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국적 가정] 필리핀·일본신부가 농촌서 잘산다

'푸른 눈을 가진 신부', '검은 피부를 가진 외국인 며느리'가 늘고 있다.

'배달 민족의 후손', '단일 민족' 등과 같이 혈연공동체 의식이 유난히 강한 우리 나라에서 외국인 신부를 맞는 일은 쉽지 않았다.

그 것은 '외국에 거주하는 해외 동포들에게나 있을 수 있는 일' 또는 '겉 멋에 사로잡힌 일부 외국병 환자들의 치기어린 행동' 정도로 치부됐다.

그래서 외국 여성과의 국제 결혼은 그야말로 가족과 주변의 따가운 시선을 극복할 강심장을 가진 자만이 할 수 있는 일종의 '도박'이었다.

이런 폐쇄적ㆍ고립적인 사고 방식에 큰 변화가 일고 있다. 중국 일본 같은 동양계는 말할 것도 없고 동남아시아, 러시아, 유럽, 중앙아시아 출신의 외국 여성들과 결혼하는 한국 남자들이 급증하고 있다.

세계 각국의 여성이 신부자격으로 국내로 들어오게 된 것은 갈수록 심각해지는 농촌 총각의 결혼 문제 때문이다. 결혼 적령기에 있는 국내 여성들이 고되고 힘든 농촌 생활을 기피하는 바람에 전국의 농촌에는 '홀아비'로 늙어가는 총각들의 한숨 소리가 가득하다.

전라북도 모 지역의 경우 결혼 적령기에 있는 농촌 총각의 3분의 1 이상이 30대 중반을 넘기고도 배우자를 못 구해 애태우고 있다.

특히 늘어나는 농가 부채로 상당수 전업 농가가 경제적으로 파탄 위기에 처하면서 농촌 총각의 결혼은 그야말로 참담한 상황에 이르고 있다. 그러나 현대 여성들은 '배부른 시골보다, 빌어 먹더라도 도시로 가겠다'는 식의 도시 선호 성향이 갈수록 짙어지고 있다.


조선족 여성과 결혼, 실패한 가정 많아

이런 농촌 총각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첫 대안이 1990년대 초 중국 '조선족 아내 데려오기' 행사였다.

1980년대 말부터 중국과의 교류가 활발해지면서 같은 조상에 같은 말, 유사한 사고를 가진 조선족 처녀는 국내 농촌 총각에게는 더할 수 없이 적합한 신부감이었다. 하지만 순수한 의도에서 시작된 이 행사는 중간에 중매 브로커가 개입하면서 변질되기 시작했다.

더구나 조선족 여성들이 '결혼' 보다는 '돈벌이'를 위한 국적 취득 목적으로 위장 결혼하는 사례가 빈발하면서 각가지 사회적 문제점이 발생했다. 중매 브로커를 통해 한국인 남자와 결혼식을 올린 뒤 한국에 들어와서는 몇 개월간 형식적인 신혼 생활을 하다 도주하는 방법이 일반화 됐다.

전북에서 농사를 짓는 영농 후계자인 차모(36)씨는 올해 초 조선족 여성을 아내를 맞았다가 큰 낭패를 당했다. 20대 초반부터 수십차례 맞선을 봤지만 시골에 산다는 이유로 딱지를 맞아 온 차씨는 1999년 초 한 중매 브로커를 통해 조선족 여성과 결혼했다.

차씨는 중국 현지로가 신부 가족들에게 중국 공무원들의 10년치 월급에 해당하는 600만원을 주고, 중매인에게도 성사 대가로 700만원을 사례비로 줬다. 한국에 와서 다시 결혼식을 올린 경비까지 합쳐 거의 3,000만원에 달하는 비용을 썼다.

물론 대부분 영농자금으로 빌린 것이었다. 하지만 차씨의 아내는 신혼 살림을 시작한지 불과 5개월이 안돼 집을 나가 버렸다. 아내를 찾아 다니다 지난해 농사까지 망쳐 차씨의 빚은 더욱 늘었다.

나중에 차씨는 아내가 그 중매 브로커를 통해 서울 한 단란주점에서 접대부로 취직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리고 조선족 아내가 중국에 두 명의 자식과 남편까지 있는 유부녀였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차씨는 이 충격으로 아직도 농사 일을 놓은 채 거의 폐인이 돼 버렸다.

현재 국내에 체류중인 조선족은 결혼을 통한 귀화와 산업 연수 등 합법적 입국자와 밀입국한 불법체류자를 합해 10만명이 넘는다. 이중 절반 정도인 5만명이 불법 체류자이고, 이 중 2만5,000명 가량이 여자다.

