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 삶과 죽음에 대한 상상력의 극치

■ 천사들의 제국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이세욱 옮김)

죽음, 심판, 천국, 부활 등이 연상되는 사후세계는 과연 있는가? 깃털 날개를 달고 하늘을 유영하는 천사는 존재하는가?

이런 다소 황당한 질문에 '개미'의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그렇다'(Oui:영어의 Yes)는 시원스런 답변을 해줄 수 있는 몇 안되는 작가중의 한 사람이다. 그렇다고 그를 신학자나 종교적 맹신자 정도로 오해하면 곤란하다.

파리 툴루즈 법대 출신인 그는 학창시절 만화 시나리오를 썼던 로맨티스트였으며 한때 프랑스 과학 잡지의 과학 전문기자로 '올해의 최고상'까지 수상했던 과학도였다. 순수하게 작가적 상상력과 판단에서 나온 한 천재작가의 신념일 뿐이다.

'죽음'이나 '천사' 같은 사후세계를 소재로 한 소설은 자칫 고리타분한 종교서적이나 황당무계한 공상 판타지가 되기 쉽다. 그런 점에서 베르베르의 장편 소설 '천사들의 제국'은 가히 독보적이다. 이 작품은 절대 요즘 유행하는 판타지류의 소설이 결코 아니다.

인간이 해결할 수 없는 죽음이라는 문제를 삶의 대척점이 아닌, 그 연속선 상에 놓고 기발한 시각과 아이디어로 꾸몄다. 감히 누구도 써보지 못했던 기막힌 소재를 저자 고유의 탁월한 창조력과 상상력으로 한시도 책에서 눈을 떼지 못하게 만들었다.

최초로 저승을 탐사했던 타나토노트 중의 한 사람인 미카엘 팽송은 어느날 갑자기 집에 비행기가 추락하는 바람에 횡사한다. 탐사자가 아닌 사자(死者)로 영계(靈界)에 올라간 그는 대천사들 앞에서 천국으로 올라갈지, 지구로 환생할지를 심판받는다.

팽송은 그곳에서 모든 인간들에겐 수호천사가 있다는 것, 그리고 현실세계의 선업(善業)점수가 높아야 환생하지 않고 천국으로 올라가 천사가 될 수 있는 사실을 알게 된다. 에밀 졸라라는 수호천사의 변론 덕택으로 천사가 된 팽송은 지도천사 에드몽 웰즈로부터 천사 수업을 배운다.

팽송은 프랑스 소설가자크, 흑인 미녀 비너스, 골치덩이 러시안인 이고르 등 3명의 수호천사가 된다. 수호천사 팽송은 그들의 삶에 직접적인 개입을 하지는 못하지만 직감, 꿈, 징표, 영매, 고양이 등과 같이 간접적 방법으로 그들의 선행을 이끌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천사인 그도 어찌할 수 없는 것이 바로 인간의 자유의지. 한날 한시에 태어난 이들을 삶과 그들을 천상에서 인도하려는 수호천사 팽송의 파란만장한 노력이 흥미진지하게 전개된다.

저자 베르베르는 죽음이라는 결코 가볍지 않은 소재를 과장된 논리적 비약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흥미롭게 엮어놓았다. 상상 속의 일이지만 인간의 삶과 사회 체계 등에 대한 포괄적인 탐구도 시도하고 있다. 톨스토이, 셰익스피어, 헤르만 헤세 등과 함께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작가인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개미 신드롬'이 다시한번 몰아질 가능성이 더욱 높아졌다.

송영웅 주간한국부 기자

입력시간 2000/12/19 21:28


송영웅 주간한국부 herosong@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