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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탐구] 가수 한영애의 삶과 노래

[인간탐구] 가수 한영애의 삶과 노래

아무리 이쪽에서 마음을 열어도, 좀처럼 교신이 쉽지 않은 사람이 세상엔 한둘 쯤 있기 마련이다. 뭔가 특별한 주파수를 갖고 있어서, 그의 성(城)은 너무나 견고해서, 어쩐지 엉거주춤 선 채로 대화를 나누는, 그런 느낌같은 거다. 이번 만남은 그런 잠깐의 관찰일지에 불과하다.

지난 12월14일. 가수 한영애를 만났다. 장소는 KBS 본관. 지난 11월부터 그녀가 진행을 맡고 있는 KBS 제2FM '뮤직 스테이션' 스튜디오가 있는 건물이다. 음악얘기를 들으러 간 것은 아니었다.

그것을 원한다면 직접 음반을 들어보거나 인터넷에서 '한영애'란 검색어로 자료를 찾아 읽는 것이 훨씬 더 빠르다. 거창하게도, 시도는 그랬다.

그 모호한 이미지는 어디서 뿜어져 나오는 건지, 그녀 안의 무엇이 그처럼 독특한 노래를 쏟아내게 만드는지, 노래 바깥에서 그녀를 찾고 싶었다. 적어도 직접 이야기를 나누기 전까지는 그랬다.


보편적 사회생활은 처음

-라디오 진행을 맡은지 한달여 지났는데, 적성에 잘 맞는가?

"재미를 느끼고 있다. 주로 음악과 관련된 특정 부류의 사람들과만 대화를 해온 것 같아 다른 많은 이들과 1대1로 접할 방법을 찾던 차에 이 기회가 생겼다. 매일 어딘가로 출근하고 퇴근하는 일도 처음 해보는 경험이다. 이것도 재미있다."

-원래 방송 출연 자체도 잘 하지 않았던 편 아닌가? 그런데 오히려 더 적극적인 방송 진행자로 나섰다니 의외다.

"주위 사람이 많이 놀랐다. 사실 내가 좋아하는 몇 가지 중 하나가 '말하지 않는 것'이다.

이걸 아는 사람들은 '과연 한영애가 말을 많이 할 수 있을까' 했다고 한다. 나도 처음엔 두려움이 있었다. MC를 하려면 아주 보편적이고 객관적인 언어들을 많이 알아야하고, 또 사용해야 하지 않나. 그동안 나는 좀 다른 세계에 살았던 사람이라, 개인적인 입장에서 보자면 지금이 내겐 처음으로 소위 '보편적인 사회생활'을 해보는 셈이다."

-진행 중 실수는 없었나?

"20~30년 베테랑도 가끔 실수한다는데 나같이 처음 이 일을 해보는 사람이야 말할 게 있겠나. 이 음악을 틀어야되는데 저 음악을 틀고, 시간을 잘 못 맞춰 음악이 도중에 잘린다든지, 그런 것들이다. 그럴 땐 떨리고 당황되지만 서서히 적응해나가고 있다."

-그전까진 주로 어디에서 뭘 하며 지냈나?

"콘서트로 바빴다. 많으면 한달에 20번 넘게 지방까지 공연을 다니기도 하고, 없을 땐 두달 동안 공연 한번 하지않고 지내기도 했다. 정해진 게 없다. 들쑥날쑥이다.

비는 시간에도 노는 건 아니다. 미술관도 가고, 연극도 보고, 책도 읽고, 연습도 하고.. 가수가 노래를 부르기 전까지 얼마나 많은 준비가 필요한지 아는가? 아주 많은 관찰 속에서 피어난 정서가 노래 한곡으로 담겨질까 말까다. 늘 음악에 모든 감각이 열려있다."

-여기에 오기전 최근 몇 년간 당신에 관해 쓴 신문 기사들을 모두 찾아보았다. 그런데 그 많은 인터뷰 내용들이 모두 앨범에 대한 얘기들 뿐, 사적인 얘기라곤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음악 외엔 말하고 싶지 않은건가?

