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 카페(37)] 세상을 바꾼 길섶의 풀

한바탕 법석이다. 국내외 할 것 없이 언론의 과장보도가 판을 친다. 최초로 식물 게놈지도가 완성됐다는 것이다. 분명히 올 봄에도 '완성'이라는 용어로 보도했었는데 또 '완성'이란다.

인간 게놈도 마찬가지였다. 게놈에 대한 개략적 지도를 완성했을 뿐이지만 마치 모든 유전자의 지도가 완성된 것처럼 '완성'을 강조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인간 게놈이든, 식물 게놈이든 전체 유전자에 대한 게놈지도를 완성한 경우는 아직 없다. 도자기로 치자면 이제 겨우 불완전한 초벌구이가 끝났을 뿐이다. 유약도 발라야 하고 2차, 3차의 힘든 작업이 산적해 있다. '완성'이라는 단어를 아낄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최초의 고등생물 게놈지도는 초파리의 것이다. 다음이 선충, 그리고 인간의 것이다. 이번엔 식물에서는 최초로 아기장대의 대략적 게놈지도가 만들진 것이다. 1996년부터 7,000만 달러를 투입해서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일본이 참여했다. 나름대로 큰 의미가 있다.

인간 게놈지도의 1단계 성과를 달나라의 착륙에 비유한다면 식물 게놈의 이번 성과는 녹색혁명으로 비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 남은 일은 2010년까지 모든 유전자의 기능을 밝히는 것이다. 그리고 각 유전자가 무엇을 하며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를 밝히는 일이다.

여기서 유전자(gene)의 정의를 분명히 하자. 유전자는 하나의 단백질을 만들어내는 일정 길이의 DNA를 말한다. 그런데 유전자 기능을 못하는 DNA부분이 더 많다. 그러니까 유전자는 DNA로 구성되어 있지만, 모든 DNA가 곧 유전자는 아니라는 것이다.

게놈 프로젝트의 핵심은 많은 DNA 중에서 어느 것이 유전자인지를 밝혀내는 일이다.

단순한 DNA의 염기서열만 밝혀지는 것보다는 훨씬 고차원적 작업이 필요하다. 그래서 요즘 말이 많은 '게놈지도 완성'이라는 의미는 전체 DNA의 사슬에서 어떤 유전자(그것도 지금까지 밝혀진 것만 가능)가 어디에 있는지를 밝혔을 뿐이거나, 단순히 전체 DNA의 염기서열을 알아냈다는 정도다. 그러니 완전한 게놈지도란 아직 세상에 없다.

햇빛과 이산화탄소를 이용해서 산소와 영양물질을 만드는 식물이 동물과 진화적으로 갈라진 것은 약 16억 년 전이지만 인간이 식물을 재배하기 시작한 것은 겨우 8,000년 전이다.

여기에서 주목할 것은 100여 개의 식물유전자가 언어장애, 시각장애, 암 등의 인간의 질병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것이다.

또한 미생물과 기생충에 반응하는 기능이 동물보다 식물에 더 풍부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기장대 게놈프로젝트가 완성되면 진화 등 자연의 비밀을 밝히는 것 뿐 아니라 미래의 신약 개발의 돌파구가 마련된다.

그 외에도 빠른 생장, 악성기후에 대한 저항성, 병충해 및 질병 저항성, 비타민의 대량 생산, 기름과 화학물질을 생산하는 갖가지 디자이너 식물을 보다 손쉽게 만들 수 있다. 지구온난화에 따른 식물의 적응력을 향상시키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나 빛이 있으면 그림자가 있는 법. 유전자변형 식물은 인체와 환경에 예상할 수 없는 피해를 줄 수 있다는 사실에 많은 사람이 염려하고 있다. 특히 유럽의 시민단체들은 유전자변형 곡물의 입항을 저지하고 있으며, 소비자들은 구매를 거부하고 있다.

그래서 미국과 유럽연합(EU)은 농민과 식품가공업에 대한 철저한 통제를 신중히 고려하고 있다. 그러니 각종 디자이너 식물에 대한 희망과 함께 드리울 그림자에 대한 신중한 고려가 함께 이루어져야 옳을 것이다.

논쟁은 차치하고라도 멋진 꽃을 피우지도 못하고, 탐스러운 몸매를 가진 것도, 그렇다고 맛있는 채소도 아닌 아기장대라는 야생초가 인류에게 이만한 영향력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은 "길섶의 풀 하나도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다"는 생각에 새삼 머물게 한다.

이원근 과학커뮤니케이션연구소장

입력시간 2000/12/19 2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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