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의 계절, 임원들 좌불안석

대규모 승진인사 '축제'가 벌어지는 연말 인사 시즌을 맞았으나 주요 대기업 임원들은 우울한 모습이다. 경기침체가 계속되면서 승진인사는 커녕 감원을 당하지 않으면 다행인 입장이다.

단지 IMT-2000 사업권을 획득한 SK그룹에서만 대규모 승진 인사가 단행되어 대조를 이루고 있다.

대기업의 연말 인사는 통상 영업실적에 대한 논공행상을 따진 후 대폭적 승진을 통해 분위기를 쇄신해왔던게 종전까지의 관행. 하지만 올해의 경우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승진인사도 별로 없을 뿐 더러 그룹 차원의 임원 인사를 계열사 별로 진행하는 것이다. 소액주주와 참여연대 등을 의식한 것으로 대주주의 일방적 임원 임명이라는 '황제 경영'방식을 피해나가고 있다. 따라서 많은 그룹들은 통상 연말에 해오던 임원 인사를 내년 2, 3월 이후로 미루고 있다.

또 경영진을 젊은 세대로 교체하고 재벌가에서 2, 3세들을 경영일선에 포진시키기 시작했다.

내년도 경기전망이 '매우 비관'쪽으로 기울다보니 보수적 경영으로는 살아남기가 어렵다는 판단에서다. 리더십이 있고 활기찬 신진을 등장시킬 수 밖에 없는 분위기다.


물 만난 SK그룹, 대규모 승진인사

4대그룹 중에서는 유일하게 SK그룹이 계열사 별로 대규모 승진인사를 단행했다. IMT-2000 사업권 획득이라는 호재에 승진인사에 이르기까지 겹경사가 난 셈이다.

SK그룹은 40년대생 사장들을 부회장 승진 발령을 통해 경영일선에서 후퇴시킨 반면 유승렬(50) SK㈜사장 등 50년대생을 실무 경영진에 포진시켰다.

또 최창원(36) SK글로벌 부사장 등 30대 오너 친인척을 부사장급에 전진배치했다. 실질적 오너인 최태원 회장의 계열사 지배력을 강화하기위한 포석으로 분석된다.

우선 주력사인 SK㈜는 김한경(59) 대표이사 사장을 부회장으로 승진시키고, 후임 사장에 유승렬 그룹 구조조정본부장을 선임했다. 또 황두열(57) 부사장과 이건채(58) 부사장을 부회장으로, 김창근(50) 전무를 부사장으로 승진시켰다.

특히 상무대우 8명을 상무로, 부장 14명을 상무대우로 각각 승진시켰다.

SK글로벌도 조직개편과 함께 대규모 승진인사를 단행했다. 김승정 대표이사 사장을 대표이사 부회장 겸 상사부문 사장으로, 홍영춘 에너지판매 부문 전무를 이 부문 사장으로 승진 발령했다. SK글로벌은 또 상사 부문의 박주철, 최창원, 김영진 전무를 부사장으로 승진시키고 조희근 상사부문 직물본부장 등 11명을 상무대우로 선임했다.

SK텔레콤은 IMT-2000 사업권을 획득한 12월15일 최태원 회장의 동생인 최재원 전무를 부사장으로 승진시키고 SK웨이컴 손재택 상무를 대표이사 사장에 승진 발령하는 등 본사 및 자회사에 대한 대폭적인 임원인사를 단행했다. IMT-2000 사업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기위한 새로운 진용을 구성한 것이다.


경영진 교체 검토중인 현대

지난해 무려 422명의 임원을 승진시키는 사상 최대 규모의 승진인사를 단행해 화제를 뿌렸던 현대그룹은 올해 9월 현대자동차가 계열 분리되고 중공업에 대한 지배력도 크게 약화하면서 승진인사 규모가 미미할 전망이다.

오히려 주력기업인 현대건설의 경우 차장급 직원까지 10% 이상 감원하고 일부 사업부문을 매각 혹은 분리해 정리할 계획이다. 다른 계열사들 역시 이런 분위기를 감안, 승진인사를 최소 규모로 자제할 가능성이 높다.