"질문을 막아서가 아니라, 얘기해 봐도 별로 재미가 없었기 때문일거다. 난 별다른 사생활이랄것도 없고, 특별히 내보일 꺼리도 없다."

-소녀시절엔 어땠나, 중,고등학교때 아주 얌전한 학생이었다던데..

"누구의 관심도 끌지 않는 학생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아무도 내게 관심을 가져주지 않기를 바랬다. 워낙 말을 안하는 애라서 내 속에 무슨 변화가 일어나는지 친구들은 전혀 모르고 지냈다. 나는 그것을 원했다."

-그 대신 뭘 좋아했나?

"나무, 하늘, 나비, 꽃, 공상하는 것. 그런 것들. 혼자 보내는 시간이 많았다."

-외롭지 않던가?

"외로울 이유가 없다. 가끔씩 기분이 이상할 때면 가만히 내 자신을 들여다본다.

그럼 뭔가 우울하거나 무엇인가에 화가 나 있거나 그런거다. 아, 내가 지금 화가 나있구나, 그것을 받아들이고 가만히 기다리다보면 다시 괜찮아지는거다." (이후에도 이와 비슷한 이야기들이 종종 튀어나왔다. '명상법을 배우거나 하고 있진 않는가'를 묻자 '그렇다', '아니다' 란 대답은 건너뛴 채 "얘기가 복잡해진다. 잘못하면 과장될 것이 싫어 그런 얘기는 하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


"나는 외로울 이유가 없다"

-학교 다닐때도 노래로 눈에 띄었던 학생인가?

"전혀 아니다. 노래에 특별한 관심도 없었고, 언젠가 고2때 동창을 만났더니 내가 소풍때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불렀었다고 해서 내가 의아해했던 일이 있다. 난 그런 일이 있었는지 기억조차 안 난다. 그랬다면 그게 유일할 것이다. 음악시간 때도 별 다를게 없었다."

-그런데 어떻게 노래를 시작하게 됐는가?

"우연과 우연이 겹친 일이 많다. 옛날 명동 해바라기홀에서 아는 오빠가 3년째 음악회를 하고 있었는데 아는 언니를 따라갔다가 한번 불러보라고 해서 노래했더니 이상한 소리를 가졌다고 난리들이었다. 그렇게해서 그 오빠와 함께 노래를 하게 된 뒤 이정선씨를 만났고, 나중에 이정선씨가 그룹 '해바라기'를 결성하면서 그 멤버가 됐다."

-본인도 자신의 노래가 뭔가 남들과 다르다고 느꼈나?

"그냥 그런가보다 했다. 그때도 아무 생각 없이 노래를 불렀을뿐이다. 다만 나이는 어리지만 나름대로 내가 자연에 대해 갖는 느낌같은 것, 감수성 등을 노래 속에 어떤 빛깔로 채색해야될까, 그런 생각은 했던 것 같다."

(1970년대 말 이정선, 이광조, 김영미와 함께 '해바라기'로 활동한 후 그녀는 극단 '자유극장'에서 7~8년 배우로 활동한 경력이 있다. 연극배우 한영애는 어떠했을까.)

-노래를 하다말고 갑자기 연극은 어떻게 시작하게 된건가?

"내가 노래하던 걸 지켜보던 연출가가 어느날 나를 찾아와 '당신같은 여자가 연극해야 된다'고 했다. 그렇게 연극을 시작했다. 나중엔 무섭게 빠져들었다."

-어떤 작품, 어떤 역할들이었나?

"'초혼', '무엇이 될꼬하니' 등 대부분 주연을 맡았다. 처음엔 경험이 없어 대사처리가 어설프니까 첫 작품땐 대본에 없는 역할을 일부러 만들어서 내게 맡기고는 감을 익히도록 배려해줬다. 한마디로 적극적으로 키워준거다. 노래든 연극이든 나는 참 운이 좋았다. 언제나 그 처음을 좋은 선생님, 좋은 집단과 함께 시작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배우는 과정이 힘들지 않았나?

