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해야 산다" 뉴 이회창 플랜 가동

다가서는 정치행보, 2002년 대비 변신 시도

새해 예산안 처리를 놓고 여야가 숨가쁘게 대치하던 12월 중순, 한나라당의 이회창 총재는 두 차례나 지방을 찾았다.

12일 대구시지부 후원회에 참석했던 이 총재는 채 숨돌릴 틈도 없이 15일 다시 강원대 특강을 위해 춘천으로 갔다. 이 총재는 무엇 때문에 이처럼 바삐 움직이고 있는 것일까. 그 해답은 '뉴 이회창 플랜'.

2002년 대선을 앞두고 자기변신을 시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민에게 달라진 모습 각인시켜

달라진 이 총재의 모습을 처음으로, 그리고 두드러지게 보여준 것은 11월말 국회공전의 물꼬를 튼 무조건 등원선언이었다. 강경파와 온건파로 나뉘어 당 안팎에서 이런저런 말이 나돌았지만, 이 총재는 전격적으로 등원을 선택했다.

이후 이 총재가 보여준 일련의 정치적 선택은 국민에게 달라진 그의 모습을 확실하게 각인시켜 주었다. 공적자금 동의안 처리, 한전민영화 정부안 동의 등 중요한 국가적 대사마다 이 총재는 여야를 떠나 '국민을 생각하는' 광폭정치가로서의 면모를 과시했다.

심지어 국회의원들이 침묵으로 동의했던 의원세비 인상문제까지도 과감하게 동결을 제안, 여론의 환영을 받았다.

겉으로 드러난 정치적 행보 못지 않게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뉴 이회창 플랜'은 치밀하게 전개되고 있다. 이 총재에게 그동안 부족한 것으로 지적된 인간적 측면의 부각이다.

이 총재는 정기국회 도중에도 한 주도 쉬지 않고 시장상인이나 택시기사 등 민초들과 접촉하며 딱딱한 법관 이미지를 벗어나기 위해 숨가쁘게 움직였다.

이와 더불어 그동안 냉랭한 관계를 유지해 왔던 정치 파트너에 대해서도 관계개선을 시도하고 있다.

김대중 대통령이 한나라당의 끈질긴 비난공세를 뒤로 한 채 노벨상을 받으러 출국하던 날 직접 축하전화를 한 것이 대표적인 예. 한때 극심한 갈등을 빚었던 김영삼 전 대통령이 부산에서 서도전을 열었을 때도 전화를 건데 이어 자신의 측근인 권철현 대변인 등을 보내는 성의를 보여주었다.

최근에는 신비주류로 등장, 사사건건 자신에게 도전하고 있는 박근혜 부총재와도 모 호텔에서 식사를 나누며 장시간 대화를 나누었다.


"변하지 않으면 차기도 없다"

도대체 이 총재가 이처럼 변신을 시도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 총재에게 올 한해는 당권의 공고화를 통한 차기대선 준비체제의 구축기라고 할 수 있다.

1997년 대선 패배이후 비주류의 견제와 총풍, 세풍 등 여권의 압박 속에서 '살아남기'에 급급했던 이 총재는 4ㆍ13총선에서 원내 제1당 자리를 확보한 뒤 6월 전당대회에서 압도적 지지로 총재 재선에 성공, 확고한 당내 기반을 다졌다.

특히 총선을 앞두고 사실상 정치생명을 건 승부수나 다름없는 '2ㆍ18 공천혁명'을 단행, 당내 비주류를 제거하고 부동의 대선주자로서의 입지를 굳혔다.

이 총재는 대여 관계에 있어서도 강ㆍ온 전략을 적절하게 구사, 남북정상회담 이후 여권에 내주었던 정국의 주도권을 상당부분 야당 몫으로 찾아오는 새로운 면모를 보였다. 이 같은 일련의 과정 속에서 당내에서는 자연스럽게 '대안부재론'이 확산됐고, 차기 대선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게 됐다.

