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비실업자] 대학 문 밖은 '취업 빙하기'

'취업재수생'될까 전전긍긍 스트레스로 1년

"지옥과 천당을 오간 기분입니다. 졸업은 다가오는데 취직은 안되죠, 이러다 '취업재수'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에 스트레스 엄청나게 받았습니다. 애인이 '내년에도 기회가 있다'며 위안해주긴 했지만 어디 내 마음 같겠습니까.

지금 생각하면 정말 암담했습니다."

성균관대 통계학과 4학년 채형준(27ㆍ94학번)군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다행히 막차에 올라탈 수 있었던 덕분에 얼굴에 안도감은 돌았지만 "지난 일은 돌이켜 보기도 싫다"고 말했다.

그를 지옥에서 천당으로 구제해준 것은 18번째 입사지원서였다. 2학기 들어 정확히 20차례 낸 입사지원서 중 마지막 3번째가 그에게 손을 들어주었다.

채군이 입학했을 때 한국의 경제사정은 괜찮았다. 학과 선배들은 "대충해도 졸업할 때 되면 취직되니까 걱정말고 대학생활을 즐기라"는 말을 하곤 했다.

군복무 후 여유를 두고 미래를 설계할 요량으로 2학년을 끝낸 1995년 11월 입대했다. 하지만 제대하고 보니 사정은 확 바뀌어 있었다. 그가 제대한 것은 IMF 관리체제가 막 시작됐던 1998년 1월.

대기업들이 극도의 감량경영에 들어가면서 4학년 선배들이 줄줄이 실업자 대열에 들어서는 것을 보자 그는 바짝 긴장했다.


캠퍼스의 낭만은 배부른 소리

복학시점부터 그에게 대학의 낭만은 배부른 시절의 옛노래가 됐다. 학과행사는 거의 참석하지 않았다. 채군은 "복학 후 3, 4학년 생활은 오로지 취업을 위해 투자했다"고 말했다.

가장 먼저 시작한 것이 자격증 취득을 위한 공인회계사(CPA) 시험준비. 같은 학과생 10명이 시작했지만 그를 포함해 7명이 4학년 들어 중도포기했다. 포기하고 나자 막막했다. 취업을 위한 준비가 전혀 돼있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

채군은 요즘 학교에서 표정관리에 신경을 써야한다. 주변에 취업 못한 학우가 많기 때문에 "붙었다"는 말을 하기가 조심스럽다. 급우 40명 중 대학원과 유학지망자를 제외한 취업 희망자는 20명. 이중 지금까지 취업에 성공한 사람은 10명 정도다.

채군은 "돌이켜 봐도, 앞을 내다봐도 분한 게 많다"고 말했다. "대졸자 가운데 30여만명이 취업을 못하다니 나라가 어떻게 되려고 이 모양입니까. 실업자가 계속 누적되면 나라가 잘못되지나 않을까 걱정입니다. 솔직히 취직돼도 걱정입니다."

영남대 사회학과 4학년 김현미(23ㆍ97학번)양에게 채군의 분노는 배부른 이야기로 들린다. 김양은 지금까지 3차례 입사원서를 냈지만 허사였다. 대기업 지원서는 구경도 어려웠다.

졸업은 다가오고, 취업 못하면 세상이 무너질 것 같은 생각이 들어 무조건 원서를 냈다. 적성이고 뭐고 따질 처지가 아니었다. 대학원 진학을 생각해 본 적도 있지만 취업이 안돼 도피하는 식으로 가고 싶지는 않다고 한다.

입학 때 여학생이 30명이었지만 함께 졸업할 사람은 절반이 안된다. 4학년 2학기 등록 때 상당수가 휴학했다. 2학기 등록시점과 대구의 대표적 건설업체인 우방건설 부도가 겹친 것이 휴학을 부채질한 이유가 됐다.

하청업체까지 줄줄이 무너져 경력자까지 구직시장에 쏟아져 나오면 졸업생 취업은 더욱 어렵다는 계산에서 일찌감치 졸업을 늦춘 것.

김양이 학우들과 나누는 이야기는 취업정보 교환과 낙방 한탄이 대부분이다. 졸업예정자 중 취업은 10%에 불과하고, 이마저도 원하는 곳에 들어간 경우는 아예 없다시피 하다.

