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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 세계경제] 미국, 연착륙이냐, 경착륙이냐 기로

한달여를 끈 지루한 법정실랑이 끝에 앨 고어 부통령에 신승한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당선자는 구랍 18일 첫 워싱턴 나들이에서 앨런 그린스펀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을 제일 먼저 만났다.

부시가 당선자 신분으로 '경제대통령'으로 불리는 그린스펀 의장을 첫 면담대상자로 선택한 것은 2000년 하반기부터 하강조짐을 보여온 경제를 취임 이후 가장 중요한 현안으로 추스리겠다는 상징적 제스처라 할 수 있다.

부시는 다음날 빌 클린턴 대통령과의 백악관 회동에서도 경제문제를 주요 의제로 의견을 나누었다. 2시간여동안 진행된 이날 대화에서 부시가 미국 경제의 이상조짐을 거론하며 은근히 민주당 8년 집권기간의 경제치적을 폄하하자 클린턴은 "일시적 불경기 현상"이라며 맞받았다.

사상 초유의 법정소송이라는 혼란 끝에 정권이양작업이 한창인 미국에서는 엉뚱하게도 경제불황논쟁이 최대의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10년호황 주춤, 경제 내리막길 불안감

미국 경제는 공교롭게도 대선 유세전이 한창이던 2000년 하반기부터 급격히 둔화하기시작했다. 1991년 4월부터 거의 10년에 가까운 최장기 호황을 구가하던 경제가 흔들리기 시작한 것이다. 미국 경제가 처한 상황을 보면 예사롭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미국 경제는 1997년 이후 GDP성장율 평균 4%가 넘는 고성장을 기록해왔다. 2000년 들어서도 1ㆍ4분기에 4.8%, 2ㆍ4분기에는 무려 5.6%의 높은 성장율을 보였으나 3ㆍ4분기에는 2.2%로 급락했다. 이는 2ㆍ4분기의 절반에도 못미치는 것은 물론 11월에 추정했던 예상 성장율 2.4%에도 밑도는 것이다.

상무부가 지난 12월21일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또하나의 주요 경기지표인 인플레율은 뉴욕 월가에서 예상했던 것보다 조금 낮은 1.8%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4%대 이하를 유지했던 실업율이 11월 들어 4%로 다시 상승한 사실까지 종합하면 장기호황이 끝나가고 있음을 가리키는 추가적인 신호로서 올해에는 불황이 도래할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증폭시키기에 충분한 것이다.

월가의 경제분석가들은 고유가와 주식시장 불안에 따른 소비수요 감퇴로 4ㆍ4분기의 GDP성장율도 둔화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미국 경제의 어두운 그림자는 주식시장에도 짙게 깔려있다. 그간 경제호황의 견인차로 인식돼왔던 나스닥 시장의 경우 구랍 20일 2,332.78포인트로 하락, 1999년 3월 수준으로 되돌아갔다. 21개월동안 2배 이상 뛰어올랐다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는 초유의 장세가 나타난 것이다.

이날 나스닥 지수는 연초 대비 43%, 1999년 3월10일의 최고가 대비 54%로 하락한 것을 의미한다.

나스닥 폭락의 배경은 경기둔화로 인한 기업실적의 급격한 감소다. 지난해 5월 닷컴의 붕괴로 시작된 나스닥의 약세가 이후 텔레콤, 컴퓨터 등 IT산업전반으로 이어지면서 이제는 나스닥의 선두주자들이 예상보다 훨씬 열악한 영업실적을 신고한 것이다.

이처럼 지난해 하반기부터 경기둔화 조짐이 나타나자 경제계에서는 연착륙 논쟁이 한창이다.

미국 경제의 호황은 1990년대 중반부터 IT산업을 기반으로 진행된 기술혁신에 따른 생산성의 현저한 향상과 FRB의 효과적인 금리정책에 힘입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특히 통화정책 방향의 투명한 공표를 통해 시장 참여자의 신뢰를 확보한 FRB는 1999년 6월부터 6차례에 걸쳐 0.25~0.5% 포인트씩 적절히 금리를 인상함으로써 물가안정 하에서 수요공급의 균형을 달성할 수 있는 성장률 수준으로 순조롭게 성장률을 둔화시키는 이른바 연착륙(Soft landing)작업을 성공적으로 수행해왔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런데 지난해 3ㆍ4분기 들어서 GDP성장율이 급락하고 실업율이 치솟자 이제는 연착륙을 지나쳐 경착륙(Hard landing)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섞인 지적이 나오기 시작했다.


경착륙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 높아져

현재의 국면을 연착륙이냐, 경착륙의 시작으로 보느냐에 대해서는 전문가들 사이에 견해가 크게 엇갈리고 있다. 이와 관련, 워싱턴포스트는 지난달 10일 대표적인 경제분석가 2명의 지상논쟁을 통해 양측의 시각을 자세히 분석했다.

모건 스탠리 딘 위터사의 수석이코노미스트 스티븐 로치는 "하이텍 장비에 대한 과잉투자로 인한 이익감소, 주가폭락, 소비심리감소 및 FRB의 뒤늦은 대처 등으로 올 경제는 인플레 조짐이 완연해질 것"이라며 "자칫하면 FRB도 손쓰기 어려운 경착륙 국면에 접어들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비해 메릴 린치의 수석이코노미스트 브루스 스타인버그는 "지속적인 생산성 증가와 안정화 추세에 돌입한 국제유가 및 주식시장의 활성화 재현 가능성 등을 들어 올해 탄탄한 불황 면역성을 토대로 연착륙에 성공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민간 사이드에서 양측의 주장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지만 정책당국자들은 다소의 불안요인이 남아있기는 하나 올 하반기 쯤에는 연착륙이 성공할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달 19일 금리인하 여부로 관심이 집중된 가운데 열렸던 FRB의 공개시장위원회(FOMC)는 경기둔화에 대한 우려를 당초 예상보다 강한 톤으로 드러내긴 했으나 "아직은 금리인하를 단행할 시기는 아니다"라고 발표했다.

FRB는 회의후 낸 성명에서 "에너지 비용 상승과 소비자 신뢰 하락, 판매소득의 실질적 감소 및 금융시장 일각의 부진으로 인해 성장이 더 둔화할지 모른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고 전제하고 "인플레 우려가 일부 상존하고 있느나 예상보다 더 둔화되는 경제활동 추세와 장기적인 관점에서 인플레가 가중될 조짐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 이런 우려를 충분히 상쇄하고 있다"고 밝혔다.


상반기중 금리인하 가능성 시사

FRB는 그러나 "물가안정과 지속가능한 성장이라는 장기적 목표와는 무관하게 현 시점에서 확보되는 경제상황 정보들을 토대로 조만간 경기가 더 둔화될 수 있다는 쪽에 통화정책의 비중을 두기로 결정했다"며 올 상반기중의 금리인하 가능성을 강하게 시사했다.

그러나 이처럼 양론이 분분한 가운데서도 최근 들어서는 미국 경제가 우여곡절을 겪긴하겠지만 연착륙에 성공할 것이라는 주장이 대세를 얻고 있다.

메릴린치의 스타인버그는 "현재의 국면은 경착륙이라기보다는 정확히 표현하자면 다소 '험한 착륙'(Rough landing)을 하고 있는 것"이라며 "FRB가 올 초에 적정수준으로 금리를 인하할 경우 연착륙을 향한 정상궤도에 접어들 것"이라고 전망했다.

윤승용 워싱턴 특파원 syyoon@hk.co.kr

입력시간 2000/12/26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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