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듀 2000] 베스트·워스트

남북 정사회담에 웃고 벤처 몰락에 울고…

또 한해가 저물어간다. 벅찬 희망과 부푼 기대 속에 맞았던 새 천년의 첫 해가 아쉬움과 회한을 남긴 채 역사의 파편 속으로 스러져가고 있다.

지나간 과거는 언제나 미련이 남게 마련. 기대가 컸던 만큼 못다한 아쉬움의 여운도 그만큼 절실하게 다가온다. 그 어느 해보다 부침이 심했던 2000년 한해 우리 사회 각 분야에서 명멸했던 굵직한 사건과 큰 흐름을 되짚어본다.


한반도 發 평화와 감동의 메시지

2000년 6월13일 '21세기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 '전쟁의 위협 속에 있는 준전시국가'라는 오명을 쓰고 있는 한반도에서 세계 사람을 놀라게 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동토(凍土)의 땅으로 남아 있던 북한의 순안공항에서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 남북 두 정상이 분단 50년만에 만나 감격적인 포옹을 한 것이다. 세계 언론에 긴급 타전된 이 장면은 우리 국민은 물론 세계 사람에게 평화와 감동의 메시지를 던져주었다.

그 결실로 이뤄진 두 차례의 남북 이산가족 상호방문은 뜨거운 동포애, 조국애를 다시한번 일깨워주는 일대 사건이었다. 호텔에서 100세 노모의 100번째 생일상을 차린 칠순의 아들, 13년만에 납북된 아들과 상봉한 칠순의 어머니, 50년간 떨어져 산 남편과 아내의 기막힌 재회 등..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동과 눈물의 드라마가 펼쳐졌다. 이산의 아픔을 단 몇 시간의 재회로 달래야했던 이산가족은 물론이고 TV로 이 장면은 보던 지구촌 사람은 모두 울고 또 울었다. 이를 계기로 국민은 그간 멀고먼 미래의 일로만 여겼던 화합의 길이 한층 다가왔음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남북 정상회담과 이산가족 상호방문의 결실이 있기까지는 감수해야 할 희생도 따랐다. 이런 역사적 결실을 이끌었던 원동력은 누가 뭐래도 남한 경제력의 비교우위였다.

김정일 위원장은 김일성 주석의 사망 이후 잠시 흔들렸던 권력장악을 마친 지난해부터 극도로 피폐해진 북한 경제를 살리기 위해 고립주의 노선을 일부 수정, 밖으로 손을 내밀기 시작했다.

이를 간파한 DJ 정부가 '햇볕 정책'이라는 캐치프레이즈 아래 북한을 끌어안음으로써 그동안 단절됐던 남북 교류의 물꼬가 터진 것이다. 하지만 정부의 햇빛 정책은 우리 경제가 IMF체제의 상처에서 완치되지 않은 상태에서 무리하게 추진된 것이어서 정치ㆍ경제적 부작용도 잉태할 수 밖에 없었다.


현대위기, 대마불사 신화깨져

그중 하나가 바로 현대그룹 사태. DJ 집권 초기만 해도 북한은 종전처럼 남한 정부의 실체를 인정하려 하지 않았다. 그래서 초기 대북 사업은 정부가 아닌 현대그룹이라는 민간 기업이 주도했다.

현대는 금강산 관광 허가를 얻는 대가로 지난 2년 동안 북한에 엄청난 달러를 쏟아부었다. 사실 금강산 관광 사업이 남측 관광객 강제 억류, 북측의 고자세와 터무니없는 원조금 주장 등의 여러 난제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지속될 수 있었던 것은 정부의 정책적 지원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따라서 재계에서는 현대그룹의 대북 사업을 '정부의 일을 대신 해준다'는 시각으로 보았고 그에 따라 현대그룹이 정부로부터 '대가'를 받는게 아니냐는 의구심도 가졌다.

