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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J 리더십] DJ 리더십이 흔들린다

초패왕 항우를 꺾고 천하를 잡은 한(漢)의 유방이 어느날 부하들에게 물었다. "내가 항우를 이긴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

한 부하가 분명한 논공행상을 들자 그는 고개를 저었다. 그리곤 "나는 지략(智略)에선 장량(張良)보다 못하고, 나라를 다스리는 능력에선 소하(簫何)보다 못하고, 군사를 일으켜 싸우는 데는 한신(韓信)보다 못하지만 세 사람에게 중책을 맡겨 능력을 발휘하도록 했다.

그러나 항우는 범증(范增) 같이 뛰어난 인물조차 활용하지 못했다. 내가 이긴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또 중국 전국시대의 사상가 한비자(韓非子)의 팔경에는 임금의 리더십을 논한 대목이 있다.

"한 사람의 힘은 무리에 대적할 수 없고, 한 사람의 지혜는 만물에 미치지 못한다.

(중략) 하급의 임금은 자신의 능력을 남김없이 쓰고, 중급의 임금은 사람(부하)들의 힘을 쓰며, 상급의 임금은 사람(부하)들의 지혜를 쓴다."


경제난, 정치부재. 극에 달한 국정난맥상

참된 리더십이란 바로 아랫사람이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도록 하는 것이라는 가르침을 유방은 체험으로, 한비자는 사상으로 전해주고 있다. 그같은 국가 지도자의 리더십과 덕목은 시대를 훌쩍 뛰어넘어 오늘날의 민주국가 체제에 들어와서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사회가 복잡ㆍ다원화하면서 오히려 더 강조되는 가치다.

그러나 우리의 정치지도자들은 군사독재시절부터 나홀로 모든 것을 결정하는 '고독한 제왕'의 길을 걸어왔다. 그 결과 집권 후반기에 이르면 찾아올 레임덕(권력누수) 현상이 두려워 시대착오적인 무리수를 두다가 국정에 혼선을 빚고, 스스로 불행을 자초하기도 했다.

2001년 새해 시작과 함께 임기를 2년1개월 남겨둔 김대중 대통령은 어떨까? 큰 흐름에서는 과거 정권과 다를 바 없다. 오히려 날이 갈수록 전임 대통령들의 예보다 더욱 빠르게 레임덕 현상을 맞고 있는 것 같다. 그 이유는 김 대통령의 통치 스타일과 인맥, 주변의 여건 등에서 찾을 수 있다.

김 대통령은 현재 경제난국, 정치부재, 국정혼란의 틈바구니에서 비상구를 찾고 있다. 그 일환으로 김중권 최고위원을 집권 민주당 대표에 앉히는 등 여권의 사람 바꾸기를 시작했다. 새해 초에는 내각에서도 얼굴 교체가 있을 전망이다. 김 대통령은 또 획기적인 국정쇄신책도 내놓겠다고 약속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와대 안팎의 상황은 자꾸만 꼬여가는 듯하다. 안동선 의원을 비롯한 민주당 일각에서는 김중권 최고위원의 대표 지명에 반발, 탈당을 선언하는 등 부작용이 나타나고, 당4역 교체 과정에서도 불협화음이 터져 나왔다. 1년전 만해도 상상도 할 수 없던 일이다.

김 대통령은 또 공적자금 투입은행의 완전감자 조치와 관련, 담당자 문책과 소액주주들의 권리 보호를 지시했으나 이행과정이 영 신통치 않다. 지시의 정당성 여부를 차치하고서라도 받아들이는 아랫사람들이 "나보고 어쩌란 말이냐"라는 투다.


가신정치, 지역편중인사등이 혼란 부추겨

이와 관련, 경실련의 고개현 시민입법국장은 "김 대통령은 그동안 개혁주체 세력도 없이 혼자 뛰어다니다 이제 레임덕을 맞고 있다"면서 "여야 관계 정립과 관료사회 장악에도 실패했다"고 지적했다.

