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비실업자] 대학졸업반은 예비 실업자

4학년 70%가 실업자 대열… 취업경쟁 격화

내년 2월 졸업하는 대학 4학년은 전국 214개 대학에 21만4,000여명. 이중 대학원 진학자 3만4,000여명을 제외한 졸업예정자 18만명은 사상 최악의 취업난에 봉착해있다.

취업정보 포털사이트 '인크루트'(www.incruit.com)에 따르면 이들 중 70%가 졸업과 동시에 취업재수생, 즉 실업자 대열에 끼여들게 된다.

이들의 학번은 군복무자의 경우 94학번, 여학생은 97학번이 주류를 이룬다. 94학번과 97학번은 스스로를 '잃어버린 학번'이라 자조한다.

대졸 신규 취업희망자는 내년 졸업예정자 중 18만명과 기존의 취업 재수ㆍ삼수생 17만9,000명을 합쳐 35만9,000여명.

여기다 대학원 졸업예정자와 졸업생 어학연수 귀국자를 더하면 수는 더 늘어난다. 하지만 이들에게 준비된 정규직 일자리는 8만5,000개에 불과하다. 내년초면 27만4,000명의 대졸 실업자가 생기게 되는 셈이다.

대학 졸업반은 이제 '예비 실업자'와 같은 말이 됐다.


기업구조조정 벤처몰락으로 취업난 심화

대졸자 취업난이 심화한 것은 기업구조조정과 고용감소, 고용구조 변화가 동시에 작용하기 때문이다. 대학 졸업예정자를 포함해 내년초 예상되는 전체 구직자수는 130만명.

기업구조조정으로 퇴출자가 쏟아지면서 대거 늘어났다. 이들을 수용할 올 하반기 새로운 일자리는 30만~40만개. 경제위기론이 고개를 들기 전에 추정된 숫자다.

하지만 경제난으로 기업예산이 재조정되고 채용계획을 미룸에 따라 일자리는 대폭 줄었다.

벤처기업의 위기도 고용감소에 한 몫을 하고 있다. 올 상반기에는 벤처붐을 타고 대졸자들을 상당수 흡수했지만 하반기에는 신규채용 계획을 공고하는 곳을 찾아보기 어렵다.

벤처기업 관계자는 "벤처도 현재 구조조정중이며 새로운 직종과 일자리의 파생을 억지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말했다.

경력자 위주로 채용하는 고용구조 변화도 대졸자를 압박하고 있다. 경력자 채용은 외국계 기업에서 두드러진다. 해당 분야에서 최소한 인턴 경력이라도 갖고 있어야 외국계 기업은 노크가 가능하다. 전문성과 경험을 쌓을 기회가 거의 없는 대학생은 불리할 수 밖에 없다.

이에 따라 상당수 대졸자들은 경력을 쌓는다는 계산에서 임시ㆍ일용직이라도 마다하지 않고 있다. 대기업과 중견 기업이 그룹 공채 위주의 채용방식을 바꿔 계열사별 수시채용으로 바꾼 것도 학생들의 체감 취업지수를 떨어뜨린 요인.

교육부 통계에 따르면 대졸자 취업률은 매년 2월 기준으로 1997년 62%, 1998년 51%, 1999년 51%, 2000년 56%였다. 대학원 진학자와 졸업 후 군입대자, 임시직 취업자를 합한 수치다. 그러나 대학가의 체감 취업지수는 훨씬 낮다.

국내 건설경기 불황으로 인해 토목과 졸업예정자의 취업은 거의 전멸 상태에 있다. 과거 취업설명회 플래카드가 요란했던 캠퍼스는 한산하기만 하다.

연세대 김농주 취업담당관은 "작년 순수 취업률이 56.9%였지만 올해는 상당폭 감소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70%대의 취업률을 보였던 홍익대는 올해 60%대로 떨어질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지방대 취업 더 심각

지방대는 상황이 심각한 수준을 넘었다. 영남대의 올 2월 졸업생 취업률은 대학원 진학과 유학, 군입대를 포함해 53%. 내년 졸업자의 사정은 매우 비관적이다.

영남대 취업정보계 최경조 계장은 "현재 학생들의 취업 체감지수는 IMF 체제하에서와 비슷하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까지만 해도 대기업 지원서가 100~300장씩 왔지만 올 하반기에는 기껏 10장 안팎에 그치고 있다고 밝혔다.

최근 대구은행이 계약직 사원 10명을 채용하기 위해 공고하자 영남대에서만 42명이 지원했다. 다른 학교까지 합치면 지원자는 수백명에 달했다.

대구지역 취업 관계자들은 우방과 청구, 보성을 비롯한 지역 중견기업이 줄줄이 도산하면서 대학생들은 심리적 공황상태에 빠져 있다고 전했다. 학교측이 개최하는 취업박람회에 관심을 보이는 대기업은 찾아보기 어렵고 중소기업의 반응도 신통찮다.

학점 4.2에 토익성적 900점이 넘는 학생이 취업에 실패하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학생들 사이에는 "태어난 시기를 잘못 잡았다"는 한탄까지 나오고 있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이야기다.

지방대의 취업난은 지역경제 몰락과 직결돼 있다. 지역경제의 몰락은 지방대생 취업난을 낳고, 취업난은 지방대의 부실을 초래하는 연쇄고리가 형성되고 있다. 문제는 이같은 악순환을 멈출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것.

경북대 박찬석 총장은 '인재 지역할당제'를 비롯한 종합특별대책을 주장하고 있지만 당국의 의지와 실행수단은 미지수다.

'잃어버린 학번'은 이제 IMF위기와 경제난을 맞은 특정 학번에게만 통용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채용과 관련한 구조적인 변화가 앞으로 대졸자 취업난을 일반적 현상으로 만들 가능성이 높다는 이야기다. 대학과 대학교육에 근본적인 수술을 가해야 한다는 주장은 이래서 설득력을 얻고 있다.

배연해 주간한국부 기자

입력시간 2000/12/12 18:29


배연해 주간한국부 seapower@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