그런데 정주영씨 아들 간의 경영권 분쟁이 불거진 데다 무리한 대북 사업의 후유증, 계열사들의 잇단 주가 폭락, 그룹 유동성 위기 등 잇단 악재가 터지면서 그룹의 모기업인 현대건설이 부도위기에 처하게 된다.

현대그룹의 고위층은 내심 '유동성 위기의 원인이 대북 사업에서 비롯된 것이 상당 부분 있는데 설마 정부가 우리 그룹을 어떻게 하랴'는 안이한 생각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국내 경제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침체하자 안팎으로 구조조정의 압박을 받던 정부는 현대그룹에 이렇다 할 지원을 해줄 수 없었다. 현대는 실제 10월 중순 부도위기에 직면하기도 했다.

결국 형제간의 화해와 계열 분리 및 매각 등 그룹 해체에 준하는 강도높은 자구안을 내놓으면서 가까스로 파산은 면했다. 하지만 아직 완전히 살아났다 할 수 없는 현대그룹의 미래는 여전히 '대마불사'(大馬不死)의 오랜 관행도 깨질 수 있다는 가능성을 남겨놓고 있다.

올해 국내 경제계에서는 그야말로 '산업 혁명 이후 최대의 변혁'이라는 평가가 나올 정도의 혁명적 조류가 일어났다. 바로 벤처 비즈니스의 열풍. 지난해 말부터 일기 시작한 인터넷 벤처의 열기는 우리 사회의 경제구조를 뒤바꿀 만큼 큰 소용돌이를 몰고왔다.

직장인, 교수, 학생, 전문가 등 너도나도 앞다퉈 벤처 비즈니스로 뛰어들었다. 온라인 비즈니스가 21세기 정보화 시대를 이끌 핵으로 떠오르면서 인터넷 벤처 비즈니스는 한때 부와 미래가 보장된 '엘도라도'로 인식됐다.

하루에도 수백개의 벤처기업이 탄생했고, 안정된 직장을 버리고 너도나도 '벤처로, 벤처로'를 외쳤다. 벤처 창업은 사상 유례가 없는 러시를 이뤄 지난해에는 2만9,976개였던 신설법인 수가 올해에는 10월 기준으로만 3만5,724개로 증가했다.

또 중소기업청으로부터 벤처기업 인증을 받은 회사도 지난해 4,934개에서 올해는 11월 말까지 9,331개사로 두배나 늘었다.

이같은 벤처열풍은 올해 초의 증시폭등과 맞물려 엄청난 사회ㆍ경제적 파장을 일으켰다.

첨단 정보통신 업체들이 많은 코스닥 시장은 연일 최고치를 경신하며 하늘 높은 줄 모르고 폭등했고, 거래소의 주가지수도 1,000포인트를 돌파하며 활황장세를 구가했다.

덩달아 아직 등록되지 않은 신생 벤처 기업에 대한 투자 열기도 뜨거워져 프리코스닥에 투자해 수십억, 수백억대의 거금을 번 벤처투자가들이 속속 등장했다. 벤처 투자로 떼돈을 번 이야기가 언론에 자주 소개되면서 벤처기업이라면 옥석을 가리지 않고 투자하는 '묻지마 투자', '참견마 투자'크게 유행했다.

지방에서는 영농자금을 들고 증권사 객장을 찾은 시골 아줌마의 모습을 보는 것은 흔한 일이었다. 벤처라는 간판만 걸면 액면가의 수십, 수백배에 달하는 할증 프리미엄을 주고서라도 투자하겠다는 사람이 줄을 이었다. 대학 초년생이 만든 벤처 동아리에도 일반 투자자들이 몰려들어 골머리를 앓았을 정도였다.


천당과 지옥 오간 벤처

이런 벤처 붐은 대기업 위주였던 우리 경제의 체질을 중화시키고 창조적 기업 문화를 조성하는데 크게 일조했다.