그러나 이 총재가 2002년 대선고지를 향해서 '순항' 을 하고 있지만, 대권을 위해서는 여전히 넘어야 할 산이 적지 않다는 지적이다.

우선 이 총재가 과거 야당과 차별화된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많은 시도를 했지만 지난 8월의 장외투쟁에서 보듯 그의 정치 행보도 자신이 타파하겠다는 '3김식 정치'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비판을 불러왔다.

또 야당이 달라진 것은 없으면서 여당의 정치적 실수나 자충수에 의한 반사이익에 기대고 있다는 평가 속에서 이 총재의 지도력과 '협량'에 문제를 제기하는 목소리도 여전히 가라앉지 않고 있다.

결국 이 총재가 이른바 '광폭정치' 또는 '큰 정치'를 하겠다며 변신을 시도하는 것이나 국회 파행의 와중에도 부쩍 민생현장을 찾는 발길이 잦아진 것은 이 같은 비판을 의식한 이미지 변신의 일환이다.

야당총재로서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는 판단에서다. 야당 총재는 국정운영에 반대의 목소리만 내면 되지만, 어디까지나 절반을 대표할 뿐 국민 전체를 대변하기 위해서는 일정한 국가운영의 책임자로서 이미지를 부각시킬 필요가 있다.

단순히 여당의 실정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선을 넘어서 국가운영의 책임자로서 대안을 제시해야 하는 것이다.


탄탄한 정치철학 비전 제시해야

지금까지 이 총재의 실험은 나름대로 성공을 거두고 있는 듯 하다. 심지어 한나라당 주변에서는 차기 5년에 이미 국정운영의 주도권을 상실한 김대중 대통령의 남은 임기 2년까지 포함해 7년 임기가 시작됐다는 말까지 나돌고 있다. 하지만 이 같은 '호경기'가 어디까지 갈 수 있을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불안한 징후는 최근 논란이 됐던 국가보안법 개폐와 관련된 이 총재의 오락가락하는 행보에서 이미 감지되고 있다. 국가보안법 개폐에 대해 이 총재는 그 동안 부분 개정 입장을 밝혔왔다.

따라서 달라진 이 총재로서는 전면개정으로 전환하는 것이 당연한 수순인 듯 여겨졌다.

하지만 이 총재는 최종 선택 단계에서 당 안팎의 보수층을 의식한 듯 오히려 기존보다 훨씬 후퇴한 개정불가 입장을 밝혔다. 당연히 당 안팎에서는 곱지않은 눈길이 쏠렸다.

이 같은 오락가락 행보는 '뉴 이회창 플랜'이 말 그대로의 '이미지 변신'에 머물고 있을 뿐 새로운 정치철학이나 정치적 비전에 바탕을 두지 않았음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사실 이 총재를 둘러싸고 있는 한계는 곳곳에 존재한다. 보수주의라는 이념적 근거를 비롯해, '영남지도자'라는 지역적 기반, 밑바닥에서 큰 대중정치인이 아니라는 점 등등.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즉 택시기사나 시장상인 등을 만나고 악수를 나누어도 여전히 그는 차갑고 딱딱한 엘리트 출신이라는 고정된 이미지를 벗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단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이 총재는 전격등원 선언 및 추가 공적자금 처리협조 등 과거와 다른 유연성을 보여주는 '선회의 정치력'을 과시하기도 했지만 정국쟁점에 대한 기본적인 접근방식은 그가 극복의 대상으로 여겨온 '3김'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비판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한나라당의 한 당직자는 "예측불허의 역동성을 가지고 전개될 차기 대선까지의 정국격랑 속에서 이미지 변신으로만 살아남을 수 없고 보다 근본적인 변화를 요구한다"고 말했다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가 이른바 '뉴 이회창 플랜'으로 2002년 대선을 대비한 자기변신으로 어느때보다 분주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박천호 정치부기자

입력시간 2000/12/19 19:56


박천호 정치부 toto@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