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근의 사이언스 카페(38)] 21세기의 시작

21세기의 공식적인 시작은 2001년 1월1일 0시부터다. 무슨 뚱딴지같은 말이냐고 웃는 사람이 적지 않을 것이다. 이미 2000년 1월1일 0시를 기해 21세기가 시작됐다며 온세계가 법석대지 않았던가? 벌써 21세기가 1년이나 지났는데 이제부터 21세기라니 코웃음을 치고도 남을 일이다.

그러나 이것은 결코 나 혼자만의 엉뚱한 주장이 아니라 세계가 공인하는 개념이다. 거부할 여지도 없이 세계 시간의 기준점을 잡고 있는 영국의 그리니치 천문대에서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21세기는, 21번째의 100년 즉 2001년부터 2100년까지다.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그레고리력(Gregorian Calendarㆍ양력)에 따르면 최초의 해는 서기 0년이 아니라 서기 1년이었기 때문이다.

그리니치 천문대 뿐만 아니라 미국의 해군천문대, 그리고 미 항공우주국(NASA)에도 전자메일을 보내 확인한 결과 기존의 세기에 대한 개념을 바꾸자는 어떠한 공식적인 움직임도 없다는 회신을 받았다.

백악관의 홈페이지에도, 분위기상 2000년 한해 동안을 새천년 축제기간으로 정했을 뿐 공식적인 21세기는 2001년 1월1일이라고 분명히 못박고 있다.

세계적으로 달력체계가 그레고리력으로 통일되기 이전까지는 국가에 따라, 심지어는 집단에 따라 달력체계가 달랐다. 그래서 같은 사건에 대하여 어떤 기록은 16세기로, 어떤 기록은 18세기로 표기하고 있다.

달력의 개혁으로 조지 워싱턴의 생일이 1731년 2월11일에서 1732년 1월22일로 바뀌는 해프닝이 일어나기도 했다.

현재 그레고리력과 함께 부분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달력체계는 세계적으로 약 40여 가지(그레고리력의 2000년은 비잔틴 7508년, 중국 4636년, 인도 1921년, 이슬람 1420년, 유대인 5760년 등)에 달한다.

그레고리력 탄생의 비밀은 무엇인가? 서기532년 천문학자인 디오니수스 엑시귀스(Dionysius Exigus)는 예수탄생의 해를 서기 1년(AD:Anno Domini), 그 이전을 기원전 1년(BC:Before Christ)으로 하는 새로운 연도 계산법을 개발한다.

당시에는 '0'이라는 수의 개념이 없었기에 '1'의 선택은 당연한 것이었고, 이것이 한 세기의 시작이 0년이 아닌 1년부터가 된 이유다.

그러나 그뒤 해마다 부활절의 시기가 늦어져 혼란이 왔고, 태양이 지구를 365일보다 약간 길게(현대과학에서 지구의 공전주기는 365.24219일) 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1582년 로마의 그레고리 교황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4년마다 1일을 더하되(매 세기의 마지막 해, 즉 1900, 2000년 등은 예외로 했다), 400년 주기마다 1일을 더한다는 새 규정을 만든다. 이것이 바로 그레고리력이다.

그 후 그레고리 교황의 교리 공표(1582)에 따라 그레고리력은 카톨릭 국가인 이태리 스페인 등의 나라에서 출발하여 1752년 영국, 1753년 스웨덴 등에서 점차 수용하면서 서구 달력체계로 자리잡는다.

일본은 1875년, 러시아는 볼셰비키 혁명 후인 1918년에 이를 수용하고, 우리나라는 근대화 과정(고종32년, 1895년)에서 이를 수용했다.

100년 전 독일 황제 빌헬름 2세와 지그문트 프로이드는 0의 개념을 적용하여 1900년 1월1일을 20세기의 시작으로 하자는 주장을 펴기도 했지만 19세기 이전과 이후의 세기 개념이 다를 경우 과학적 일관성이 없어지고 역사 표기에 혼란을 초래한다는 이유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하지만 2000년은 예수가 지상으로 내려와 사탄을 물리치고 천년왕국을 다스리는 '대희년'이라는 종교적 의미까지 있어 세기의 시작이라는 표현에 다소 관대했던 것이 아닌가 싶다.

그러나 세기의 개념에 대한 공동체적 약속에는 변함이 없고 지식기반사회와 정보화의 시대에 표현의 정확성과 표준화는 무엇보다도 중요한 사안이다.

공식적인 21세기의 시작은 분명히 2001년이라는 사실을 간과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2000년을 축제의 들뜬 분위기로 맞았다면 2001년은 냉철한 가슴으로 새로운 21세기를 맞이하는 출발선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원근 과학커뮤니케이션연구소장

입력시간 2000/12/26 2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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