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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농촌] 부채에 눌린 農家 '폭발직전 農心'

농민의 중추인 30~40대 몰락으로 농촌 위기

"매달 월급을 타는 것이 아니라 회사에 매달 10만원씩 내면서 직장생활 하라면 직장에 나갈 봉급쟁이가 몇명이나 되겠습니까. 지금 우리 농민이 바로 돈내면서 직장다니는 꼴입니다."(강삼규ㆍ38ㆍ경남 진주)

"말 못하는 짐승이 끙끙 앓으면 이미 중병이 들었다는 겁니다. 노조가 없어 뭉치지도 못하고 소처럼 일만 하던 농민이 들고 일어난 것은 농촌이 갈 데까지 갔다는 이야기입니다."(황인철ㆍ42ㆍ경남 진주)

농촌이 위기의 끝에 서있다. 부채에 눌려 분노한 농심(農心)은 조그만 출구만 보여도 터져나올 지경이다.

경남 진주시 지수면 진양농협 지수지소 앞 도로변. 벼 300여 가마니가 쌓여 있다. 가마니 더미와 농협 건물에는 갖가지 표어가 나붙어 있었다.

'돈이 없어서 못 갚겠다! 농협빚을 나락으로 대체하라!', '농산물 값 보장하고 농가부채특별법을 제정하라!' 농협 인근의 지수면사무소 마당은 창고와 들판에 있어야 할 농기계들로 들어차 있다. 트랙터 7대와 트럭 1대다.


분노로 가득찬 농촌, 사라진 부농의 꿈

진주시 이반성면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진양농협 이반성지소 앞마당에는 벼 416가마니가 분노에 찬 표어들과 함께 쌓여있다. 이반성면사무소 마당도 콤바인 3대, 트랙터 10대, 경운기 2대로 가득차 있다.

농민들이 농협빚을 현물로 상환하겠다며 갖다 내놓은 것이다. 농기계를 반납한 것은 농사를 지어서는 더이상 빚을 갚지 못한다는 뜻이라고 농민들은 말했다. 농민들은 농기계가 부농의 꿈을 상징하는 것이 아니라 애물단지라고 목청을 높였다.

진주시는 경남지역 최대 시설원예 지역이다. 시설원예는 비닐이나 유리하우스에 각종 야채류와 과일류를 재배하는 것. 11월21일 1차 전국농민시위를 전후해 진주시 농민의 시위강도가 특히 높았던 데는 이유가 있다.

생산비에 못미치는 판매소득으로 인해 빚이 빚을 낳아 이젠 버티기에도 한계에 부닥쳤기 때문이다. 농민들은 농협에서 빚을 얻어 빚갚기를 되풀이해왔지만 이젠 농협 여신한도가 차 이것도 불가능한 상황에 왔다.

농협 직원의 말은 농민들의 말과 다르지 않았다. 진양농협 지수지소의 총여신액은 500가구에 110억원. 정부가 농협을 통해 집행하는 정책자금 대출금 60억원과 농협 자체의 대출금(상호금융자금) 50억원이다.

이중 연말 상환만기가 도래한 부채는 원금 14억원과 이자 2억원 등 16억원에 달한다. 지수지소 직원은 정책자금 대출금 중 70% 이상이 기한내 상환불능으로 추정돼 연말 결산이 어렵다고 밝혔다.

지수지소 관내 농민 중 대출금지 대상인 적색거래자로 분류된 사람은 60명에 이른다.

적색거래자는 원금과 이자의 연체기간이 6개월에 이르고, 연체액이 1,500만원을 넘는 사람이다. 지수면 전체 대출농가의 10% 이상이 적색거래자로 분류돼 추가대출이 불가능한 셈이다. 이들 중 이미 신용파산에 이른 사람은 약 20%.

이반성면도 심각하기는 마찬가지다. 이반성지소의 총여신액은 정책자금 50억원과 상호금융자금 71억원을 합쳐 121억원. 올해 만기가 도래한 상환액 중 현재까지 미납된 대출금이 20억원에 육박하고 있다.

정책자금 원금 8억8,000만원과 이자 1억6,000만원 및 상호금융자금의 원금 6억2,000만원과 이자 2억8,000만원이다. 이반성면의 적색거래자는 10명에 못미친다. 지수면에 비해 시설원예 농가가 상대적으로 적은 덕분이다. 하지만 이반성지소 역시 연말 결산이 힘들 것이라고 한다.


