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오현의 길따라 멋따라] 동·남·서해안의 일출명소

지난 1월 1일 아침. 이 땅의 동쪽 해안선은 발 디딜 틈이 없었다. 밀레니엄의 첫 해를 보기위한 행렬이었다. 주차장이 돼 버린 동해행 도로에서 아침을 맞은 이도 부지기수였다.

그러나 날씨가 흐렸다. 바다의 일출은 없었고 오히려 지리산 천왕봉에 오른 이들만이 연봉 사이로 터지는 아침 햇살을 맞았다.

올해에도 해를 보기 위한 대이동이 있을 예정이다. 마침 연휴여서 금요일인 12월 29일 밤부터 동쪽으로 가는 길이 붐빌 터이다. 그러나 꼭 동쪽 바다에서만 해를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동, 남, 서해안의 일출명소를 꼽아본다.


망상(강원 동해시)

일출의 명소로 꼽히는 강릉시 정동진과 동해시 추암 사이에 있는 해변. 이름난 해수욕장이라 여름에는 무척 붐비지만 겨울에는 한적하다.

올해에도 정동진과 추암은 차를 들이밀지도 못할 정도로 복잡할 것이 예상된다. 길에서 시간을 보낼 것이 아니라 아예 망상행을 결정해도 후회는 없을 듯하다.

망상해변은 넓다. 모래밭의 폭과 넓이가 강원도 해변 중에서 최장이다. 섬이나 방파제도 없다. 겨울파도는 거칠다. 마구 달려오는 파도 뒤에서 떠오르는 일출은 힘이 있고 웅장하다.

일출을 보고 난 뒤에는 인근 어달항이나 묵호항에 들르면 좋다. 배에서 막 내린 싱싱한 횟감을 싸게 살 수 있다. 1,000~2,000원이면 깨끗하게 회를 떠주는 좌판 아주머니들도 있다.

연말 대관령은 또 다시 주차장이 된다. 영동고속도로 새말나들목에서 42번 국도로 빠져 평창- 정선-임계를 거쳐 백복령을 넘으면 동해시 한가운데로 진입할 수 있다. 약 30분 정도 더 걸리지만 강원 산골의 예사롭지 않은 겨울 풍광을 즐길 수 있다.


남해 금산(경남 남해군)

남해도 금산은 세속의 염원을 끌어안고 있는 산이다. 9부 능선에 앉은 보리암은 남한 3대 기도터의 하나. 그래서 대학입시철이나 새해 아침에는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린다.

금산은 아름답다. 한려해상국립공원에서 유일한 산악공원이다. 금산의 비경 중에서도 제 1경은 해돋이이다. 정상 망대봉(望臺峯)에서 바라보는 일출은 수많은 사진작가들을 유혹한다. 동남쪽의 미조만에는 수많은 섬들이 흩어져 있고 해는 그 섬들의 한가운데에서 떠오른다.

붉은 색과 푸른 색이 뒤엉킨 하늘, 검은 윤곽만 드러내는 섬들, 반짝거리며 끓어오르는 바다.. 세속의 영달을 빌기 위해 산을 찾았던 이들도 이 순간에는 모든 것을 잊을 수 밖에 없다. 이렇듯 금산은 세속과 탈속의 경계에 버티고 있다.

산을 오르는 길은 남과 북 두 곳으로 나있다. 북쪽의 복곡저수지코스는 등산이 아닌 기도하는 사람들을 위한 대로(大路). 보리암에서 도보로 10분 거리인 주차장까지 소형차와 셔틀버스로 오를 수 있다.

그러나 몸이 허락한다면 남쪽 상주해수욕장 인근에서 시작하는 등산코스를 택하는 것이 사람의 물결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이다. 암릉코스로 왕복 3시간 거리. 힘에 부치면 잠시 다리를 쉬며 뒤를 돌아본다. 상주해수욕장을 비롯한 한려수도의 쪽빛바다가 어느 틈에 땀을 식혀준다.


왜목마을(충남 당진군)

해가 서쪽에서 뜰 일?

서해바다에서 일출을 감상할 수 있는 손에 꼽히는 곳 중의 하나이다. 서해의 섬에서 일출을 보는 것은 어렵지 않지만 육지에서는 드물다.

왜목마을은 북쪽으로 툭 튀어나온 독특한 지형 덕분에 해돋이를 볼 수 있다. 동쪽 수평선 너머로 아스라이 경기 화성군과 평택시의 해안선이 시야에 들어온다. 그 수평선과 올망졸망한 섬 사이로 해가 떠오른다.

동해의 일출이 장엄하다면 이 곳의 일출은 소박하면서 서정적이다. 서해안이기 때문에 일몰도 볼 수 있다. 대난지도와 소난지도 사이의 비경도로 떨어지는 일몰은 서해안 일몰 중 다섯손가락 안에 꼽히는 장관이다.

왜목마을에는 달랑 8가구 25명의 주민이 산다. 그러나 이 곳을 찾는 관광객, 사진작가등이 연간 200여만명에 이른다. 서울 남부터미널에서 수시로 당진행 고속버스가 있다. 약 2시간 소요.

권오현 생활과학부차장

입력시간 2000/12/19 2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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