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전망대] 회색빛 가득한 한해의 끝

주식투자를 하는 사람이든, 증시 주변에 아예 얼씬거리지도 않은 사람이든, 올 한해 주가로부터 자유스러운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올초 IMF체제를 조기 극복했다는 환상에 젖어 모두가 서둘러 샴페인을 터뜨리게 한 것은 '거품지수'였고, 텅 빈 증권계좌를 부여안고 미 나스닥지수의 추락에 잠 못이루는 수많은 사람을 만들어낸 것은 '깡통지수'였다.

기업가치가 반토막, 심지어 10분의1토막 나는 바람에 증시와 투신권에서 대대적인 돈의 엑소더스가 일어났고, 그 결과 자금시장이 폭탄을 맞아 멀쩡한 기업들도 부도위기에 처하고 대규모 실업군이 형성됐다.

100조원대의 공적자금을 쏟아부은 은행 등 금융권의 주가가 추락하며 부실이 더욱 커지는 바람에 40조원의 추가 공적자금을 조성해야 하는 상황에 처함으로써 전 가구가 수백만원씩을 부담해야 하는 상황도 벌어졌다.


천당보다 지옥에 가까웠던 주식투자가

구조조정의 시퍼런 칼날이 연말까지 은행원들과 퇴출ㆍ법정관리기업 근로자들의 목을 노리게 된 것도 따지고 보면 증시침체가 원인이자 결과였다. '오 주(株)여!'라는 탄식이 나올 법도 하다.

그 주식시장이 12월 26일 올해 영업을 끝내는 납회식을 갖는다. '자본주의의 꽃이 만개했다'며 찬사와 기대를 한 몸에 받던 증시는 모든 경제 주체들에게 '일장춘몽'의 회한과 좌절만 안긴 채 무심한 듯 한 해를 접는다. 롤러코스터 주가에 울고 웃던 투자가들에게 남은 것은 아찔한 현기증뿐이다.

주택은행과 국민은행의 합병문제가 금융개혁뿐 아니라 공공ㆍ기업ㆍ노동개혁의 시금석으로 떠올랐다.

정부는 여기서 밀리면 전체적인 개혁 프로그램이 치명적 상처를 입게 된다는 판단아래 "인위적 인력감축은 없다"는 말로 노조를 달래지만, 두 은행 노조는 "유일한 시너지 효과인 인력 및 점포 감축마저 포기한다는 정부의 말은 얼르고 뺨 때리는 격"이라며 평화ㆍ광주ㆍ제주ㆍ경남은행 등과 총파업에 나서기로 했다.

이와 관련, 금융계에서는 "소매금융이 주업무인 두 은행의 합병이 시너지 효과를 거두려면 적어도 30%의 인력(정규직 기준 6,000명)과 65%에 달하는 중복점포 문제가 해결돼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여기에 금융감독위원회가 공적자금이 투입되는 6개 은행을 부실금융기관으로 지정, 완전감자를 실시키로 함에 따라 이미 주가하락으로 큰 피해를 봤던 이들 은행의 소액주주들은 또 한번 눈물을 흘리게 됐다.

서울ㆍ한빛ㆍ평화은행에 투입됐던 6조7,000억원의 공적자금도 허공으로 날아갔다. 정부는 이들 은행에 다시 7조원 이상의 공적자금을 투입, 클린뱅크화할 예정인데 새해 1월 중순부터 열릴 공적자금 청문회에서 정부관계자들은 단단히 각오해야 할 것 같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차세대 영상이동통신(IMT-2000) 비동기식 사업자가 SK텔레콤과 한국통신으로 결정나자, 탈락한 LG가 심사기준과 과정, 일부 심사위원의 자격 등에 의혹을 제기하고 나서 후유증이 계속되고 있다.

비동기 IMT-2000 사업에 그룹의 명운을 걸었던 LG는 동기식 사업자 선정 불참과 행정소송 등 모든 수단을 동원할 것으로 알려졌으나 대세를 꺾기는 역부족일 것 같다.

101조원에 달하는 정부안을 원안대로 통과시키자는 여당과 9조원 이상의 삭감을 주장하는 야당의 힘겨루기 속에 진통을 거듭해온 새해 예산안이 회계연도 개시를 10일 앞두고 가까스로 처리된다. 예산안을 정치현안의 볼모로 잡는 구태는 언제쯤이면 사라질까.


경제수석 교체설 등으로 재계 해석 구구

연말 청와대 비서진 개편도 관가와 금융가, 재계의 큰 관심이다. 부실금고 관련 발언으로 여론의 집중타를 맞은 이기호 청와대 경제수석의 교체은 기정사실화된 분위기.

이미 후임자에 대한 갖가지 설이 난무하며 내년 2월로 예정된 개각, 특히 경제팀 경질과의 상관관계에 대한 해석도 구구하다.

일본 금융재생위원회가 최근 재일 한국인들의 최대 신용조합인 간사이흥은과 도쿄흥은을 부실금융기관으로 지정, 도산시킴으로써 동포사회가 큰 충격에 휩싸여 있다.

정부가 1960년대부터 재일동포의 경제적 기반을 강화한다는 명분아래 이들 신용조합에 지원해온 돈(외환보유고에서 지출)은 400억엔. 정부는 앞으로 일본 정부와 협의아래 이 돈을 파산 신용조합을 인수하는 기관에 출자전환할 예정이지만, 새로운 동포은행 설립을 주도권을 쥐려고 동포들간에 반목이 더욱 커졌다는 얘기도 파산이상으로 가슴아프다.

뉴 밀레니엄 첫 해의 끝은 참으로 쓰라리다. 김대중 대통령은 최근의 경제위기와 사회적 갈등에 대해 "모든 것이 정부의 책임"이라며 새 출발을 다짐했다. 그래도 희망의 빛을 놓치지 않으려면 모든 경제주체가 운동화 끈을 새로 매는 수밖에 없다.

이유식 경제부 차장

입력시간 2000/12/19 1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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