김양은 이미 졸업해 회사생활을 하고 있는 애인이 있다. 친구들은 "직장있는 애인이 있어 다행"이라며 부러워한다고 한다.


유학 고시 등으로 피해가기도

성균관대 통계학과 4학년 P(26ㆍ95학번)군은 마음 먹은대로 취업이 안되자 아예 유학으로 방향을 틀었다. 입사를 원하는 정보통신 관련 업체 지원에서 6~7차례 고배를 마신 뒤 내린 결정이다. 4학년 1학기 후반 경기가 좋았을 때 삼성카드에 합격하긴 했지만 일단 영업에 발을 들여놓으면 빠져나오기 어려울 것 같아 포기했다.

P군은 외국에서 석사학위를 받은 후 다시 진로를 결정할 생각이다. 미국이나 호주를 염두에 두고 먼저 유학간 선배들과 이메일을 주고 받으며 정보를 얻고 있다.

졸업 후 약 6개월간 더 준비한 뒤 비행기를 탄다는 것이 지금의 계획. 당초 부모님은 국내에서 취직하기를 원했지만 어쩔 수 없이 아들의 뜻에 따르고 있다. 집안의 경제사정이 빡빡해 걱정이지만 '어떻게 되겠지'하는 생각으로 밀어부치고 있다.

서울 관악구 신림9동 고시촌에서 만난 동아대 경영학과 4학년 P군은 취업보다는 사법고시를 택했다. 기말고사를 대충 끝내고 올라온 그는 이번 겨울 고시촌에 머물며 주로 관련 정보획득에 노력할 생각이다.

"당장의 취업보다는 확실한 미래를 준비한다"는 것이 그의 고시공부 입문 이유다. 그는 주변에서도 전공과 무관하게 고시공부하는 학생이 한 과에 1~2명씩은 반드시 있다고 말했다. 고시가 아닌 세무사, 감정평가사 공부를 하는 학생도 많다.

성균관대 심리학과 4학년 고재일(27ㆍ94학번)군은 대학원에 진학한다. 입사를 원했던 광고대행사, 리서치사에는 3번 응시했지만 모두 떨어졌다. 두번은 면접에서 한번은 서류심사에서 낙방했다.

그에게 대학원이 단지 미취업 도피처는 아니었다. 뜻대로 취업되면 직장을 우선하되 안되면 대학원을 진학한다고 애초부터 생각하고 있었다.

고군의 같은 과 학생은 40명. 이중 대학원 진학자 2명을 제외한 취업자는 4명에 불과하다.

백화점과 세븐일레븐 등 유통업체에 합격했다. 나머지는 자격증 준비를 비롯한 관망파다. 상당수에겐 말이 관망이지 '취업재수생'대열에 들어갈 학생들이다.


경력자위주 채용, 취업난 부채질

고군은 기업체의 새로운 고용형태에 적응하는 것이 앞으로의 과제다. 대부분 기업이 사원을 경력자나 경험자 위주로 뽑기 때문에 졸업생은 매우 불리한 위치에 있다.

대학원 공부를 하면서도 교수들의 프로젝트 등에 열심히 참여해 실전경험을 쌓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하지만 대학원 졸업 후의 상황에 대해서도 불안은 크다. 한국 경제의 회복 여부는 5년을 두고 봐야 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고군은 스스로 한국의 교육제도와 경제변동의 피해를 가장 많이 입은 세대라고 말했다. 고교 입학시험에서 예고도 없이 처음으로 주관식 문제를 풀어야 했고, 대입시험에서는 마지막 학력고사를 본 연령이었다.

재수하는 바람에 수능시험을 친 첫 학번이 되기도 했다. 그는 "군복무하고 복학해서 취직하려니 경제가 또 이 모양"이라며 쓴웃음을 지었다. 고군은 6개월전 애인과 헤어졌다. '남자의 장래가 불확실하다'는 이유로 애인의 어머니가 계속 사귀는 것을 말렸다고 한다.

대학 4학년 졸업반, 군복무를 마친 94학번 남학생과 97학번 여학생은 정말 운 없는 학번인지도 모른다. 그들은 사회에 첫 발을 내딛기도 전에 현실의 거센 소용돌이에 말려들었다.

배연해 주간한국부 기자

입력시간 2000/12/12 18:22


배연해 주간한국부 seapower@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