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 스타열전(40)] 삼경정보통신 김혜정 사장(上)

여간내기가 아니다. 두 아이의 홀어머니로, 유치원의 원장으로, 벤처기업을 이끄는 최고경영자(CEO)로 하루 24시간으로도 모자라지만 얼굴에는 여유가 넘친다.

큰 키에 서글서글한 눈매, 시원시원한 말투도 보통여자로 보기는 어렵다. 우리 나라 정보통신(IT)분야에서 몇 안되는 여성벤처인 김혜정 삼경정보통신 사장. 원래 유아교육전공이라 남편이 살아 있을 때까지만 해도 IT의 I자도 몰랐다.

지금도 잘 나가는 IT업계의 여느 CEO처럼 관련 기술을 뚜르르 꿰고 있지는 못한다. 스스로는 "기술을 전혀 모른다"고 말할 정도. 그래도 회사는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고 그녀는 벤처스타로 자리매김했다. 그 비결은 뭘까.

"직원 모두를 한가족처럼 대하고, 일하는데 불편함이 없도록 새벽 2시까지 챙겨주지요. 밤늦게 미팅이 끝나고 돌아올 때 떡복이, 오뎅, 순대 같은 것을 사 갖고 들어오는데 한창 먹을 나이의 젊은이들이 연구하다가, 작업하다가 우르르 몰려옵니다. 반갑고 고맙지요.

그렇게 형성된 팀워크가 삼경(정보통신)의 가장 큰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무인우편창구'로 틈새시장 공략 성공

사람의 마음을 잡는데는 이력이 난 것 같은 김 사장은 스스로 사업수완이 좋다고 했다.

삼경정보통신을 맡기 전부터 서울시내 여러 곳에서 유치원을 인수, 운영했는데 가는 곳마다 인기유치원으로 키워냈다.

한때는 한 유치원에서 원생만 400여명에 이르기도 했다. 20여명의 교사를 데리고 있었지만 유치원 행사는 그녀가 직접 맡았다.

"유치원 행사때 많게는 1,000명까지 참석합니다. 마이크를 잡고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지 못하면 그 다음해엔 원생들이 확 줄지요. 울고 웃게 만들어야 합니다. 다른 것은 못해도 그런 일에는 자신이 있어요.

여자의 몸이지만 언제, 어느 자리에 가든 분위기를 끌어갈 수는 있어요." 그래서 그녀는 어릴 적부터 "몸만 다르면 남자"라는 소리를 듣고 자랐다.

유치원 경영에서 정공법을 택했다면 IT분야에서 김 사장의 전략은 틈새시장 공략이다.

대기업들이 관심을 갖지 않는 분야에서 기술력에 승부를 거는 것. 이제는 삼경정보통신의 주력제품이 된 '무인우편창구'가 바로 그런 케이스다.

1998년부터 우체국에 설치되기 시작한 무인우편창구는 커피자판기처럼 생겼는데, 창구 직원이 없어도 빠른 우편, 소포 등 모든 우편업무를 24시간 처리할 수 있는 자동시스템이다.

은행 창구에 가지 않고도 현금자동지급기에서 돈을 찾듯이 앞으로 이 시스템을 이용하면 백화점, 지하철역, 기차역 등에서 편한 시간에 각종 우편물을 발송할 수 있다.

이 시스템은 소포나 우편 등을 영상으로 인식할 수 있는 감식기술과 자동판매 기능, 보안시스템, 터치 스크린 기술, 컴퓨터 제조 등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기술이 종합적으로 구현된 것이 특징이다.

이미 조달청 우수제품으로 등록돼 주요 우체국에 56대가 설치됐으며 내년에 약 50-100대가 추가로 납품될 예정이다.


남편 잃고 사업시작, IMF도 거뜬히 이겨내

그녀가 IT 벤처분야에 뛰어들게 된 것은 1995년 남편을 교통사고로 잃으면서부터. 사업시작 1년여만에 비명에 간 남편을 대신해 흔들리는 직원을 다독거린 게 출발이었다.

그때만해도 삼경정보통신은 실험분석 자동화 분야에 매달려 있었다. 석유화학제품의 샘플 분석, 공장폐수 분석, 미생물 분리 배양 등 각종 자동화 시스템을 개발, 기업에 제공하는 일이다.