"정식교육을 받고 들어간 게 아니라서 아주 혹독하게 배웠다. 새벽 6~7시엔 전단지를 뿌리고, 점심을 먹은 뒤 다시 거리에 나가 포스터를 붙이고, 오후 다섯시면 연습을 시작하는, 그런 생활을 수년동안 했다. 요즘도 벽보판만 보면 이건 30분짜리다, 이건 2시간짜리다 대번 알 수 있다. (30분 또는 2시간 간격으로 벽보가 뜯기는 것을 말함.)

-그렇게 좋아한 연극을 왜 그만뒀나?

"한마디로 한계를 느끼기 시작했다. 여러가지 복합적인 상황에 대한 것이다.

그만둔 후 떠돌듯이 외국도 이리저리 다니고, 많이 방황했다. 그러다가 다시 노래하게 만든게 이정선씨였다. 나중에 들은 얘긴데 내가 연극을 할 때 이정선씨가 연출가와 만나 '노래해야 할 애를 왜 들쑤시냐'고 했다고 한다.

아무튼 다시 만난 이정선씨가 내게 그랬다. '너는 노래할 사람이다. 연극은 그만치 했으면 됐다.' 그 소리를 듣자마자 뒤통수를 한대 맞은 것 같았다. 아, 내게 노래가 있었구나. 그리고 다시 노래를 하게 된 거다."

-방황하면서 무엇이 가장 고민스러웠나? 얻은 결론이 있나?

"아무 것도 없다. 딱히 뭘 정리하러 떠난 여행도 방황도 아니었다. 그냥 혼란스러웠을뿐이다. 그때도 지금도 나는 내가 꼭 무엇이 돼야겠다는 목표나 욕심이 없다. 그냥 내게 주어진 것만을 가질 뿐이다.

가수면서도 언젠가 꼭 10대 가수왕이 돼야겠다는 욕심을 품어본 일도 없고, 남들이 말하는 승부욕, 성취, 사회의 기본적인 잣대 그 어느 것도 내겐 상관이 없다. 어리석거나 미련해 보일지도 모르겠다."


"살아있다는 것으로도 충분히 행복하다"

-그런 것 없이도 행복할 수 있나?

"물론! 나는 지금도 행복하다. 내가 행복한 이유는 많다. 살아있다는 것, 나는 아직 죽지 않았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하다."

-자신이 가수란 걸 느끼게 된 건 언제부터인가?

"첫 솔로 앨범을 낼 때만 해도 아무 생각이 없었다. 그러다가 들국화 콘서트에 게스트로 나가면서 아, 이제 내가 가수가 되는구나, 음악으로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는 사람이 됐구나, 느꼈다. 그때부턴 마음가짐도 확연히 달라진 것 같다. 본격적인 콘서트도 많이 하기 시작했다."

(한영애는 첫 솔로앨범 '한영애'(86년)를 시작으로 '바라본다'(88년), '한영애 1992'(92년), '불어오라 바람아'(95년), '난다 난다 난다'(99년) 등 약 20년간 다섯개의 앨범을 발표했다.

그중 2집의 수록곡 '누구없소', '루씰' 등에선 흑인 소울창법을 독특하게 구사, '블루스의 여왕', '소리의 마녀'라는 별명과 함께 가수로서의 입지를 확실하게 구축했다.

최근 5집 앨범에서는 기존의 록과 블루스에 테크노, 레게, 트로트 등을 접목시키는 또다른 음악적 모험을 시도, 반향을 불러온 바 있다.)

-10여년전 TV에서 처음 '누구없소'를 부르는 모습을 봤을 때의 인상이 아직도 생생하다. 노래 자체만 아니라 창법이나 분위기가 워낙 독특해 한참이나 쳐다보게 만드는 가수였다.

계산된 연출인가?

