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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현의 영화세상] 순애보, 삶의 유사성과 인연의 길

우인(이정재)는 서울의 한 동사무소 말단직원이다. 그에게는 뚜렷한 목표도, 기쁨도 없다. 새끼 손가락은 감각이 없어 피를 흘려도 아픈 줄 모른다. 일이라고 해야 자질구레한 보고서에 쓰레기 분리수거를 확인하거나 세금통지서를 나눠주러 골목을 다니는 것이 전부다.

아무도 그에게 관심을 두지 않는다. 그 역시 관심둘 사람이 없다. 일과를 마치고 텅빈 집으로 돌아오면 그는 혼자 맥주를 마시며 인터넷을 뒤져보다 잔다. 그의 부모는 그만 남겨놓고 지방으로 갔다.

도쿄에 사는 아야(다치바나 미사토)는 대입재수생이다. 학원을 다니지만 수업시간에 그는 자살할 생각만 한다. 비행기를 타고 날짜 변경선을 지날 때 그는 호흡을 멈추고 죽을 생각이다.

어제도 오늘도 아닌 곳, 시간이 정지된 곳에서 그는 사람들이 언제 죽었는지 헛갈리게 죽고 싶어한다. 탈출(죽음)을 꿈꾸며 그는 구두를 모은다.

그 역시 혼자다. 일거수일투족을 챙기는 어머니와 우유부단한 아버지, 인터넷에 빠진 남동생.

아침 식탁에서 그들은 한마디 말이 없다. 집앞 4거리에서 가족들은 동서남북으로 흩어진다. 아야는 일부러 오른쪽 길을 선택한다. 가족 누구와도 같이 가기 싫어서였다. 그는 자전거를 달려 텅빈 집의 담을 넘어 들어가 혼자 누워본다.

어머니가 팔려고 안달인, 게이샤(기생)였던 할머니가 살던 집이다. 금방이라도 "아야"하며 부서질 것 같은 여자.

우인은 동사무소가 개설한 제빵 강좌 보조원으로 아르바이트하는 미아(김민희)에 반한다. 그러나 미아의 반응은 냉담하다. '길 잃은 아이' 처럼 거리를 떠돌며 "빨리 늙은 것이 꿈"이라고 말하는 여자. 그들의 하루는 그냥 먹고 마시고 싸고 자는 것일 뿐이다.

그들에게 시간이란 희망과 미래가 아니다. 그런 우인이 어느날 인터넷에서 한 일본 소녀를 발견한다. 구두 신은 아사코(朝子). 날짜변경선으로 가는 비행기를 타기 위해 인터넷 모델로 나선 바로 아야다.

2000년 서울과 도쿄에 사는 젊은이의 삶은 얼마나 다를까. 영화 '순애보'(감독 이재용)는 "거의 다르지 않다"고 말한다. 어쩌면 이 영화가 한ㆍ일 합작으로 만들어질 수 있었던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순애보'는 한국의 시네마 서비스와 일본 쇼지쿠 영화사사 6:4로 투자했고, 일본과 한국에서 반씩 찍었다. 배우도 반반이다.

우인과 아야의 모습은 대칭이다. 환상과 소통으로, 아니면 죽음으로 일상의 탈출을 꿈꾼다는 점에서 같다. 그래서 그들은 전혀 다른 공간에 있는 두 개의 이야기면서도 하나의 이야기가 된다. 유사성은 소통의 가능성을 크게 한다. 소통에는 길이 있어야 한다.

'순애보'는 그 길을 인터넷으로 열었다. 인터넷은 현실의 길이 아니다. 유사 현실이거나 환상이다. 그 유사현실이 더욱 아름답고 또렷하고 절실하면 할수록 탈출은 절실해진다.

아사코를 만나려는 우인의 간절함은 자신이 아사코의 사이트(방)에 들어가 앉아있는 착각으로 발전한다. 이재용 감독은 "'순애보'는 인연에 대한 이야기"라고 했다. 인간은 모두 인연으로 엮어져 있다고 했다.

그것이 운명적 만남이 되기도 하고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엉뚱한 곳을 쳐다보다가 스쳐가기도 한다고 했다. 인연을 모르거나 놓친 현대인은 고독한다. 그들이 새로운 길을 만든다. 어디 땅 위의 길만 길이랴.

이대현 문화부 차장 leedh@hk.co.kr

입력시간 2000/12/12 2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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