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 카페(36)] 계란, 과일이 제약공장으로

유전자변형 과일과 채소, 동물의 알에서 항암 단백질과 백신을 생산한다. 막대한 투자액에 비해서 아주 소량의 약제만을 생산하는 제약업에 부는 새바람이다. 질병으로 죽어가는 제3세계 어린이들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

세계 보건기구에 따르면 세계적으로 약 20%의 영아가 악성 질병에 노출돼 있으며 매년 1,500만명의 제3세계 어린이들이 예방이 가능한 전염병으로 죽어가고 있다.

B형 간염, 콜레라, 악성 설사 등에 필요한 백신 공급이 안되기 때문이다.

현재 소아마비 백신을 제외하고는 세계의 모든 어린이에게 접종이 가능한 백신은 없다. 값이 너무 비싸고 냉동보관이 필요한 백신의 유통이 문제이며 부족한 간호사도 문제다.

주사기 오용을 통한 전염이 자연 감염보다 많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구호단체의 자금지원에도 불구하고 단 몇푼의 돈이 없어서 접종을 포기하는 어린이가 수백만명이다. 동물과 식물을 이용한 백신의 대량 생산 프로젝트는, 이러한 제3세계에 값싸고 대량으로 약제를 공급하기 위한 목적에서 출발했다.

유전공학을 통해서 식물과 동물에서 인간을 위한 제약을 만들어 내는 제약농(pharming) 프로젝트는 1982년 최초의 유전자변형 '슈퍼 쥐'가 만들어진 것이 최초다.

1987년에는 혈액응고를 치료하는 tPA라는 약을 생산하는 쥐를 개발했고, 그 이후 자궁암을 예방하는 담배식물체와, B형 간염과 디프테리아를 치료제가 함유된 바나나, 그리고 간염 예방 유전자를 주입한 닭의 개발이 이르고, 소, 양, 염소, 토끼를 이용해 HIV(에이즈바이러스)와 류머티스 관절염, 크론씨병, 그리고 골다공증 치료제가 포함된 우유의 생산까지 확대되고 있다.

요즘 부는 바람은 '디자이너 치킨(또는 계란)' 프로젝트다. 닭은 1년에 250여 개의 알을 낳기 때문에 더 빠르고 값싸게 약을 생산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미국의 3개 회사와 영국의 1개 회사가 추진하고 있으며 그중 미국의 애비제닉(AviGenic)사는 항암 단백질인 인터페론을 생산하는 암탉을 이미 만들었다고 주장하고 있으며 진웍스(GeneWorks)사는 유전자 변형된 암탉 50-60마리를 생산했고, 이중 어떤 것은 계란에 인간 성장인자를 만들 수 있는 유전자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더구나 복제양 돌리로 세상을 놀라게 했던 영국 스코틀랜드의 로잘린 연구소도 이번에는 디자이너 치킨을 만들어 달걀 흰자위에서 암을 비롯한 질병을 치료할 미래의 신약을 개발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특히 로잘린 연구소의 핵치환기술(복제양 개발에 이용된 기술)과 미국의 생명공학 회사인 바이라젠(Viragen Inc.)의 항암 단백질 개발 기술을 합친다는 전략이어서 주목받고 있다.

바이라젠은 유방암과 난소암, 폐암 등의 백신과, 피부암 치료제를 개발하고 있으며 핵심 제품인 C형 간염 치료제는 이미 유럽에서 임상실험 중이다.

식물의 경우는 미국의 찰스 안츤(Charles Arntzen)박사가 추진하는 '디자이너 바나나' 프로젝트다. 아프리카의 제3세계에 얼마든지 재배가 가능하고 날로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B형 간염 백신과 HIV백신을 바나나에서 생산하는 것이 목표다. 쥐와 사람의 임상실험에서 면역 반응을 보이긴 했다고 한다. 심각한 부작용은 없었으나 아직 보완해야 할 과제가 많다.

물론 디자이너 치킨(계란)이 약이 아닌 식용으로 식탁에 오를 수 있다는 염려와 동물 학대에 대한 문제가 제기될 수도 있겠지만 잘만 활용된다면 동물이나 식물을 이용한 약품의 대량생산과 값싼 유통은 적어도 제3세계 어린이에게 적지 않은 희망을 안겨줄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원근 과학커뮤니케이션연구소장

입력시간 2000/12/12 2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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