또 '창조적이고 진취적인 사고로 일하고 행동하는 사람은 언제든 성공할 수 있다'는 긍정적 사회 분위기를 형성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하지만 단기 과열 현상에 따른 부작용도 컸다. 올해 중반을 넘어서면서 벤처를 가장한 '치고 빠지기식'의 사기극이 만연하기 시작했다. 일부 벤처 CEO 사이에서 주가가 오르면 소유 지분을 팔아 수십억원을 챙기고 달아나는 도덕적 해이가 노골화되기 시작했다.

또 미국이나 홍콩 등 금융 선진국에서 배운 M&A(기업 인수합병) A&D(기업인수후 개발) 같은 금융기법을 교묘히 이용해 재벌이 된 벤처 키드도 나타났다. 이들 벤처 키드들은 정ㆍ관계 고위층을 비호세력으로 삼아 탈법과 불법을 일삼으며 치부에 성공했다.

하지만 이들은 올해 여름을 기점으로 주가 폭락하고 벤처 열기가 싸늘하게 식어가면서 줄줄이 몰락의 길에 접어 들었다.

진승현 MCI코리아 대표, 정현준 한국디지탈라인대표, 김진호 전 골드뱅크사장, 김석기 중앙종금대표, 양재혁 삼부파이낸스회장 등은 한때 수십개의 계열사를 둔 벤처 재벌로 성장했다가 몰락한 대표적인 벤처 키드다.

불과 1년만에 벼락 부자가 된 벤처 키드의 등장은 일반 서민에게 상대적 박탈감을 주고 한탕주의를 부추기는 병리 현상을 낳기도 했다.

올해 중순 이후 계속된 주식 폭락은 서민의 어깨를 무겁게 했다. 한국 증권협회에 따르면 올해 11월 현재 증권 투자를 위해 개설된 위탁자 총계좌수는 1,548만9,929개. 1998년 말의 1,008만5,560개보다는 50%, 지난해의 1,326만3,508개보다는 20% 가량 늘어난 것이다. 경제활동 인구를 2,000만명으로 볼 때 4명중 3명이 주식투자를 한 셈이다.

올해 초 증시가 최고점을 달했을 때 투자했던 개인 투자자의 주식은 현재 대부분 10분의1 토막이 난 경우가 대부분이다.

IMF위기 때 받은 명예퇴직금을 몽땅 날리거나 은행 대출로 투자했다가 개인 파산한 경우, 심지어는 주식투자로 전재산을 날리고 자살한 사람까지 생겼다. 증권가에서는 '가구당 2,000만~3,000만원을 날리는 것은 기본'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개미들의 피해는 심각했다.

하반기 서민 경제가 극도로 침체한 것도 바로 이런 개미 가정의 경제 파탄과 관련이 깊다.

이처럼 '벤처'와 '주식'은 올 한해 사상 유례가 없을 정도로 천당과 지옥을 오가는 사상 유례없는 널뛰기 장세를 보였다.


김대중 대통령 노밸평화상 수상

올해에 또 빼놓을 수 없는 것이 김대중 대통령의 노벨 평화상 수상이다.

그간 10여년 이상 후보에만 올랐던 김 대통령은 오랜 민주화 투쟁의 결실과 김정일 국방위원장과의 정상회담을 성사시킨 공로, 그리고 동티모르 같은 분쟁 국가에 대한 세계인의 관심과 지원을 촉구해온 인권 운동가로서의 명망을 등에 업고 노벨 평화상 수상자로 선정되는 영예를 누렸다.

이 상은 김 대통령 본인은 물론 우리 민족의 위상과 긍지를 높여주는 쾌거가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노벨평화상 수상을 위해 대북 정책에 지나친 양보를 했다', '노벨 평화상 때문에 내치를 소홀히 했다'는 비판적인 시각도 대두됐다.

