트셀러 '통일전략'을 압수했다"고 주장했다.

이제 김 대통령에게는 평화상이 모든 그의 행위에 대해 명예와 함께 멍에를 주게 되었다. 어떤 면에서는 새 천년의 첫 평화수상자인 그를 대통령으로 삼고 있는 한국 정부가 명예와 멍에를 함께 지게 된 것이다.

1964년의 노벨평화상 수상자 마틴 루터 킹 목사는 "참된 평화란 긴장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정의가 존재하는 상태"라고 했다. 1973년 수상자인 당시의 미국 국무부 장관 키신저는 베트남 전쟁의 정전협상으로 평화상을 받았다.

공동수상자인 베트민의 레둑토는 "베트남에 평화가 오지 않았다"며 수상을 거절했다. 키신저는 노르웨이 주재 미국 대사로 하여금 상을 대신받게 했다. 그리고 1975년 사이공이 함락되자 상금을 반납했다.

킹 목사는 정의의 실현을 위해 투쟁하다 암살당했다. 그에게 노벨상은 멍에였다.

키신저에게도 멍에였기에 그 상금을 반납한 것이 아닐까. 한반도에 인권이 정의의 상태에 있지 않으면 그 상과 상금은 반납되어야 한다.

박용배 세종대 겸임교수

입력시간 2000/12/05 2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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