조선족 여성들은 주거비가 싼 서울 변두리와 성남 안산 부천 같은 수도권에서 집단 거주하며 파출부, 식당주방, 간병 같은 일이나 다방과 술집 접대부로 일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서울 중구 R룸살롱에서 일하는 황모(29)씨는 지난해 한국에 온 중국 옌벤(延邊) 출신의 조선족 여성이다. 황씨는 한국 농촌 노총각과 결혼한 뒤 신혼 3개월만에 도망 나와 경기도 시흥의 한 티켓다방에서 일을 했다.

황씨는 깔끔한 용모 덕에 한 보도방 업주를 통해 서울에 있는 이 룸살롱을 소개 받았다. 황씨는 '오직 돈을 벌겠다'는 생각에 하루에도 몇번씩 2차를 가는 강행군을 해 1년여만에 1,300만원을 중국으로 송금해 아버지의 수술비를 대기도 했다.


종교단체에서 후원, 국제결혼 늘어

조선족에 대한 인식이 나빠지자 농촌에서는 조선족 여성과의 결혼은 금기사항이 됐다.

1995년부터 종교계와 함께 농촌 노총각 국제결혼을 중개해 온 대한적십자사봉사회 고창지구협의회의 진기동 회장은 "한국에 온 조선족 여성의 90% 이상이 위장 또는 사기 결혼이어서 조선족 여성은 아예 중매 대상에서 제외시키고 있다"며 "오히려 조선족 보다 일본 필리핀 인도 같은 외국인 여성들이 더욱 안정적으로 결혼 생활을 하고 있다.

최근에는 중국 한족과의 결혼 중매도 시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조선족 여성이 아닌 다른 나라 여성과 살림을 차린 가정이 최근 크게 늘어나고 있다. 법무부에 따르면 한국인과 혼인신고를 한 뒤 동거 비자(F1)로 체류중인 필리핀 여성은 2,901명(9월말 기준)으로 지난해말(1,239명)에 비해 2.3배, 1998년(794명) 보다는 4배 가량 늘었다.

올 상반기에는 필리핀 여성 1,565명이 동거 비자를 받아 조선족(1,491명)을 제쳤다.

다국적 외국 여성들의 중매는 주로 모종교계에서 후원하는 참가정실천운동본부(회장 황선조)와 대한적십자사봉사회를 통해 이뤄지고 있다.

이들이 추진하는 농촌 총각 국제 결혼 중매 사업을 통해 성사된 커플은 조선족 여성들과는 달리 대부분 원만하게 가정생활을 꾸려 나가고 있다. 현재 이런 경로를 통해 성사된 가정은 9,860가정이나 된다.

일본 여성이 6,356명으로 가장 많고 그 뒤로 필리핀 여성이 2,726명이나 된다.

이밖에 태국(336명) 카자흐스탄(63명) 우크라이나(50명) 키르기스스탄(60명) 러시아(46명) 몽골(70명) 말레이시아(17명) 대만(15명) 인도(13명) 인도네시아(12명) 싱가포르(11명) 홍콩(28명) 유럽(57명)에서 온 여성들이 정착해 살고 있다.


문화적 이질감 이겨내고 효부상까지 받아

1995년부터 이 사업을 이끌어온 황선조 참가정실천운동본부회장은 "조선족 여성들은 단지 경제적 궁핍을 탈출하기 위한 도구로 농촌 총각들을 이용해온 면이 많았다"면서 "우리 단체에서는 외국 여성들에게 사전에 결혼의 신성함과 가정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정신 교육과 문화적 차이를 극복할 수 있는 교육사업을 병행하고 있어 성사된 가정의 대부분이 행복하고 살고 있다"고 말했다.

외국인 신부 가정의 가장 큰 고민은 2세 문제다. 배타적 민족주의 성향이 남아 있는 국내에서 혹시 아이들이 혼혈이라는 이유로 차별 대우를 받지 않을까 하는 우려다.

필리핀 아내와의 사이에 딸(4)과 아들(2)을 두고 있는 신모(43)씨는 "국제 결혼을 하는데 가장 망설였던 부분이 바로 2세 문제였다. 행여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로 따돌림 당하고 사회에서 소외되지 않을까 걱정했다. 아직까지는 그런 상황은 없지만 솔직히 걱정은 된다"고 털어놓았다.

외국인 신부 중 일부는 효부상까지 받는 등 오히려 한국 여성들에게 귀감이 될 정도로 생활하고 있다. 경제적 쾌락과 안락만을 중시하는 빗나간 사회 풍조가 자연스럽게 세계화(?)를 이끌고 있는 셈이다.

송영웅 주간한국부 기자

입력시간 2000/12/12 19:52


송영웅 주간한국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