덕분에 김 대통령은 올해 햇빛 정책의 결실과 고대하던 노벨 평화상 수상으로 개인적으로는 잊을 수 없는 한해를 보냈지만 가신 그룹간의 불화, 지방색 짙은 인사정책, 정치력 부재에서 비롯된 제2의 경제 위기 초래 등 국가 정책적으로는 그다지 성공하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초유의 의료대란, 국산영화 대도약

올해 국민을 직접적으로 괴롭힌 사건은 사상 초유의 의료대란이다. 7월1일부터 실시키로 했던 의약분업에 반발하는 의사들의 집단행동으로 촉발된 이 사태는 말기 암환자가 수술 한번 못받고 숨져야 하는, 어이없는 일이 벌어졌다.

이런 집단 의료거부 사태로 의사들의 위상은 땅에 떨어졌고 준비없이 의약 분업을 강행하려던 정부의 행정 능력도 다시한번 땅에 추락했다.

올해 예술ㆍ문화계에서는 국산 영화의 도약이 무엇보다 두드러졌다.

불과 2년전만 해도 스크린 쿼터제의 수호를 위해 삭발과 집단 행동까지 불사해야 했던 국내 영화계는 지난해 강재규 감독의 '쉬리' 흥행에 이어 올해에도 '공동경비구역 JSA', '단적비연수', '비천무', '리베라 메'등이 관객 100만명을 돌파하는 대박을 터트리면서 국내 스크린 시장을 휩쓸었다.

그간 할리우드 영화에 밀려 고전하던 우리 영화계가 중흥기를 맞이한 것이다. 한국 영화의 르네상스가 온 데는 제일제당(CJ엔터테인먼트), 삼성캐피탈, KTB네트워크, 일신창투 등 자본력을 갖춘 투자사와 기획ㆍ보급사들이 영화산업에 뛰어들어 풍부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선진 배급 시스템을 적용한 결과다.

올들어 인터넷망이 급속히 확산되면서 '온라인 관음증'이라는 새로운 사회 병리 현상도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대표적 사건이 '백지영 비디오'파문. 인기 스타인 백씨가 데뷔 시절 찍은 성행위 비디오 테이프가 온라인상에 공개되면서 엄청난 사회적 파장을 일으켰다. 예전 같으면 소문 정도로만 마무리 될 수도 있었던 것이 인터넷의 보급 덕택에 불과 며칠만에 전국에 퍼져버린 것이다.


'몰카'등 온라인 관음증 대유행

호기심으로 시작되는 이같은 사건은 당사자의 인격과 삶을 무참하게 파괴하는 엄청난 결과를 초래한다.

백양 비디오 외에도 올해에는 유독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한 '몰래 카메라'나 유명 연예인이나 미스 코리아의 조작 사진을 올려 놓는 식의 음란 사이트들이 기승을 부렸다.

인터넷의 보급은 일반 다수의 정보 공유, 온라인 감시ㆍ감독 기능 강화, 동호회의 활성화 등 긍정적인 면이 있은 것과 별도로 남의 은밀한 사생활을 훔쳐보는 관음 행각을 부추기는 부작용도 낳았다.

스포츠에서는 다소 우울한 한해였다. 한때 아시아 맹주를 자처했던 한국 축구가 몰락했고, 2000 시드니올림픽에서 5회 연속 종합 10위권 달성의 목표도 실패했다. 또 간판 프로 스포츠인 프로야구와 프로축구도 관중 감소라는 침체의 늪을 벗어나지 못했다.

하지만 시드니올림픽에서 펜싱과 남자하키 같은 비인기 종목에서 선전은 앞으로 한국 스포츠의 가능성을 던져주었다.

한해를 돌아보면서 남기고 기억하고 싶은 기억보다는 아쉽고 가슴 아픈 일이 훨씬 많았다.

그만큼 힘겹고 다사다난했던 한해였다. 해는 내일 또 어김없이 뜰 것이다. 다가올 새해에 대한 기대와 희망도 새해와 함께 다시 시작될 것이다.

송영웅 주간한국부 기자

입력시간 2000/12/19 19:11


주간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