늘어나는 빚, 갚을길 막막

이반성지소의 김영교 지점장은 "1973년 농협에 들어온 이래 농가부채 상황이 이처럼 심각한 것은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김 지점장은 부채농가의 80% 이상이 연대보증에 묶여있어 한 농가가 파산하면 도미노 현상에 빠진다고 설명했다. 지금까지 농민들은 대출기간이 1년인 영농자금을 상환하기 위해 매년 빚을 얻어 빚을 갚는 과정을 되풀이해왔다.

하지만 농협 담보대출의 한도가 2억원이라서 한도까지 빌린 사람은 더이상 빚을 갱신할 방법이 없다. 신용정보가 금융권에 공유되기 때문에 농민이 농협 외 다른 금융기관에서 돈을 빌리는 것은 물론 안된다.

진주시 농민 중 특히 빚이 많은 연령층은 30대 후반에서 40대 초반. 이들이 농촌의 주력이란 점에서 심각성은 더해진다.

정부 관계기관에서는 농민 중 부채가 없는 사람도 20%에 달한다며 부채의 책임소재를 농민에게 돌리고 있다. 농민들의 주장은 다르다. 빚이 없거나 소규모인 농민은 대부분 노년층이라는 것이다. 전통적 논밭농사에 치중해 시설자금 소요가 없었고, 도시로 나간 자녀들로부터 경제적인 보조를 받고 있는 사람만 빚이 없다는 이야기다.

그러면 30~40대 주력 농민층이 빚더미에 올라앉은 것은 왜일까. 농민들은 정부 농업정책의 실패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진주시 농민들이 대규모 빚을 얻기 시작한 것은 4~5년 전.

1992년 우루과이라운드(UR) 협상타결에 따라 농림수산부(현 농림부)가 국제경쟁력을 키우기 위해 농업의 규모화ㆍ첨단화를 밀어붙인 이후다. 당시 정부는 농업경쟁력 강화 10개년(1992~2001) 계획을 세우고 이 기간 총 42조원의 정책자금을 각종 투융자 사업을 통해 농촌에 지원하기로 했다.

문제는 농민의 호응이었다. 정부는 이를 위해 파격적인 지원, 다시 말해 '돈폭격'을 했다.

농수산부의 주요 돈폭격 대상은 영농후계자(현 후계농업인)이었다. 농촌을 이끌어 갈 30대 연령층의 젊은이들을 영농후계자로 선정해 자금을 퍼부었다.

이들에게는 정부 무상보조 50%와 농협융자 40%, 자부담 10%의 시설자금 지원책을 제시하며 농업현대화 동참을 유도했다. 농기계값 절반 보조도 뒤따라 나왔다. 농촌을 터전으로 생각하던 젊은이들은 앞다퉈 영농후계자와 시설자금을 신청했다. 정책자금이 집중적으로 살포한 것은 1996~1997년이었다.

농민들은 정부 지원을 받아 하우스 시설을 만들었지만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정부는 껍데기는 지원했지만 하우스를 운영할 기술과 하우스에 심을 적절한 작목은 제시하지 않았다.

화훼에나 어울릴 첨단 유리하우스에 부가가치가 낮은 채소를 재배하는 촌극이 벌어진 것은 이 때문이었다. 기술과 작목선정보다 농민을 더 멍들게 만든 것은 농산물 가격이었다.


"농민은 농업정책의 실험도구"

우후죽순으로 생겨난 대규모 시설단지에서 야채류를 토해내자 가격폭락은 예외없이 따라왔다.

농민들은 정부가 수급조절에 대한 대책이 전혀 없이 시설부터 키웠다며 분노하고 있다. 빚더미에 올라앉은 한 후계농업인은 "당시를 생각하면 정부 농업정책의 실험도구가 된 기분"이라고 말했다.

일본에서는 과일 시설단지를 만들면서 작목을 심기 전에 가공공장부터 세웠는데 한국은 정반대로 갔다는 것이 농민들의 이야기다.

규모에 집착한 정부의 무리수는 돈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한국표준형 하우스인 1-2W의 적정규모가 느닷없이 커진 것이다. 당초 농촌진흥청은 농가의 부부 노동력을 기준으로 했을 때 1-2W 하우스가 채산성을 가질 수 있는 적정규모를 600평으로 결론내렸다.