"현재 실험분석 자동화 분야의 매출은 그리 크지 않는데 남편이 시작했던 것이고, 그 기술이 삼경(정보통신)의 기술력을 인정받는 계기가 된 것이기 때문에 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유망중소기업으로 지정을 받게된 것도 그 기술이 있었기 때문이지요.

남편이 후배들과 함께 개발한 실험분석 소프트웨어는 지금도 업계에서 인정을 받고 있습니다. 이제 그 기술을 응용하는 새 사업을 추진중입니다."

어려운 가정형편으로 실업계 고등학교를 나와 일찌감치 생활전선에 나섰던 그녀는 숱한 역경을 거쳐 나왔다고 말했다. 교보증권에서 직장생활을 할 시절, 출퇴근시 매일 같은 옷만 입고 다니는 자신이 부끄러워 엘리베이트를 타지 않고 계단을 걸어다니면서 남의 눈을 피했다고 한다.

그 자존심이 오늘날의 삼경정보통신을 일궈내는데, 또 남편을 잃고도 꿋꿋하게 버티고, IMF 위기에는 회사 문을 닫기는커녕 오히려 더 키우는데 밑거름이 됐다.

물론 그녀도 회사 문을 닫아버리고 싶을 때가 없지 않았다. 중견업체들이 IMF로 줄줄이 쓰러지고, 대기업의 투자가 위축되면서 삼경정보통신 역시 난관에 처했다.

부사장까지 결재가 난 모 대기업의 50억원짜리 실험자동 분석장치 프로젝트가 갑작스럽게 없던 일이 됐던 98년 중반엔 더 버틸 힘이 없어 셔터문을 내릴까 고민했다.

직원도 단출하고, 삼경정보통신 앞으로는 큰 빚도 없고, 본업인 유치원만 잘 운영하면 3가족이 먹고 사는 데는 걱정이 없어 조직을 줄이느니 문을 닫고자 했다.

그러나 그렇게 간판을 내리기는 그녀의 자존심이 용납하지 않았다. "가족처럼 회사를 키워왔던 직원들을 길거리로 내몰 수는 없었어요. 길은 함께 찾아보면 있을 것이라고 믿었지요. 무엇보다도 중간에 그만두는 게 제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어요."


'정부 상대 비즈니스만이 살아남는다'

민간 설비투자가 완전히 얼어붙었던 IMF 시절엔 정부를 상대로 한 비즈니스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고 그녀는 확신했다.

그래서 몇해전에 계획을 세웠다가 "아직 때가 아니다"면서 접어두었던 무인우편창구 시스템을 다시 꺼내들었다.

"삼경(정보통신)도 오래 전부터 정보통신부의 일을 해왔어요. 처음엔 대기업 컨소시엄에 들어가 500만원짜리 프로젝트를 맡았던 걸로 기억이 나는데, 큰 규모는 아니지만 계속 조금씩 참여를 하다 보니까 무인우편창구 아이디어가 나왔어요.

그때가 96년이었는데 개발계획을 갖고 정통부 담당 직원에게 설명했더니 웃더라구요. '5년후에야 가능할 것'이라면서. 오기가 나서 개발 계획은 물론 마케팅 조사까지 해두었었죠."

김 사장은 전 직원을 모아놓고 '멀티미디어를 이용한 지능형 무인창구 시스템'에 한번 승부를 걸어보자고 호소했다. 어려울 때일수록 서로 믿고, 반드시 무인창구 시스템 개발에 성공해 희망찬 내일을 열자고 다짐했다.

연구팀이 가동됐다. 카이스트 출신인 김동수 연구소장을 중심으로 한 20대 젊은 연구원들은 낮에는 회사 인근의 중량우체국에서 우체국 업무를 파악하고 밤에는 백과사전과 같이 두꺼운 우편업무 매뉴얼을 놓고 무인창구 운영 프로그램의 틀을 잡아갔다.

다행하게도 정부의 중소기업 지원자금인 정보화 촉진기금(4억6,000만원)을 받는 바람에 연구팀의 사기는 더욱 올랐다. <계속>

이진희 주간한국부 차장

입력시간 2000/12/12 2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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