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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 망명자의 설움 풀어낸 현대인의 향수

■  향수(鄕愁)/밀란 쿤데라 지음ㆍ박성창 옮김

"그리스어로 귀환은 '노스토스'(nostos), 괴로움은 '알고스'(algos)라고 한다. 노스토스와 알고스의 합성어인 '노스탈지'(nostalgie), 즉 '향수'(鄕愁)란 돌아가고자 하는, 채워지지 않는 욕구에서 비롯된 괴로움이다.(중략)

어원상 향수는 무지의 상태에서 비롯된 고통이다. 너는 멀리 떨어져 있고 나는 네가 어찌 되었는가를 알지못하는 데서 생겨난 고통, 내 나라는 멀리 떨어져 있고 나는 거기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지 못하는 그런 고통 말이다."(본문 중에서)

체코 출신의 망명 소설가 밀란 쿤데라(71ㆍ프랑스)가 새 밀레니엄을 맞아 소설 한편을 선보였다. '향수'(원제:L'Ignorance).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가는 보헤미아 연인의 랩소디' 형식을 취하고 있는 이 작품은 잃어버린 유년에 대한 그리움과 잊혀진 사랑의 욕망을 간직한 채 떠도는 현대인의 향수를 건조한 필체로 그리고 있다. 이 작품에서 쿤데라가 말하고자 하는 향수는 단순히 감성적ㆍ동화적 의미가 아니다.

러시아의 침공으로 조국을 버리고 망명을 떠나야했던 국적 잃은 망명자의 설움과 두려움, 그리고 억누를 수 없는 어린 시절에 대한 추억의 파편이 혼재해 있는, 무지와 고통이 섞인 향수다. 바로 망명 신세에 있는 저자 자신의 이야기다.

이 작품은 쿤데라를 세계에 알리게 됐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후 20년 뒤의 이야기라 할 수 있다.

'참을 수.'의 주인공인 테레사, 토마스, 사비나가 되살아난 듯 세 명의 주인공(이레나 조세프 밀라다)이 그대로 등장하고, 상황 설정도 1968년 프라하의 봄 이후 프랑스 등으로 망명한 사람의 이십년 간의 흔적을 되짚고 있다.

1989년 체코 프라하. 소련 공산주의의 몰락과 함께 이곳에도 자유화의 물결이 스며들면서 망명자들이 속속 모여든다. 전 남편, 딸아이와 함께 파리로 망명했던 이레나도 조국에 대한 향수를 이기지 못하고 귀향을 결정한다.

이레나는 공항에서 우연히 어린 시절 호감을 가졌던 남자 조세프를 만나게 된다. 같은 망명자 신세였던 이 둘은 귀향자라는 공감대 속에 서로 사랑을 나눈다.

하지만 조세프는 어린 시절 일기장 속의 여인 밀라다를 아직도 잊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공교롭게 밀라다는 이레나의 친구.

이들은 그토록 그리던 조국에 다시 돌아왔건만 그들이 진정으로 찾고자하는 것을 찾지못한다. 그들에게 20년이란 세월은 무지의 벽을 만들었고, 그런 벽에 막혀 그들은 예전의 기억만을 찾아 헤맸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이 작품의 원제가 무지(L'ignorance)인 까닭도 바로 여기에 있다.

이 작품은 올해 초 쿤데라가 살고 있는 프랑스에 앞서 스페인에서 먼저 출간돼 화제가 됐었다. 이번 한국 발간은 세계에서 두번째다. 이 소설은 쿤데라 특유의 탁월한 지성과 해학, 반어와 역사 철학이 들어있다.

사회적 환경과 시대적 배경, 그리고 역사적 사실에 충실하면서도 독자로 하여금 등장인물과 사건이 엮어내는 이야기를 끊임없이 사고하고 음미토록 만든다. 쿤데라는 상상력과 지성을 갖춘 인물을 등장시켜 독자로 하여금 사유와 성찰, 그리고 인간 실존에 대한 끊임없는 의문부호를 던지게 만든다.

송영웅 주간한국부 기자 herosong@hk.co.kr

입력시간 2000/12/12 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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