특히 지난 5월 경영일선에서 물러났던 정몽헌 현대아산 이사회 회장이 조만간 현대건설 대표이사 회장으로 복귀할 것으로 알려져 김윤규 현대건설 사장, 김재수 현대그룹 구조조정위원장 등 현 경영진의 거취와 후임자가 누가 될 것인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현재 김윤규 사장은 "현대건설의 위기가 10년 이상 누적된 부실의 결과이며 자신이 재임했던 기간 중에는 오히려 부채 규모가 줄어들고 있다"며 퇴진을 거부하고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김재수 위원장은 "현대그룹의 부채문제와 구조조정이 마무리되면 미련없이 나가겠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현대그룹측은 "그동안 위기를 타개하느라 전력을 쏟았던 이들이 동시에 퇴진하는 것은 무리"라며 "내년 2월께 주주총회 등을 통해 판가름이 나게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삼성과 LG는 내년초로 예정

반면 삼성그룹과 LG의 경우 주주총회에 맞춰 내년 2월에서 3월쯤으로 인사시기를 결정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삼성 관계자는 "올해 실적이 그런대로 좋게 나왔지만 내년에는 상황이 불투명하다"며 "따라서 승진인사도 꼭 필요한 만큼만 할 계획 "이라고 말했다.

특히 삼성은 올해 삼성전자 등이 호황을 구가하면서 대폭적인 흑자를 기록한 상황이라 승진인사를 통한 축제를 벌일 수도 있지만 내년 경기가 내리막이라는 분석이 주류를 이룸에 따라 자제할 가능성이 높다. 오히려 지속적인 구조조정을 해야한다는 분위기다.

LG의 경우 IMT-2000 사업권 확보에 실패함에 따라 관련 인사에 대한 문책이 있을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그룹 분위기가 썰렁하다.

LG그룹 관계자는 "올해 경상이익이 3조원을 웃돌고 있지만 IMT-2000 사업권을 따지못한데 따른 충격에 휩싸여 있기 때문에 승진인사 규모는 미미할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일각에서는 분위기 쇄신을 위해 오히려 승진인사 폭을 크게 늘릴 가능성도 있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재벌가 2, 3세의 약진

재벌이건 중견그룹이건 2, 3세들도 기업경영의 전면에 나서고있는 것이 올해 인사의 특징이다.

재벌 2, 3세들은 경영에 뛰어들기에 적당한 나이가 된데다 경기 침체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기업들이 내부적으로 강력한 응집력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물론 일각에서는 "아직 경영수업이 덜 된데다 오너 가족이라는 이유 하나로만 조기승진하는 것 아니냐"는 반발도 나오고 있다.

현대가의 경우 정주영 전 명예회장의 4남 정몽우(작고)씨의 장남인 정일선 기아자동차 기획실 이사를 계열사인 인천제철 상무로 승진시켰다.정몽구 현대기아차 회장의 외아들로 현대차 구매실장인 정의선씨도 이번 인사에서 상무 승진이 유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창업주의 동생이 그룹의 바통을 이어받았던 SK그룹의 경우 2세의 약진이 뚜렸하다. SK글로벌은 최태원 SK㈜회장의 사촌동생인 최창원(36) 전무를 부사장으로 승진시켰다. 또 최태원 회장의 친동생 최재원(37) SK텔레콤 전무도 부사장으로 승진했다.

중견기업에서도 2세의 경영 참여가 늘고있다. 한국타이어의 경우 조양래 회장의 장남인 조현식(30)차장이 상무보로 발탁 승진될 것으로 알려졌다.

대성그룹의 경우도 2세들이 경영 전면에 나서 3개 주력사에 창업주인 김수근 명예회장의 세 아들이 각각 포진했다. 모회사인 대성산업 회장에 장남인 김영대 부회장, 계열사인 서울도시가스에서는 차남인 김영민 이사가 회장으로, 대구도시가스의 경우 3남으로 그룹본부 기조실장인 김영훈 사장이 회장으로 선임됐다.

조재우 경제부 기자

입력시간 2000/12/19 20:02


조재우 경제부 josus62@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