"지금껏 한번도 무대 위 모습을 위해 거울을 본 적이 없다. 제스추어도 따로 연구한 것이 아니다. 그냥 보이는 그대로다. 머리도 내가 원래 긴 머리를 좋아해서 학창시절 이후 계속 이 머리 그대로다. 한번도 안 잘랐다. 조금도 안 지겹다. 치장엔 원래 관심이 없으니.."

-창작하는 사람이 갖는 가장 큰 고민은 자기 색깔대로 지킬 것인가, 변신할 것인가 그 딜레마가 아닌가 싶다. 당신은 어디에 서 있기로 했나?

"중요한 문제다. 하지만 자기 자신에게 귀기울여보면 답은 절로 나오게 돼있다. 어떤 필요나 시류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따르면 된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해왔다. 건방지게 말하자면 단한번도 나는 음악을 두고 현실과 타협하지 않았다는 것만은 분명히 말할 수 있다."

-일상생활 속에서의 당신은 어떤가? 세금 납부기한도 꼬박꼬박 잘 지키는, 그런 사람인가?

"그렇다. 자잘한 납기일도 잘 안 놓치고, 아주 철저하게 리듬을 지키며 살려고 애쓴다. 아침 일찍 일어나 산에도 오르고, 하루 세끼 정확하게 시간을 지켜서 먹는다.

주먹밥이나 김밥을 좋아하는 것도 식사시간을 안 어기기 위해서다. 공연이나 녹음작업 때를 제외하고는 잠도 대부분 정해진 시간에 잔다. 매 순간순간 나를 정리해가며 살려고 노력한다."


"언제 물어도 내 나인 스물여덟 딸기때"

-결혼을 하지 않은 이유가 있나?

"특별히 설명할 만한 이유란게 없다."

-혹시 동물을 키우나?

"안 키운다. 동물은 물론이고 우리 집엔 아주 기본적인 것 외에 가구도 별로 없다. 집에 오는 사람마다 '어디 이사가느냐'고 묻는다. 하도 썰렁해서. 혼자 하는 일엔 아주 익숙하다. 혼자 밥 먹는 것, 혼자 영화보러 가는 것, 전혀 불편이 없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이 의식되지는 않나?

"의식될 게 없다. 내 나이는 스물여덟. 딸기띠다. 언제 물어도 내 나이는 그거다. 물론 몇몇 자료만 뒤져보면 내 진짜나이를 다 알겠지만, 내 스스로 말하고 싶진 않다. 사람들은 너무나 나이에 예민해서, 아직도 큰 가능성이 있는 사람에게 공연히 나이만 보고 '이미 한물 갔다'고들 쉽게 말한다. 그게 싫다."

-처음 만나는 사람이라면 대하기가 어려운 상대일 것 같다. 사람을 가리는 성격인가?

"그렇게들 느끼는 것 같아 가능하면 사람들과 거리감을 두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다. 원래 사람을 가리진 않는다. 다만 인연을 많이 만들지 않으려는 것 뿐이다."


다시 만나도 그녀는 그 색깔일 듯

방송시간이 가까워오자 그녀는 다시 스튜디오로 돌아가야한다는 신호를 보내왔다.

사실 그녀를 만나기 전날 밤 나는 악몽을 꾸었다. 내 것과 색깔만 똑같은 남의 우산을 들고 어딘가 헤매는 꿈이었다.

비는 오지 않았지만 그녀를 만난 날 정말 주인에게 빨리 돌려줘야 할 남의 우산을 들고 거리를 헤매는 기분이었다. 말하지 않는 것을 사랑하는 가수와 말을 기다리는 취재노트. 필요하다면 방송이 끝난 뒤 '스토킹'을 해서라도 더 취재할 것인가를 생각했다.

그러나 하지 않았다. 그건 시간 문제가 아니었다. 오늘 아니라 내일, 모레 다시 찾아가더라도 크게 달라질 것 같지 않은 사람. 미련을 접기까지 한참이나 시간이 걸렸다.

정영주 자유기고가 mar10@chollian.net

김명원 사진부 기자 kmx@hk.co.kr

입력시간 2000/12/19 2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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