집권 초부터 "DJ가 나서지 않으면 되는 일이 없다"는 평가가 나돌았을 만큼 김대중 일인통치 스타일이 맞닥뜨릴 수 밖에 없는 운명적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김 대통령의 앞날에 가장 큰 어려움은 역시 민심이반이다. 증시 주변에서는 이미 "잔치는 끝났다"는 말이 돌고, 각종 경제지표에는 위험신호가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김 대통령의 지역 기반인 호남 지역에서조차 화려한 외치(外治)에 비해 초라한 내치(內治)를 놓고 "하도 실망해 욕도 안 나온다"는 말이 나돈다고 한다.

그의 개혁정책을 뒷받침해온 시민단체들도 의약분업이 결국 '없는 자'의 부담으로 끝나고, 구조조정의 고통을 노동자에게 전가하는 등 김 대통령의 일관성 없는 개혁노선에 등을 돌렸다.

이같은 결과는 김 대통령 스스로 자초했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오늘날 국정난맥의 근본원인이 가신(家臣)정치, 옷로비 의혹 사건과 같은 권력형 비리, 인사의 지역 편중, 관료체제 운영 실패 등에 있는데 그는 대북 정책과 외교적 성과에 집착하다 국정운영의 시스템을 제때 개편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게다가 권력의 이너서클은 갈수록 특정세력에 의해 독식되는 퇴행적 모습으로 나타났다.

1997년 대선 당시 김 대통령의 진영에는 이종찬 전 안기부장, 천용택 전 국방장관, 김한길 문화관광부 장관, 조세형 전 총재권한대행 등 다양한 그룹이 전면에 서 있었으나 점차 당정 핵심라인은 동교동계의 가신그룹으로 채워졌다.

김 대통령은 최근 비호남, 비동교동계 인물을 다시 전면에 내세웠으나 이미 너무 늦었다는 평가다. 한 야당 의원은 "김 대통령이 소수정권이라는 태생적 약점을 초당파적인 자세로, 관료조직과 언론의 도움을 얻어 극복했어야 했는데 실기(失期)한 것 같다"고 말했다.

한 언론인은 "언젠가 김 대통령이 자신은 열심히 뛰고 있는데 언론과 국민이 그것을 몰라준다고 섭섭함을 토로한 적이 있는데, 그것이 DJ식 정치의 한계"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5공 이후 점차 빨라지는 레임덕현상

어느 정권이든 집권 후반기에 레임덕이 나타나기 마련이다. 문제는 그 시기다.

7년 단임을 최대 업적으로 내세웠던 전두환 전 대통령은 자신이 퇴임한뒤 무려 1년여가 지나 국회 5공청문회가 시작되면서부터, 노태우 전 대통령은 청와대를 떠나는 것과 동시에 급격히 힘이 빠졌으나 김영삼 전 대통령은 퇴임을 1년이나 앞두고 한보사건이 터지면서 아들 김현철씨가 구속되는 등 레임덕을 체감했다.

YS의 경우 임기 마지막 1년은 사실상 대통령이 아니었다 할 정도로 대통령의 영이 전혀 먹혀들지 않았었다.

불행한 일이지만 김대중 대통령은 벌써부터 레임덕 현상을 보이고 있다는 말이 나돌고 있다.

2000년 11월 말 서영훈 전 민주당 대표가 공직사회의 대대적인 사정을 역설하자 관가에서는 "또 사정인가"라는 냉소와 함께 DJ정권의 레임덕을 거론하기 시작했다.

재정경제부의 한 고위 관리는 "예년의 경우 정권이 레임덕 현상을 보이면 마지막 통치수단으로서 공직자에 대한 사정이 시작됐다"면서 "이번 사정은 정권이 이미 레임덕에 들어갔다는 것을 자인하는 것"이라고 논평했다.

이럴 때일수록 국가지도자에게 필요한 건 원칙과 책임감, 그리고 결단력이다. 정권 재창출을 위해 소탐(小貪)과 인기영합에 급급하다가는 헤어날 수 리더십 공백에 빠지게 된다. 김 대통령의 리더십이 바로 서야 나라가 제대로 굴러간다.

이진희 주간한국부 차장 jinhlee@hk.co.kr

입력시간 2000/12/26 1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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