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풍향계] 국정쇄신 밑그림 그리기 분주

여권 진용의 재정비 수순이 급물살을 타고 있다. 거취가 주목돼 왔던 민주당 권노갑 최고위원이 12월17일 전격 사퇴를 선언하고 이어 서영훈 대표도 사의를 표명함으로써 당직개편 일정은 예정보다 다소 앞당겨질 가능성이 높아졌다.

김대중 대통령은 18일 저녁 전직 대통령들과의 송년 만찬을 갖고 국정쇄신 방향에 대한 의견을 청취했다. 김 대통령은 곧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와의 영수회담을 통해 야당의 의견을 수렴할 예정이다.

시기에 대해 양측간에 다소 이견이 있으나 예산안 처리가 끝난 뒤 사전 조율을 거쳐 곧바로 회담이 이뤄질 개연성이 높다. DJP회동도 관심을 모으고 있다. 원내 다수의석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단기적으로 자민련의 협력이 불가피하고 이를 위해 DJP공조복원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 여권의 입장.

그러나 한나라당이 DJP공조복원 움직임을 강하게 비난하고 있어 김 대통령으로서는 곤란한 처지다. 김 대통령은 국정쇄신책 구상과 함께 한나라당 및 자민련과의 원만한 관계 재설정을 놓고 머리를 싸매야 할 형편이다.


대선전략 문건 파문, '추가문건' 여부로 여야 공방

한나라당 기조위원회의 한 국장이 작성한 대선전략 문건 파문의 여진도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최근 들어 갖은 악재로 수세를 면치 못해온 민주당이 모처럼 대야 공세의 호재를 만났으니 이를 쉽게 놓아줄 리 만무하다. 민주당은 문건 내용 중 '우호 언론인 그룹 조직 방안과 적대적 집필진의 비리 및 문제점을 자료로 축적, 활용하는 방안'이라는 부분을 집중 공략하고 있다.

민주당 박병석 대변인은 "언론장악을 위한 추악한 공작에 경악을 금할 수 없다"고 맹비난했다.

이 문제와 관련한 여야 공방의 포인트는 '추가문건' 존재여부로 옮겨갔다. 민주당은 "우호적인 언론인과 적대적인 언론인을 구체적으로 분류한 내용을 담은 추가 문건이 있다"며 한나라당을 압박하고 있다.

하지만 한나라당은 자체점검 결과 그 같은 내용을 담은 문건은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며 "민주당이 중하위 당직자가 습작으로 만든 문건을 빌미로 대야 음해공작을 펴고 있다"고 비난했다.

한나라당은 특히 민주당 이낙연 의원이 언론인을 분류한 문건이 있는 것처럼 언론에 흘렸다며 이 의원을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다. 이회창 총재는 대선문건 파문으로 최근 무조건 등원선언 등으로 모처럼 구축한 긍정적 이미지가 크게 훼손되고 있다고 보고 당 차원의 강력한 대응을 주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선문건 공방에서 자민련이 적극 민주당 편을 들고 있는 점도 이채롭다. 여기에는 교섭단체요건 완화를 위한 국회법 개정안 처리나 연말 연초의 개각 등에서 자민련 배려 등 다목적의 계산이 작용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민주당은 자민련과의 공조로 대선문건에 대한 국정조사까지 요구하고 나섰다. 하지만 야당의 문건작성이 '국정'에 해당하는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일고 있다.

결국 민주당이 추가문건을 제시할 수 있느냐가 이번 문건공방의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이지만 민주당측은 계속 미적거리고 있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몇 가지 분석이 있다. 우선 추가문건 자체가 존재하지 않은 데도 파문을 계속 끌고 가기 위해 민주당측이 넘겨짚는 공세를 펴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 이런 사실이 확인되면 민주당은 집권여당으로서 도덕적 비난을 면치 못할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이 추가문건을 확보했더라도 이를 공개할 경우 입수경위 등을 둘러싸고 '공작' 논란이 일 우려가 있어 민주당 스스로 공개하기가 어렵다는 주장도 있다.

민주당의 한 당직자는 "예산안 처리를 앞두고 그런 문건을 공개해서 야당을 자극하는 것은 현명치 못한 일"이라며 은근히 예산안 처리 이후 공개 가능성을 내비치기도 했다.


청와대 총기사고 은폐 축소의혹 쟁점으로

연말 정가의 또 하나의 이슈인 청와대 총기사고 진상규명 공방에서는 한나라당이 적극적인 공세를 펴고 있고 여권은 수세에 몰려 있다. 한나라당은 이 사건에 대한 국정조사를 요구, 민주당의 대선문건 국정조사 요구에 맞불을 놓았다.

한나라당은 무엇보다도 사건 발생 장소를 놓고 발표가 엇갈리는 등 사건 경위에 의혹이 많다고 보고 국정조사를 통해 진상을 규명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한나라당측은 특히 청와대 경호실과 경찰이 사건을 은폐ㆍ축소한 의혹에 주목하고 있다. 대통령 관저에서 불과 50m 떨어진 곳에서 일어난 사건의 의미를 축소하기 위해 처음부터 발생장소와 경위를 왜곡시켰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한나라당은 18일 기자회견을 갖고 10대 의혹을 제기하는 등 이 사건의 쟁점화를 위해 계속 불을 지피고 있다.

이계성 정치부차장

입력시간 2000/12/19 18:59


주간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