하지만 농수산부는 규모를 1,000평으로 늘렸다. 품삯 등 운영비가 늘어날 것은 뻔한 이치다. 농기계 과소비에 따른 부담도 만만찮다. 파종시기는 농사의 성패를 좌우하는 요소다. 이용료를 주고 농기계를 빌려쓰는게 경제적이지만 농번기에는 때를 맞추기 어렵다.

때마침 정부는 농기계가 선진농업의 상징인 양 농기계 보조금 정책을 폈다. 자영농에게 필요한 주요 농기계를 보자. 콤바인 3,000만원, 트랙터 2,000만원, 이앙기 1,000만원, 경운기 270만원, 관리기 170만원 등이다.

농민들에 따르면 농기계는 3년이 넘으면 고장이 잦아 관리를 잘해도 7년간 쓰기가 어렵다. 농기계는 대부분 외제라 부품값이 비싼데다 농번기에는 이마저 구하기 힘든다고 한다. 외국 농기계 회사와 수입상만 배불렸다는 게 농민들의 원망이다.

거액을 들여 만든 비닐하우스가 방치된 채 풀만 수북히 자란 곳이 적지 않다. 빚 갚을 방법이 없거나 운영비가 없어 궁지에 몰린 농민이 야반도주했거나 경작을 포기한 곳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농민들은 적자를 보면서도 농사를 계속할 수 밖에 없는 입장이다. 시설단지는 농사를 안지으면 1년내에 대출금을 전액 상환해야 하기 때문이다.

진주시 시설원예 농가의 빚은 2억원이 넘는 경우가 허다하다. 지난해 말 통계청이 조사한 전국 농가의 평균부채는 1,853만5,000원. 30~40대 농촌 주력층에게 이같은 통계수치는 진실을 가리는 위장막에 불과하다.


평균 빚 2억원대, 파산자 속출

전북 김제시 금구면의 금구 시설원예 영농조합. 규모화를 위한 정부의 영농조합 정책에 호응해 1995년 12개 농가가 공동출자해 결성했다. 각 1,000평씩 1만2,000평에 시설비 12억원을 들여 첨단 비닐하우스를 만들었다.

조합장 최승일(38)씨는 처음 2년간은 재미를 보았다고 말했다. 1996년과 1997년 고추를 심어 각각 7억원과 5억6,000만원의 소득을 올렸다. "이렇게 하면 도시인이 부럽지 않겠구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1998년부터는 농산물값 하락과 관리유지비 증가, 융자금 상환이 겹치면서 대폭적인 적자가 이어졌다.

2억5,000만원의 빚을 진 조황우(38)씨를 비롯한 조합원 12명의 평균 빚은 2억원 대. 조합원 중 우수농민으로 선정돼 새농민상을 받은 이지택(44)씨는 3억원이 넘는다.

새농민상을 받은 사람에게는 농협 대출한도가 높아지기 때문이다. 농협의 적색거래자로 분류되지 않기 위해 사채도 많이 얻어썼다고 한다. 모범농민이 더 당하는 현실이 그에게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 금구농협 관계자에 따르면 신용파산자가 속출하고 있고, 연말 만기도래분 중 회수불능 이자만 30% 이상에 달한다.

풍년이 들면 농민은 슬퍼한다. 흉년이 들어야 농산물값이 덜 내려가기 때문이다. 농심도 변했다. 농민들은 "다른 지역이 자연재해로 농사를 망치면 기뻐진다"고 털어놓았다.

농가부채 경감(탕감이 아니다)을 원하는 농민의 요구는 크게 두가지. 부채상환을 일정기간 유예해 달하는 것이 첫째다. 당장 파산위기를 벗어나게 해달라는 이야기다.

둘째는 농산물값 안정 대책을 세워달라는 것. 부채가 유예되고 농산물값이 안정되면 농사를 지어 빚을 갚을 수 있다는 게 농민들의 한결같은 말이다.

농민들은 12월20일 여야가 합의해 통과시킨 농가부채특별조치법은 이같은 기본적인 요구를 수용하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농민들은 3차 전국시위를 준비중이다.

농민들은 정부는 물론이고 언론과 도시민에 대해서도 불만을 갖고 있다. 한국농업을 지키자는 자신들의 주장을 집단이기주의나 모럴해저드(도덕적 해이)로 생각하는 것이 서럽다고 말한다.

배연해 주간한국부 기자 seapower@hk.co.kr

김명원 사진부 기자 kmx@hk.co.kr

입력시간 2000/12/19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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