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 칼럼] 최경주의 생환

'생환'이라는 용어는 말 그대로 '살아 돌아왔음'을 뜻한다. 작전수행중 적의 공격이나 불의의 사고로 비상탈출했던 조종사가 혼자의 힘으로 귀환하는 장면을 연상한다면 적당한 비유가 아닐까. 어떻든 바로 직전까지 목숨이 풍전등화의 상황에 있었다는 얘기다.

미 PGA투어에 시드를 유지하는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다.

내셔널 타이틀인 US오픈이나 PGA주관 대회인 PGA챔피언십의 우승자라면 최고의 대우를 받아 향후 10년간 투어카드 걱정을 할 필요가 없는 것이고 그 이외의 메이저대회인 마스터스나 브리티시오픈 그리고 NEC월드시리즈 우승자도 5년의 시드권을 보장받는다.

투어에서 15년 이상을 활약하며 20승 이상을 올린 종신회원, 대회마다 달라지지만 스폰서측의 특별초청을 받은 선수, 커미셔너의 추천을 받은 해외선수 2명도 시드를 받는다. 이외에도 많은 경우(총 34개)가 있지만 이도저도 안되는 기존의 투어멤버는 결국 상금순위 125위 이내에 들어야 한다.

최경주는 미국 투어에서 루키의 해였던 2000년 시즌에 상금랭킹 134위에 그쳐 결국 작년에 경험했던 Q-스쿨을 통과해야하는 절박한 상황이 되었다.

흔히 말하길 Q-스쿨을 통과하는 것은 정규 투어에서 우승을 거두는 것보다 어렵다고 한다. 이 말은 현지 언론에서도 즐겨 사용되는 것을 보면 결코 과장은 아닌 것 같다.

금년 상황도 최종 라운드에 진출한 169명 가운데 정규 PGA투어에서 1승 이상을 올린 선수가 무려 17명이나 되었다니 숨막히는 서바이벌 게임의 긴장감이 어떠했을까는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11월 27일부터 12월 2일까지 캘리포니아 라퀸타의 PGA 웨스트 스타디움 코스에서 6일간 무려 108홀의 대장정으로 35명을 추려낸 이 과정은 선수로서는 두번 다시 가고 싶지 않은 곳이었을 것이다.

우리 선수론 청각 장애인 골퍼로 잘 알려진 이승만도 있었지만 역시 관심은 최경주였고 그가 80위권, 100위권, 45위, 54위를 오르내릴 때 국내 팬들도 희비를 같이 했다.

작년과 금년 2년 연속 Q-스쿨을 통과했다는 사실은 어쩌면 국내 팬에게 현실을 호도하는 효과도 있을는지 모른다. 하지만 참가했던 선수들과 그들이 PGA웹사이트(www.pgatour.com)에 공개한 일기를 보면 그 절박했던 순간을 조금은 짐작할 수 있다.

이번에 최경주와 함께 투어카드를 따낸 유명선수는 4위를 차지한 토미 톨스, 14위의 제프 오길비, 18위의 프랭크 노빌로, 28위의 키스 클리어워터 그리고 공동 31위로 최경주와 함께 꼴찌를 차지한 퍼울릭 요한슨 등이 있다.

톨스는 1996년 플레이어스 챔피언십 준우승자로서 한때 라이더컵 멤버로 거론되던 선수고 오길비는 약관 24세의, 호주의 확실한 차세대 주자이며 얼마전 태국에서 열려 타이거 우즈가 우승한 조니워커 클래식의 준우승자다.

노빌로는 유럽 투어에서 많은 우승을 거둔 뉴질랜드의 대표이며 요한슨 역시 유럽 투어 5승을 갖고있는 스웨덴의 중견이다.

떨어진 선수 중에도 우리 귀에 익은 선수가 많다. 로버트 가메즈나 도니 해몬드 등 유명선수도 내년에는 2부 투어인 바이닷컴 투어를 전전해야하는 신세가 되었다.

1999년 US아마추어선수권 준우승자인 김성윤이 결국 국내대학에 진학하고 프로입문을 모색한다는 보도가 있었다. 1999년 이후 미국에 주로 머물면서 Q-스쿨에 도전했다 실패한 그가 무엇을 느꼈고 왜 방향을 수정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는 내년 하반기에 다시 도전할 예정이란다. 사실 최경주가 이번에 Q-스쿨을 통과하리라 기대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경쟁이 심한 이유도 있었지만 지난 1년의 투어에서 결코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는 해냈고 이제 다시 용기백배할 근거를 ?았다. 또 2년 연속의 턱걸이 통과도 왠지 길조인 것 같다. 항상 초심을 기억하라는 의미인 것 같다.

박호규 골프칼럼니스트

입력시간 2000/12/12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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