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 이야기(2)] 토종개의 뿌리

인류 역사상 사람과 개가 동거하기 시작한 것은 1만2,000년에서 1만4,000년 전으로 많은 학자들이 추정한다. 그렇다면 한반도에서 개는 언제부터 기르기 시작했을까.

한반도의 구석기 문화는 약 60만년 전부터, 신석기 문화는 약 8,000년 전부터 시작된 것으로 추정하는데 본격적으로 가축화된 상태라고는 할 수 없지만 구석기 시대 말기부터 우리 선조의 주위에 개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구석기 시대의 유적인 동래패총(東萊貝塚)에서 개의 뼈가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본래 패총은 먹고난 조개껍질을 버린 무더기이므로 여기에서 개의 뼈가 발굴된 것은 개의 가축화의 증거라기보다는 잡아먹고 버린 뼈일 것으로 추측된다.

이후 신석기 시대 무덤인 김해패총(金海貝塚)에서도 개의 두개골이 발견되었다.

구석기 시대에서 신석기시대에 걸쳐 형성되어 고대 우리 민족문화의 한 바탕이 된 '동방 문화권'은 한반도에서 만주, 산동 반도 일대에까지 걸쳐있었다. 이는 곧 우리 민족의 활동무대가 매우 광범위했음을 뜻한다.

따라서 이 지역의 개, 또한 고대의 한반도 개들과 혈통 교류가 있었을 가능성이 있지만 이 시기는 개가 주로 식용으로 쓰이던 시절이라 그리 활발하지는 않았으리라 짐작된다.

이 개들이 한반도 개의 혈통 형성에 어느 정도의 역할을 했을지에 대한 추정을 할 수 있는 근거가 아직까지는 없다.

우리 민족의 주류는 청동기 시대에 형성되었다는 것이 정설이다. 청동기 문화는 기원전 10세기경부터 한반도에 유입되는데 그 주체는 예맥족이었다.

이들이 한반도에 들어와 먼저 정착해있던 구석기 시대인과 신석기 시대인을 정복, 통합하면서 한민족의 주류로서 뿌리내렸다. 본래 우리나라의 청동기 문화는 바이칼호 일대에서 한반도 북방으로 들어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예로부터 바이칼호 일대는 북방견 계통의 개들이 가장 번성하고 있는 지역이다. 북방견 계통이란 현존하는 견종 중에 늑대와 가장 비슷한 형태를 가진 종류다. 이 계통은 상대적으로 작고 삼각형의 형태로 찢어진 듯한 눈과 역시 삼각형으로 서있는 귀를 생김새의 특징으로 가지고 있다.

그리고 북방견 계통의 조상이 북방 늑대라는 영국 동물학자들의 주장이 학계에서 유력한 설로 인정되고 있는 실정을 감안하면 바로 이 계통의 개들이 가장 오랜 세월 동안 야생의 형태를 그나마 유지해온 견종일 것이다.

본래 개는 사람을 따라 이주하므로 이 개들도 청동기 시대인을 따라 함께 한반도로 이주했을 것이며 기존의 한반도 개들과 혼종이 되었을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런 추정이 가능한 것은 청동기 문화인의 후예인 우리 민족의 고대 국가인 부여에 개 '구'(狗) 자를 쓰는 '구가'(狗加)라는 관직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관직의 명칭은 상징적 의미이겠지만 당시 소, 말 등 가축의 명칭과 나란히 사용됨으로써 이때 이미 개가 가축으로 정착되고 있었다는 것을 반증한다.

그러면 왜 청동기 시대에 들어온 북방견이 한반도 개의 주류가 되었을까 하는 의문이 생길 수도 있다. 그 이유는 개를 가장 중요한 가축으로 여기는, 수렵과 목축의 문화를 가졌던 청동기 시대인과 정착민이었던 석기 시대인의 개에 대한 의식의 차이다.

농경문화를 위주로 하면서 한 지역에 오랫 동안 정착해 사는 사람들은 개를 그리 중요한 가축으로 여기지 않는다. 개가 실생활에 큰 효용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목축이나 수렵생활을 하는 사람에게 개는 생명과 재산을 지켜주고 먹을 것을 얻는 데 결정적인 도움을 주는 가장 중요한 가축이다.

이렇게 청동기 시대인의 개가 토착견을 정복하는 것은 당연지사였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청동기 시대인을 따라온 북방견 계통은 생태적으로도 남쪽에 살면서 석기 시대인의 먹거리 역할이나 하던 개보다 우수했겠지만 그 수도 월등하게 많았을 것이다.

그래서 현재 북방견 계통의 특징을 그대로 지닌 진돗개나 풍산개처럼 생긴 우리 개의 역사가 이 시기부터 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이 개의 주분포지는 북방계 청동기 문화의 꽃을 먼저 피웠던 고구려의 영역과, 고구려와 역사의 맥을 함께 하는 백제의 영역이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윤희본 한국견협회 회장

입력시간 2000/12/12 2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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